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58

다물연공관 (5)

등록 2003.06.13 13:27수정 2003.06.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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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작과 더불어 전설적인 신의로 전해지는 화타만한 의술을 지녔다하여 소화타라는 명성 때문이 아니라 매번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하여 관문을 돌파하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지독히도 운이 좋다고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운이 좋다 하더라도 거푸 다섯 번이나 그런 운이 올 리 만무한 일이다.


장일정은 가장 마지막에 의과에 응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기에 맨 마지막으로 응시하였다. 이후 매 관문을 돌파하는 동안에도 항상 마지막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꼴찌를 하였기에 순서에서 밀린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 관문까지 돌파하자 세인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 관문은 돌파하였을 때에는 육천 중에 삼천 번째였고, 이 관문에서는 천오백 번째, 삼 관문에서는 칠백 번째, 사 관문에서는 삼백 번째였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셋째의 성적을 거뒀다.

매번 꼴찌로 통과하였으나 애초를 생각해 보면 육천 중 셋째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그러니 놀라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아무튼 모든 관문을 돌파하고 무천의방 소속 의원이 되자마자 곧바로 특별관문에 도전하여야 하였다.


원래부터 무천의방에 몸담고 있던 이천여 의원들 모두와 새로 뽑힌 셋만이 응시할 자격이 있는 관문이었다.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오백십이 명의 도전자를 뽑았다.


이들이 무천의방의 차기 방주가 되기 위한 아홉 관문을 통과하는 동안 매 관문마다 정확히 반씩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다.

첫 관문은 소문경(素問經), 갑을경(甲乙經), 본초경(本草經), 명당경(明堂經), 난경(難經), 맥경(脈經), 침경(針經), 구경(灸經)을 배강(背講 :책을 보지 않고 외우는 것)하는 것이었다.

세인들의 시선은 장일정이 과연 몇 번째 성적을 거두는 가로 쏠렸다. 그런데 이 관문에서도 보기 좋게 꼴찌를 하였다.

이에 관중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보다 좋은 성적으로 무천의방 의원이 된 자들 모두가 탈락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관문은 조금 더 어려운 의서인 찬도맥(纂圖脈), 동인경(銅人經), 직지방(直指方), 득효방(得效方), 부인대전(婦人大全), 창진집(瘡疹集), 태산집요(胎産集要), 구급방(救急方), 화제방(和劑方), 본초(本草)를 배강하는 것이었다.

이 관문에서도 장일정은 꼴찌로 관문을 돌파하였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술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본시 천하를 놀라게 할 의술을 지녔으나 일부러 매 관문을 꼴찌로 돌파한다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믿을 수 없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첫째를 하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꼴찌를 하는 것이 더 어렵다. 경쟁 상대들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탈락하거나 그보다 나은 성적으로 통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셋째 관문은 다 죽어가는 닭을 침술로 살려내되 가장 침을 적게 사용하는 관문이었다. 이 관문에서도 장일정은 꼴찌로 관문을 돌파하였다.

네 번째는 구안와사(口眼歪斜)를 치료하는 것이다. 얼굴이 마비되면서 입이 한 쪽으로 돌아가는 구안와사는 웬만한 의술을 지닌 의원이라면 능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침을 사용하는 법이다. 그런데 시험관은 침을 사용하지 말고 탕약으로만 치료하라 하였다.

이에 많은 의원들이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평상시 침 몇 방이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기에 굳이 탕약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익혀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일정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이기거풍산(理氣祛風散)을 처방하였다.

이는 공신(襲信)이라는 의원이 저술한 고금의감(古今醫鑑)에 있는 처방으로 매우 복잡한 처방이다.

이 탕약에 처방되는 강활(羌活), 독활(獨活), 천남성, 천마, 천궁, 백지, 형개, 방풍, 백작약은 혈관운동 기능을 강화하고 혈류를 촉진하는 작용을 하는 약재이다.

이외에도 남성, 천마는 뇌혈관의 경련을 억제하고 진정작용을 하며, 반하, 진피, 청피, 지각, 오약은 소화관 운동능력을 강화하여 소화를 촉진하는 효용이 있는 약재이다.

이밖에도 강활, 방풍, 길경, 백작약, 청피, 진피, 형개는 항균작용을 하고, 청피, 진피, 지각은 거부반응을 억제하고, 천마, 천궁, 백지, 독활은 진통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 관문에서도 장일정은 꼴찌로 통과하였다.

다음에 치러진 관문은 어떻게 보면 쉬운 듯하나 어떻게 보면 아주 어려운 관문이었다. 겉으로 아무런 증상도 없는 대신 가려워하면서 추위를 타는 사람들을 치유시키는 관문이었다.

장일정은 땀을 별로 흘리지 않는다는 환자의 말을 듣는 즉시 마황부자세신탕(麻黃附子細辛湯)을 처방하였다.

한(漢)나라 시절 장사 태수(長沙太守) 장중경(張仲景)이 지은 상한론(傷寒論)이라는 희귀의서에 있는 이 처방은 단 세 가지 약재로 만들어지는데 마황(麻黃), 부자(附子), 세신(細莘)이다.

그렇기에 마황부자세신탕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이다.

부자와 세신은 모세혈관을 확장하여 체열 공급을 증진하므로 써 피부말단을 따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부자는 내병성을 강화시켜 강심, 강장작용을 하는 약재이다.

또한 마황과 세신은 약한 발한(發汗)작용을 하여 감기 등으로 인한 발열을 해열시키고, 가려움증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황은 항균작용을 하여 감염증상을 개선하는 약재이다.

이번에도 장일정은 꼴찌로 관문을 돌파하였다. 그가 돌본 환자가 열여섯 번째로 치유된 것이다. 다른 의원들 가운데에는 장일정과 같은 처방을 내린 의원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환자는 장일정의 환자보다 먼저 쾌차하였다. 강하게 처방을 한 때문이다. 하지만 장일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병이란 나을 만할 때 나아야 하는 법이다. 무엇이든 억지로 하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가 돌본 환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환자들이 두통을 호소하였던 것이다.

이후 치러진 시험은 마땅히 뜸으로 다스려야 할 환자를 침으로 다스리거나, 탕약으로 다스릴 환자를 뜸으로 다스리는 등의 문제였다. 이 역시 장일정은 꼴찌로 관문을 돌파하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끼니를 거르면서도 자리를 뜨려하지 않았다.

마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는 듯 눈빛을 빛내면서 오로지 장일정의 일거수일투족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관심 때문인지 장일정과 담천우 간의 최종 대결만이 남은 것이다.

장내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만족스럽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문 채 주변을 슬쩍 돌아본 시험관은 너무도 늙었기에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 보료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천강성의 담화진에게 목례를 올린 후 염소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에헴! 이제 마지막 관문을 실시하겠습니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시면 각기 환자 하나가 누워 있을 것입니다. 누가 먼저 치유시키는가가 마지막 관문이니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일정이 먼저 들어가라는 의미에서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지금껏 말 없이 앉아 있던 속명신수 담천우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전각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으이구! 뭐라고 한 마디 하면 어디 덧나나? 젠장!'

장일정은 철저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속명신수가 왠지 마뜩치 않았으나 어쩌겠는가?

만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전각의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흠칫하며 멈춰 섰다.

환한 대낮이고 창문이 열려 있으므로 굳이 불을 밝힐 필요가 없건만 수십여 개의 황촉이 밝혀져 있는 가운데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들짝 놀라 안을 살펴보니 전각 내부에는 탁자 하나가 있고 그 위에는 한쪽 팔이 잘려나간 시신이 있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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