<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33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3)

등록 2003.05.15 14:23수정 2003.05.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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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천뢰탄을 처음 개발할 때 투입된 인원은 무려 백여 명에 달했습니다. 그들 모두 석학이었지요."
"그래? 그런데…?"

"그런데 그것을 한 사람이 몽땅 익힌 적이 있습니다."
"백 명의 석학들이 모여 간신히 해낸 일을 혼자하였다고?"
웬만한 일에는 별로 놀라지 않는 철룡화존이었지만 이번만은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렇습니다."
"그게 누구냐?"

"혹시 무궁공자(無窮公子) 이위소(李偉燒)를 아십니까?"
"이위소…?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아! 알았다. 무천서원의 전대원주가 아니더냐? 그런데 그가 그랬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래? 핫핫! 과연 무천서원의 원주답다.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게 한번 오라고 해라."

"죽었습니다."
"뭐야? 죽어…? 언제…?"

이번에는 조금 전 보다 더 놀랐는지 눈이 조금 더 커졌다.


"수년 전 본성에서 죽였습니다."
"뭐라고? 본성에서 그를 죽여? 그 아까운 인재를…?"

"그렇습니다."
"왜? 누가 그런 짓을 했어? 엉? 어떤 놈이 그랬느냐고?"


"후후! 도 장로, 지금부터는 장로가 설명 드리시오."
"예! 소성주님!"

철기린의 말에 오각수 도날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의 죽음을 지시한 곳을 순찰원이었습니다. 성주님!"
"뭐라고? 미쳤느냐? 방금 전 이 아이의 이야기도 못 들었어? 백 명의 석학들이 간신히 이룩한 것을 혼자서도 너끈히 해내는 인재를 왜 죽여? 도 장로 네가 명령한 것인가?"

철룡화존은 약간 열을 받은 듯 목청을 돋구고 있었다.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죽어야 하였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인재를…?"

"천뢰탄 제조비법을 선무곡에 넘기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무궁공자는 선무곡 출신입니다. 당시 선무곡주였던 철심냉혈이 그를 꾀어 천뢰탄 제조비법을 알려 하였습니다."
"뭐라고? 이런 괘씸한… 여봐라! 지금 당장 선무곡에 연락하여 철심냉혈이라는 자를 잡아 들여라. 아니 죽이라고 해라."

철룡화존의 말에 도날두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성주님! 철심냉혈도 이미 죽었습니다.
"뭐라고? 으음! 벌써 늙어 죽었단 말이냐?"

"아닙니다. 그 역시 본성에서 죽였습니다."
"뭐라고?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그가 무궁공자에게 연락하였다는 것을 알게된 본성에서는 그에게 경고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들어서…"
"그럼 본성 제자가 직접 죽인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선무곡에는 본성의 명이라고 하면 제 조상의 무덤이라도 파헤칠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에게 우리의 뜻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자세히 말해 봐라."

"존명! 철심냉혈이 무공공자에게 연락하기 시작할 즈음 본성에서는 경고의 의미로 그의 부인인 자미부인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뭐라고? 선무곡 곡주부인을 본성에서 죽였다고?"

"아닙니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이었습니다. 자미부인을 죽인 자는 문광세라는 자로 본성에 몸담기를 원했던 자입니다…"

오각수 도날두와 무비수사 고파월, 그리고 철기린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철룡화존 구부시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

인심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처음 선무곡을 찾았을 때 무림천자성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과연 은자를 들였을 때 그 효과를 볼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일 정도로 고리타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무림천자성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세를 넓혀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힘과 재물은 있지만 부족하다 느끼지는 것이 있었다.

당시 소림사와 무당파 등 칠파일방은 명실상부한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였다. 그들에게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이라는 것이 있는 반면 정식으로 개파대전을 한지 얼마 되지 않는 무림천자성에서는 그런 것이 있을리 만무한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은자만 있으면 처녀불알이나 쥐뿔도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또한 죽은 귀신도 부릴 수 있다던 때였다. 그런데 아무리 많이 있어도 결코 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통과 역사일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아침에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림천자성은 이런 것들이 없는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상 최고의 천박함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횡재를 하면 세상이 온통 자신의 것처럼 보이게 될 수도 있다.

