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어른들에게 기로연을 열어 드립니다

국립국악원의 ‘공연문화원형탐구시리즈’ 그 네 번째

등록 2003.05.23 20:22수정 2003.05.24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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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당석(景賢堂錫)>은 숙종 45년 음력 4월 18일 아침 9시에 경현당(현재 경희궁 터)에서 임금이 신하를 위해 베푸는 잔치 ⓒ 국립국악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특히 어버이의 날이 있어서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는 의미있는 달인 것이다. 이 때에 우리는 부모님을 위해, 어른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반성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런 '가정의 달'을 맞아 뒤돌아보면 시내 버스와 전철에 버젓이 경로석이 있어도 요즘 세상에 어른들께서 젊은 사람들로부터 합당한 예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그냥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그저 젊은 사람들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가정에서부터 윤리와 도덕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기성세대들이 신세대에게 모범을 보이는 노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느 누구나 노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한다. 예정된대로 우리는 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가야할 그곳 노인을 바라보면서 혹시나 멸시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런 때에 국립국악원은 ‘공연문화 원형탐구 시리즈’ 그 네 번째 기획물 ‘숙종조 기로연’을 열게 되는데 여민동락(與民同樂: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김)의 의미를 새기고, 노인들에게 대한 공경과 나눔을 실천해보려 기획한다.

우리시대의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정서와 윤리를 새로운 공연예술의 패러다임으로 펼쳐 보이려는 시도인 것이다. 지난 1999년엔 종묘제례악, 2001년엔 궁중연례악, 그리고 2002 문묘제례악을 시연해온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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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배기사(잔치 직후 경현당에서 기로소로 가는 길에서 주악에 맞추어 기로와 악사, 무동의 행렬이 이어져 기로소로 이동한다) ⓒ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은 그 공연을 꾸리기 위해 먼저<숙종실록(肅宗實錄)> 기록과 숙종 45년 그림으로 기록한 화첩 <기사계첩(己巳契帖)>, 숙종 45년 9월에 개최된 ‘진연(進宴: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을 기록한 <진연의궤(進宴儀軌>등의 원전을 참고하고, 박정혜, 사진실 등 그림과 의례를 연구한 현대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참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작진으로 참여한 각 방면의 자문단들이 어떻게 본래 의미를 재현하고 공연예술의 완성도를 겸한 무대를 연출할 것인가’하는 점을 토론했다. 즉 ‘원전의 정확한 이해’, ‘창조적 해석’, ‘현대 공연물로서의 흥미와 감동’을 살리고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어울리는 무대화의 고민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 내용이 악가무의 오랜 전통을 호흡해 온 국립국악원 연주단과 무용단, 그리고 의례와 음식, 의상, 소품분야의 전문가들의 전통을 바라보는 뛰어난 안목으로 가다듬어져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숙명여대 송혜진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그 의미를 말한다.

“이제 <여민동락- 공경과 나눔>의 무대를 통해 280여전 초여름 아침. 환갑을 앞둔 국왕이 7, 80세인 국가 원로를 위한 정감 넘치는 예의 공간을 넘나들며 이에 내재된 ‘한국인의 문화 마음’을 공유할 일만 남았다. 이런 체험이‘사람 사이의 정을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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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사연(耆社私宴)>(같은 날 오후 기로소(※현재 교보빌딩 자리)에서 도착한 기로들을 위한 정재와 주악을 벌린다.) ⓒ 국립국악원

'기로연(耆老宴)’이란 노인을 위한 잔치다. 기(耆)는‘나이가 많고 덕이 두텁다(연고후덕:年高厚德)’는 뜻이며, 나이가 일흔살이 넘는 노인을‘기(耆)’ 여든살이 되는 것을 ‘노(老)’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특별히 기로소에 들어온 원로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잔치를 벌였는데 이것을‘기로연’이라고 불렀다.

기로소(耆老所)란 조선시대에 일정자격을 갖춘 국가 원로들을 대접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기로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2품 이상의 문관(文官) 벼슬을 지낸 사람 중 나이가 70세 이상이어야 한다.

매년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과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서울과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된 기로연에는 보통 참석한 기로들이 먼저 편을 갈라 투호놀이를 한 뒤, 진편이 이긴 편에게 공경의‘읍(揖:인사하는 예(禮)의 하나로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린다.)’을 하고 서서 술을 마시는 의식이 있었으며, 이어 음악과 춤, 술과 음식을 갖춘 본격적인 잔치를 벌여 날이 저물 때까지 풍류를 즐겼다고 전한다.

또 연회 뒤, 기로들은 화공을 시켜 잔치 장면을 그려 서로 나눠 갖고 대를 물려 소장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 같은 정례적인 기로연 외에 왕이 기로소에 드는 등의 경사에는 좀 더 특별한 기로연을 벌이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잔치가 곧 숙종 45년(1719년), 숙종이 기로소에 들어오는 것을 계기로 기로들을 궁궐로 초청해 벌인‘경현당석연’과 기로소에서 잔치를 베풀도록 한 ‘기사사연’이 그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선 “숙종조 기로연의 구조”를 살펴보자.

