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 나는 우리동네 아침방송

서현진 이장님의 방송 수준이 날로 향상되고 있습니다

등록 2003.05.21 13:04수정 2003.05.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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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마을방송 소리통. 소리가 엄청 크다. 소리가 커서 자는 사람은 안 일어나고 못 배긴다. ⓒ 느릿느릿 박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 둘은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은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내가 아플 때 보다 네가 아파할 때가 내 가슴을 철들게 했고 너의 사랑 앞에 나는 옷을 벗었다 거짓의 옷을 벗어 버렸다..."

우리 동네 아침방송이 시작되기 전 시그널 음악입니다. 이 노래가 어떤 때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이장님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방송에는 주위를 환기시킬 목적으로 두 번도 나갑니다.

서현진씨가 작년부터 우리 마을 이장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아침방송의 시그널 음악이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각이 얼마나 적절한지 모릅니다. 가사가 아침방송에 딱 맞아떨어지고 가사의 내용도 절절합니다. 전에는 주로 뽕짝 메들리 위주였는데 한결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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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앰프. 생긴 건 별로여도 성능하나는 쨍쨍하다. ⓒ 느릿느릿 박철

내 아내는 김종환의 노래 '사랑을 위하여'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침에 그 노래가 나오면 밥을 하다가도 크게 따라 부릅니다. 또 이장님의 아침방송을 시작하면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경청을 합니다. 이장님의 안내방송 멘트가 구수하고 감칠맛이 난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합니다. 이어서 아침 방송이 시작됩니다.

"지석리 리민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본격적인 농번기를 맞이하여 요즘 모내기를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잠시 지석리 리민 여러분에게 안내방송을 해드리겠습니다.

제18회 면민의 날 체육행사가 6월 13일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바쁘시겠지만, 6월 13일 이 날은 하루 일손을 놓으시고 면민의 날 행사에 참여하시어 즐겁고 재밌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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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의 아침방송. 지석리 리민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소설가 이문열 씨와 꼭 닮았다. ⓒ 느릿느릿 박철

다음은 우리 지석리 숙원사업인 마을 안길 포장공사가 내일 모레부터 시작될 계획입니다. 오현부락의 선녁해와 선양부락 두 군데의 배수로 정비공사가 시작됩니다. 이번 공사 중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이 있겠지만, 리민 여러분께서는 다소 불편함과 또한 논이나 밭작물에 약간의 피해가 우려됩니다만, 많은 이해를 해주셔야만 우리 지석리가 날로 발전될 수 있으며 깨끗한 우리 마을이 될 수 있사오니, 리민 여러분께서는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지석리 리민 여러분, 이제 앞으로 가뭄이 계속된다고 합니다. 논에 물 관리를 잘 하시어 금년에도 대풍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라면서, 리민 여러분 오늘 하루도 좋은 일만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리사무실에서 리장이 안내방송을 해드렸습니다. 리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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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진 이장님이 모내기를 하려고 모판을 나르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서현진 이장님의 방송 수준이 날로 향상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투박하고 어눌하다 싶었는데, 지금은 거의 아나운서 수준이 되었습니다. 메모를 적어서 하는 거겠지만, 방송해야 될 내용을 정확하게 정리해서 방송을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인물도 대단히 준수하게 생겼습니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우리 동네 서현진 이장님을 닮았습니다. 나는 7년 전 교동에 이사 와서 '이문열씨가 교동에 무슨 볼일로 오셨나? 작품구상하러 오셨나?' 잠시 혼동을 했을 정도로 두 분이 닮았습니다.

우리 동네 서현진 이장님은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합니다. 지석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5년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장님 집에는 늘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성격도 활달하고 통이 커서 기분파입니다. 무슨 잇속이 있어서 손님을 대접하는 게 아니고, 손님 대접하는 일이 취미입니다. 바다에 나가서 그물질도 잘 하십니다. 요즘은 바닷가에 철조망을 쳐서 고기 잡는 일이 어렵게 되었지만, 전에는 숭어를 잡아오면 이웃들에게 다 나누어줍니다. 나도 여러 번 얻어먹었습니다. 마을의 궂은 일에는 발 벗고 나서는 행동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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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 줘. 보기는 쉬워도 허리가 무척 아픈 일이다. ⓒ 느릿느릿 박철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 중에 한 분이십니다. 새벽 4시면 일어나십니다. 내가 매일 새벽기도 마치고 아침 5시30분경에 달리기를 하는데, 벌써 일 나갈 준비를 하고 부산하게 움직이십니다.

한 겨울에는 어둡기도 하고 일이 없으니 보통 늦잠을 주무시는데 서현진 이장님은 꼭두새벽이면 일어나 무얼 하든지 하십니다.

서현진 이장님의 부인께서 하는 말이 "우리 집 양반은 잠이 없어요. 아무리 그 전날 밤늦게까지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자셔도 새벽 4시면 자동으로 일어나요." 타고난 건강체질입니다.

어제 구원이가 은빈이를 데리고 마을회관을 갔던 모양입니다. 거기서 이장님이 방송하는 걸 은빈이가 보고 와서 하는 말이, "엄마! 나 오늘 구원아빠가 방송하는 거 봤다. 동네 방송하는 거 구원아빠가 하는 거야. 저기 있잖아! 식당(마을회관) 이층에 가니까 마이크도 있고 다 있어. 구원아빠가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하는데 잘해. 엄마 누가 방송하는지 몰랐지? 나는 구원아빠가 방송하는 거 다 봤다. 엄마는 못 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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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지석리 전경, 물댄 논에 햇살이 비쳐 눈부시다. ⓒ 느릿느릿 박철

나는 서현진 이장님이 방송만 잘 하는 게 아니라 마을 운영도 잘 해서, 우리 동네 지석리가 인정 많고 웃어른 공경도 잘하며 가정마다 화목한 교동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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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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