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기(婚期)를 넘겼지만 누구하나 거들떠보는 사람 없어 늘 한숨만 쉬던 백잔숙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사내가 젊은 청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사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그렇기에 이제 곧 겁탈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 손으로 제 입을 막은 것이다. 만일 비명소리가 터져 나가면 누군가가 다가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내는 도망갈 것이다. 그러면 만사휴의가 될 것이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사내가 외조부의 제자라고 추측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일이 있기 얼마 전, 백잔숙은 마음에 드는 사내들에게 선물을 한 것이 있었다.
의원들은 늘 침통을 지니고 다니기 마련이다. 백잔숙은 유명한 장공에게 부탁하여 모두 열두 벌의 침통을 제작한 바 있었다.
그것의 뚜껑 안쪽에는 귀중한 약재로도 사용되는 사향(麝香)을 넣어 두었다. 그것을 하나씩 나눠준 것이다. 물론 각자에겐 오직 하나뿐인 것인데 주는 것이라는 공치사를 하였다.
비명을 지르려던 백잔숙은 은은한 사향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사내가 온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겁탈을 당하던 어쩌던 일단 일이 벌어지고 난 뒤 발목을 붙잡을 속셈이었던 것이다.
같은 순간 길송섬은 거친 손길로 백잔숙의 의복을 벗겼다. 그리고는 제 욕심을 채우고는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한편, 폭풍일과 후 백잔숙은 코고는 소리를 듣고는 슬그머니 일어나 황촉을 밝혔다. 자신의 청백을 깬 사내가 열두 사내 중 누군지 궁금했던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누가 자신의 평생을 책임져주려고 왔는지 살피려던 백잔숙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내가 벌거벗은 채 코를 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못생긴 외모 때문에 만구소의와 그의 직계 제자들만 머무는 여의숙 내원 밖으로는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았기에 쭉 외원에만 머물고 있던 길송섬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 일로 인해 길송섬은 백잔숙과 혼례를 치렀다. 그리고 한방공의 직계 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비방(秘方)까지 전수 받게 되었다. 얼마 후 한방공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여의숙의 숙주가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처음엔 의술만 배우고 나면 백잔숙을 버리고 다른 여인을 취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백잔숙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길송섬이 어떤 의도를 자신을 겁탈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던 그녀는 그가 의술을 익히는 동안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일단 무공교두를 고용하여 무공을 배웠다. 여차하면 힘으로라도 제압하려는 것이다. 보통 여인들에 비하여 키가 거의 한 자나 더 큰 그녀는 웬만한 사내 못지 않은 완력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성질도 더러웠다. 거기에 무공까지 익혔으니 무공을 모르는 길송섬으로서는 어찌해볼 방도가 없게 된 것이다.
여의숙까지 물려받게 되자 길송섬은 더 이상 도망가려는 생각을 품지 않게 되었다. 막대한 부와 권력 때문이었다.
처음엔 겸손해 보이던 그의 본성이 드러난 것은 여의숙을 물려받고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였다. 어찌나 거만하고 건방진지 웬만한 사람이라면 눈꼴이 시어서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것을 본 한방공의 다른 제자들 모두가 떠나버렸다. 이후 여의숙에는 의원이라곤 달랑 길송섬과 백잔숙 둘만 남게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무림천자성 구경을 떠났다. 그들이 돌아온 직후부터 길송섬과 백잔숙의 헛소리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무림천자성까지 직접 다녀온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엔 선무곡이 어려웠을 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고, 이후에는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애쓰는 문파인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길송섬과 백잔숙의 곡학아세(曲學阿世)는 점점 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곡학아세는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 유림전(儒林傳)에 나오는 말이다.
한(漢)나라 육 대 황제인 경제(景帝)는 즉위하자 천하에 널리 어진 선비를 찾다가 산동(山東)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시인을 등용하기로 했다.
당시 그는 나이 아흔의 고령이었으나 직언을 잘하는 대쪽같은 선비로 소문나 있었다. 그래서 사이비(似而非) 학자들은 원고생을 중상비방(中傷誹謗)하는 상소를 올려 그의 등용을 극력 반대하였으나 경제는 끝내 듣지 않았다.
당시 원고생과 함께 등용된 소장(少壯) 학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산동 사람으로 이름을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늙은이라고 깔보고 무시했지만 원고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학문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서 속설(俗說)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내버려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결국 사설(私設)로 인해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말 것일세. 자네는 다행히 젊은 데다가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란 말을 들었네. 그러니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 주기 바라네.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있어서는 안 되네."
원고생의 말이 끝나자 공손홍은 몸둘 바를 몰랐다.
절조를 굽히지 않는 고매한 인격과 학식이 높은 원고생과 같은 눈앞의 태산북두(泰山北斗)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공손홍은 당장 지난날의 무례를 사과하고 원고생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固之徵也 薛人公孫弘亦徵 側目而視固 固曰 公孫子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후일 사람들은 길송섬과 백잔숙이 얼마나 많은 헛소리를 했으며 그것에 속아 놀아난 자신들을 발견하고 치를 떨었다고 한다.
무림천자성을 다녀온 뒤 둘은 만사를 무림천자성의 기준에 맞췄다. 그러다가 앞뒤가 맞지 않으면 아전인수(我田引水)는 물론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서슴지 않았다.
길송섬이 허언구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외호를 얻은 반면 백잔숙의 외호가 변하지 않은 것은 외출을 삼갔기 때문이었다.
길송섬은 환자들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을 상대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백잔숙은 내원에만 머물면서 오로지 환자들만 보았기에 아무래도 접촉한 인원에 차이가 많았던 것이다.
최근 들어 길송섬과 백잔숙은 세상 살맛이 없다면서 한탄의 세월을 보낸다고 한다. 열렬한 무림천자성 지지자인 청죽수사를 꺾고 일흔서생이 선무곡의 차기 곡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흔서생이 우연한 기회에 여의숙을 찾은 일이 있었다. 이때에도 둘은 그를 깎아 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하여 사람들은 더 이상 여의숙에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선무곡에는 헛소리나 하는 개새끼라는 뜻의 허언구(虛言狗)로 불리는 길송섬과 버금갈만한 헛소리를 하는 여인이 있다.
광견녀(狂犬女) 감련혜(甘蓮惠)가 바로 그녀이다.
그녀가 '미친 개 같은 년'이라는 뜻인 광견녀라는 향기롭지 못한 외호를 얻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녀는 일찍이 무림천자성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돌아와 선무곡에서 제법 명성이 있는 서당의 훈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얼마 전 그녀는 공개된 자리에서 차기 선무곡주로 청죽수사가 마땅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일찍이 무림천자성에 가서 세뇌를 당하고 돌아온 그녀로서는 무림천자성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청죽수사를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발언 가운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에는 청죽수사와 일흔서생이 첨예한 지지율 싸움을 할 때였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월빙보 보주인 흑염수사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무림천자성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흑염수사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었다.
이는 모든 제자들이 일치 단결하여 최후의 일 인만 남더라도 무림천자성과의 결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광견녀 감련혜가 한 말은 이러했다.
"전폭적으로 일흔서생을 지지하는 서인(西人)들은 흑염수사를 지지하는 월빙보 제자들과 똑같다."
이 말 때문에 미친 개 같은 년이라는 외호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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