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89

등록 2003.05.16 17:56수정 2003.05.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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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이 기회에 왕자님의 기량도 보실 겸 방을 붙이시는 겁니다."

"어떻게 말이오?"


"폐하께서 친히 참관하시는 궁술대회를 여시고 하사품으로 부러진 칼을 내린다고 하십시오. 보통 백성들은 이상하게 여길 테지만 왕자님은 이를 보시고 틀림없이 궁술대회에 오실 것입니다."

주몽은 기뻐하며 당장 그 일을 시행할 것을 명했다. 순식간에 도처에 방이 나붙었고 며칠 뒤 궁술대회가 열렸다. 유리 역시 이 소식을 접하고선 일행과 더불어 궁술대회에 참가했다.

"아버님도 참. 그냥 찾으면 될 것이지 왜 이런 괴상한 자리까지 마련한담?"

유리가 투덜거리자 도조가 그 이유를 얘기해 주었다.

"그거야 형님의 실력을 보고 싶으신 모양이지요. 폐하가 워낙 활에 뛰어나신 분이 아닙니까?"


유리는 도조의 머리를 한 대 때리고선 주의를 주었다.

"난 곧 태자가 될 몸인데 자꾸 형님, 형님 할거냐? 앞으로는 왕자님이라고 불러라!"


주몽을 비롯해 모든 관리들은 물론 월군녀, 예주까지 참관한 가운데 궁술대회는 떠들썩하고 유쾌하게 진행되었다. 가는 곳마다 술과 고기가 제공되었고 즉석에서 백성들의 가무가 곁들여 졌다.

"정말 이곳은 떠들썩한 곳이군. 부여보다 더 하잖아."

유리는 약간 긴장한 투로 연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옥지는 웃으며 지나가는 고구려 처녀들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구추는 길 가던 사람이 권하던 독한 술 한잔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도조는 긴장해 있는 유리에게 뭔가 도움이 될까 말을 붙여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유리는 궁술대회에 참가할 것을 관리에게 알린 후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마침내 유리의 차례가 되고 넓은 들판에 선 유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주몽을 먼 곳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유리는 떨리는 가슴으로 화살을 시위에 얹어 표적을 향해 당겼다.

"명중이오!"

어릴 때부터 활과 친숙했고 그 솜씨도 상당했던 유리에게 가만히 서서 과녁을 맞추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말을 타고 활을 쏘고 싶어도 유리에게는 말이 없었다. 오이가 그런 유리를 보고선 오래 전 주몽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가가 말고삐를 쥐어 주었다.

"이 말을 타고 한번 실력을 보여 주시오."

유리는 감사함을 표하고 신나게 말을 달리며 표적들을 정확히 맞춰 나갔다. 사람들의 탄성이 울려 퍼지고 유리는 궁술대회의 우승자로 지목되었다. 이미 예주가 가르쳐 줘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 주몽은 기뻐하며 유리를 맞아 들였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엎드려 있는 유리에게 주몽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든 유리의 눈시울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네가 바로 이 나라의 태자이니라."

너무도 갑작스러운 주몽의 말에 대신들은 놀랐고 특히 월군녀는 얼굴이 파랗게 질릴 정도였다. 그 옆에 있던 비류와 온조도 주몽의 말을 듣고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자초지종을 들어 사정을 알고 있던 재사였지만 가만히 넘어갈 수는 없다고 여겨 주몽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태자 책봉이란 이런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갖추어야 할 형식과 절차가 있으며 제왕의 길을 알기 위한 수업이 필요합니다."

주몽은 유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재사의 말에 대답했다.

"알고 있소. 허나 짐은 이렇게 많은 백성들이 모인 자리야말로 이 나라의 태자를 알리는 자리에 적합하다고 여기오. 또한 짐부터도 언제 제왕의 길을 알기 위한 수업을 받았단 말이오? 경이 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 일이 틀렸다고는 말못하리라."

재사는 주몽의 뜻이 이미 정해졌음을 깨닫고 더 이상 이런저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월군녀는 마침내 혼절해 쓰러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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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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