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 사면 배아픈 이유 알기까지 8년 걸려

대밭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농촌마을의 아름다운 욕심들

등록 2003.06.10 23:01수정 2003.06.1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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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 녘에 아랫집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우리 밭에까지 와서는 나를 아주 몹쓸 사람으로 야단을 쳤다.


"사람이 왜 그렇게 경우 없는 짓을 다 하느냐"면서 한참동안 소리를 치셨다. "할아버지 그게 아니고요‥"라고 해명을 하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고 지랄이고 왜 맘대로 남의 대를 베어 가냐"고 소리를 치셨다.

나는 짜증이 났다.
동네 노인들이 보이는 땅 욕심, 살림 욕심은 이해 못할 바가 아니지만 이렇게 나랑 직접 관계가 생기고 보면 짜증이 난다. 콩밭을 매고 있던 나는 밭가로 나왔다. 새로 구입한 농기계인 ‘풀밀어’라는 수동식 농기구를 밀쳐놓고 목장갑을 벗으며 밭을 가로질러 나왔다.

할아버지네 대밭. 최근에야 나는 이 대밭이 할아버지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 얘기로는 60년을 당신이 관리(?) 해 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네 대밭. 최근에야 나는 이 대밭이 할아버지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 얘기로는 60년을 당신이 관리(?) 해 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 옆에는 할머니도 서 계셨다. 내가 대를 자를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시던 할머니다. 이유는 그랬다. 오후에 내가 대밭에 가서 대를 일곱 그루 베어 온 것이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큰 놈으로만 골라서 베어 갔다고 또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윗집 기정이네가 대밭이랑 산을 다 샀는데 대밭을 관리하는 자기가 무슨 낯으로 기정이네 할아버지를 보겠냐고도 했다. 터무니없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할아버지의 악의 없는 관심이 종종 간섭과 역정으로 이어지기도 하던 터라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은 어쩌면 예고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정이 할아버지한테도 허락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안색이 변하는 듯 했다. '기정이 할아버지가 산을 산 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산 임자 행세를 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할아버지는 말 머리를 돌려 지난번에 두 그루 베어 갔으면 됐지 왜 또 베어 가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뜬금없이 100년 전부터 그 대밭 밑으로 수맥이 흐르고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이번 일과는 상관있어 보이지 않는 이야긴데 그 얘기를 거푸 하셨다. 아마 그 대밭과 당신의 오랜 연고를 강조하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내게는 그렇게 이해되었다.

이 대밭이 요즘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제법 소상히 알고 있는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더구나 이렇게 밭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찾아와서까지 야단을 치는 것은 내 이해의 정도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래서 할아버지 언성 따라 나도 언성을 높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하는 얘기라기보다 해거름 들판에서 야단을 맞고 있는 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동네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내가 지금껏 이 동네에 이사 와서 한번이라도 경우 없는 짓을 하더냐고 반문도 했다. 지난번 대나무를 잘랐을 때 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할아버지가 얼마든지 더 잘라 쓰라고 하지 않았냐고도 항변했다. 오늘 대를 자르러 갔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내 진짜 속마음은 ‘그 대밭이 도대체 누구네 대밭인데 이렇게 난리냐’고 하고 있었다. 멀리서 이 언쟁을 보고 있는 기정이네 할머니가 못 본척하고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의 대밭에 대한 수 십 년 전권이 무너지는 현장을 쾌재를 부르며 반기고 있는 눈치다.

대나무를 잘라다가 우물 위로 대발을 쳤다. 수세미와 오이가 여러 포기 올라갈 예정이다.
대나무를 잘라다가 우물 위로 대발을 쳤다. 수세미와 오이가 여러 포기 올라갈 예정이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마루에 나앉아 있자니 모락모락 울화가 치미는 것이었다. 좀체 기분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이럴 때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밭에서 너무 장황스럽게 할아버지에게 해명하는 데에 치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노인네의 앞뒤 안 가리는 땅 욕심에 내가 비굴하게 보이리만치 노인네 비위를 맞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났다. 굳이 내가 큰 소리로 억지웃음을 웃으면서 할아버지 팔을 부축하여 지근거리를 배웅 해 드릴 것 까지는 없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화가 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문득 내가 대견해졌다. 동네 사람 다 되었구나 싶었던 게다.