하여 보는 이마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거들먹거리기도 한다. 물론 타고난 성품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타고나기를 천박하지 않게 타고 난 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겸손(謙遜)이 무엇인지, 고결(高潔)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 하여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천박하게 타고났다면 무슨 짓을 해도 천박해 보이는 법이다.

당시 무림천자성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은자와 그 은자로 산 힘이 있었다. 허나 너무도 천박하였기에 그것을 제대로 조율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었다.

어떻게든 소림사나 무당파와 같은 문파로 성장하고 싶었던 무림천자성이 생각해 낸 것은 하루아침에는 어떻게 안 되는 전통과 역사 대신 명예와 인심을 얻는 것이었다.

그것을 은자로 사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써서는 생색도 안 나고 은자만 축날 것 같았다. 하여 적절한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들의 눈에 뜨인 것이 바로 선무곡이었다.

당시는 암흑대전이라 일컬어지는 엄청난 혈겁이 일어난 직후였다. 암흑대전은 왜문과 화산파, 그리고 곤륜파가 일으킨 혈겁이다. 당시 왜문은 선무곡을 흡수 통합한 뒤, 마도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화존궁과 일월마교까지 공격했었다.

암흑대전의 말미에 선무곡은 왜문의 지배를 하에 온갖 핍박을 다 당하고 있었다. 오랜 붕당 싸움과 대 화재로 무공의 태반을 잃어 문파로서의 원기가 크게 상해 있던 결과였다.

선무곡이 왜문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모순(矛盾)되게도 왜문 때문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마도무림의 양대산맥인 화존궁과 일월마교마저 쩔쩔매자 기가 오른 왜문은 그렇다면 무림천자성도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내 무림천자성 공략에 나섰다.

너무도 쉽게 낙양무천장이 무너지자 왜문은 기고만장(氣高萬丈)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이었다.

그들은 두 알의 천뢰탄이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 똑똑히 보아야 했으며, 곧이어 들이닥친 정의수호대원들이 어떤 능력의 소유자들인지를 너무도 처절하게 경험하여야 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온갖 패악(悖惡)을 다 부리던 왜문은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버티다가는 아예 지상에서 말살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한편 선무곡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왜문에 의하여 지배를 당하는 동안 수탈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남쪽은 무림천자성 사람들이, 북쪽은 일월마교와 화존궁 사람들이 진주해 있었다.

곧 남북은 정과 마의 대리 대결장처럼 되어 버렸다. 둘은 물과 기름이었기에 선무곡은 남북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어찌되었건 외세의 폭압에서 벗어난 선무곡은 곡도들을 이끌 지도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쓸만한 사람들은 모두 왜문에 의하여 목숨을 잃어 곡주 역할을 할만한 사람이 없을 때였다.

이때 무림천자성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사람이 있었다.

무림천자성의 입장에서는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새로운 학문을 보급하는 한편 자신들의 명을 잘 따를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를 곡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온갖 특혜를 다 베풀었다. 식량도 지원하였고, 은자도 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대 난리가 벌어졌다. 북선무곡이 느닷없이 남선무곡을 침공한 것이다.

마도 문파인 화존궁과 일월마교로서는 정파를 표방하는 무림천자성의 분타가 있는 것이 마치 목 밑에 칼을 디민 형국 같아서 못마땅하였다. 하여 북선무곡을 사주하여 공격케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졌다. 치열한 접전이 되풀이되는 동안 수많은 인명이 사라졌다.

삼 년에 걸친 전쟁 끝에 남북간은 휴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지금껏 분단이 고착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기가 지니고 얼마 되지 않아 무림천자성은 선무곡에 대한 투자가 성공하였다는 판단을 내렸다. 들은 은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선무곡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성장하였다. 무림 역사상 이처럼 빠른 속도로 성장한 문파는 아마 전무후무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된 듯하였다. 이 모든 것은 선무곡도들의 뛰어난 두뇌와 억척스러울 정도의 근면함 덕분이었다.

덕분에 선무곡을 후원하였던 무림천자성의 명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전쟁의 폐허 속에 있던 어려운 문파를 조건 없이 돕는 정의로운 문파로 소문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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