먼저 <경현당석연(景賢堂錫宴)>은 숙종 45년 음력 4월 18일 아침 9시에 경현당(현재 경희궁 터)에서 임금이 신하를 위해 베푸는 잔치로써 첫잔부터 5잔까지 술잔을 올리는 의식에 따라 정재(呈才:대궐 안의 잔치 때에 벌이던 춤과 노래)와 주악(奏樂:음악을 연주함)으로 자리를 빛내며, 2번째 <봉배귀사(奉盃歸社圖)>는 같은 날 잔치 직후 경현당에서 기로소로 가는 길에서 주악에 맞추어 기로와 악사, 무동의 행렬이 이어져 기로소로 이동하며, <기사사연(耆社私宴)>은 같은 날 오후 기로소(※현재 교보빌딩 자리)에서 도착한 기로들을 위한 정재와 주악을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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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무(處容舞:기로소에서 정식 연회의 잔치가 끝남을 알리는 춤) ⓒ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은 특히 이번 공연 “기로연”이 고리타분한 공연으로 남지 않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것으로 다음의 일곱 가지를 들며, 모두가 와서 의미와 함께 즐거움을 누리길 바라고 있다.

① 기로(耆老) 선정의 사연
우리시대 예우를 갖추어 기로소에 입적할 만한 기로들은 각계각층에서 평범하게 살아오신 70세 전후의 원로 10분을 모심으로써 이번 공연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실현하고자 한다.

② 의상, 소품, 가구, 음식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고증 및 자문
왕과 세자의 복식을 비롯, 무동들의 의상, 연회에 쓰이는 주탁과 찬탁까지 자료에 근거하여 제작하되 연출진의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공연으로서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③ 궁중 외연에서 보이는 무동(男)들의 정재
궁중의 내연과는 달리 남자들만의 외연인 만큼 궁중무용은 남자 무동들이 연희하는 엄격함을 엿보게 된다.

④ 경호학과 학생의 시위장수로의 변신
왕을 호위하는 시위 장수 및 별운검 역에 실제로 용인대학교 경호학과 재학생들을 섭외하여, 시각적인 효과 뿐 아니라 사실성을 높인다.

⑤ 스타 철학박사의 집례
철학박사 박재희(EBS 손자병법 진행)가 의례 연출을 맡아 의례를 재현하는 동시에 무대에서는 집례(執禮:나라의 제사 때에 홀기(笏記)를 읽는 일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가 되어 홀기(笏記:혼례나 제례 때에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를 한문과 한글두가지로 써서 관객들이 알기 쉽도록 의례를 유도한다.

⑥ 이동 행렬, 봉배귀사도의 예술적 진화
옛날 소여(가마)를 타고 임금이 내린 은배(銀杯:은잔)를 받들고 경현당에서 기로소로 이동하는 기로, 무동, 악사들의 행렬을 실제로 재현하는 대신, ‘봉배귀사’ 그림을 영상으로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독립된 작품으로 제작한다.

⑦ 나눔의 뒷풀이
기로소에서 정식 연회의 잔치가 끝남을 알리는 처용무(處容舞:궁중의 연희 때와 세모(歲暮)에 역귀를 쫓는 의식 뒤에 추던 향악의 춤)가 끝나면, 뒷풀이를 구성하여 과거에 그러했듯이 연회의 주인공들과 구경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구성한다. 이때 부모에 대한 효도를 노래하는 ‘회심곡’으로 시작된 국립국악원 민속단의 민요와 쌍사자놀이춤(강령탈춤 보존회) 그리고 판굿으로 이어지면서 여흥을 풀어낸다.

혹시 어버이날에 기로의 부모님들을 소홀히 대접하여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자식들이여, 이번 국립국악원의 숙종조 기로연(耆老宴)을 재현한 “여민동락(與民同樂) - 공경과 나눔” 공연에 부모님과 함께 관람하고, 뒷풀이를 통해 못 다한 사랑을 드리면 어떨까? 참으로 의미있는 한판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연날짜는 2003년 5월 28(수)부터 6월 1일(일)까지이며, 평일은 19:30, 토일 17:00에 시작하고, 장소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이다. 입장료는 A석 1만원, B석 8천원 (대학생 이하 학생 및 경로, 장애인 50% 할인 혜택)이며, 문의예매는 국립국악원 02)580-3300, 티켓링크 1588-7890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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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의 ‘공연문화 원형탐구 시리즈’ 그 네 번째 기획물 ‘숙종조 기로연’ 내용 ⓒ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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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연"의 출연 및 제작진 ⓒ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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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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