땅이 유씨 종중 소유로 있을 때는 할아버지가 그 넓은 산을 자기 땅처럼 사용하고 대밭도 완전히 자기 대밭처럼 수십년을 사용해 왔는데 기정이네가 대밭이 포함된 산을 사려고 하니까 그게 배가 아파서 헐뜯고 했던 것을 내가 다 안다.

기정이네가 산을 사버리면 그 산과 대밭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게 될 테니까 할아버지는 산과 대밭에서 손을 떼야 할 판국이다. 기정이네가 땅을 사는 것은 못마땅해 하면서도 정작 자기는 땅을 한 뼘도 안 사겠다는 것이었다. 그냥 지금처럼 공짜로 내 땅처럼 쓰고 싶은 심보다.

예부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 속담이 그냥 옆 사람 잘 되는 것 시샘하는 정도의 의미로 알았었다. 시골에 농사짓고 살면서 비로소 그 속담의 살아있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 땅이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그 소유관계가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알고 나서 이 속담이 어떻게 무릎을 치게 하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사촌이 사기 전까지는 내 땅처럼 사용 하다가 사촌이 사버리는 순간 내게서 멀어져 가는 농촌의 땅 소유 현실이 눈에 선히 보이기 시작 한 것이다. 대밭사건이 꼭 그를 닮았다.

어쨌든 밤이 깊도록 나는 깜깜한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내가 너무 고분고분하니까 이 노인네가 사람을 정말 우습게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사이버공동체 [길동무(refarm.or.kr)]에서 두 분의 손님이 왔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두 분 다 정농회 회원으로 생명농업을 하시는 분들이라 서로 농사이야기도 하고 그동안의 주변 안부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멀리 밭 어귀에서 할아버지가 나를 어서 나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풀을 베어 밭에 깔고 있던 나는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냉큼 길가로 나오지 않는 게 영 비위에 거슬렸나보다. 눈치로 그걸 느끼면서도 나는 또 앞주머니에 차고 있던 옥수수 씨를 마저 심고서야 밭가로 나왔다.

나오면서 할아버지 왜 그러시는데요? 라고 반문하자 그때도 그랬었다. “할아버지고 지랄이고 왜 시키는 대로 안 해?"라고 하면서 그냥 심으면 까치가 다 내 먹으니까 집 앞마당에 모종을 해서 비닐로 덮어씌우면 손실 없이 싹이 잘 날 테니 비 오는 날 옮겨 심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농사에 비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작년 겨울에 오죽하면 비닐 없는 온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여러 공법을 시도했을라고. 물론 실패했지만.

우리 앞마당은 모종 할 터가 없다고 나는 쏘아붙이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 집을 뻔히 지나쳐 길로 나서야 하는데 못 본 척 한다는 것은 더 어색하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예 할아버지 집 안으로 인사하러 들어갔다. 옆집 강아지가 밭에와서 옥수수 싹 하나만 밟아 놓아도 핏대를 세우고는 개를 잡네마네 하면서도 옥수수 한 소쿠리, 팥 한 자루 그냥 주고 그냥 받는 시골 노인네들의 셈법은 일반인들이 이해 하기 힘들다.

그걸 익히 알기에 나는 할아버지 집으로 갔던 것이다. 할아버지 마음속에는 내가 벤 대나무 몇 그루의 '시장가격'이 문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 말 않고 그냥 아침 인사만 하려고 갔었다. 그런데 나는 뜻하지 않게 길고 긴 사과성 해명을 듣고 나와야 했다. 할아버지의 사과성 해명은 나를 놀라게 했다. 기정이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얼마나 땅 욕심이 많은지를, 대밭을 둘러싸고 당신께서는 얼마나 양보와 헌신을 해 왔는지를 해명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내가 엄청 오해하고 있었던 꼴이 된다.

돌아서 나오면서 나는 몹시 헷갈렸다. 할아버지와의 불편함은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 들었지만 기정이네 할머니가 그랬었다고? 정말?
내 머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고차 방정식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속담 하나를 만들고 놓고 혼란의 터널에서 겨우 빠져 나왔다.

"이웃간에 살면서 옆집 땅 사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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