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혜택의 질감 속에서

등록 2003.06.16 11:47수정 2003.06.1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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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군인'에 대한 어렸을 적의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가끔 검은 안경을 썼거나 쇠갈고리 손을 했거나 한쪽 다리가 없어 목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집집을 다니면서 '적선'을 구하는 모습이다. 때로는 학교에도 와서 학교측의 도움을 받으며 책이나 학용품 따위를 파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므로 상이군인에 대한 내 기억들은 별로 밝은 색조를 띠고 있지 못한 경우에 속한다.


지금도 상이군인하면 우선 음울하고도 충충한 느낌부터 온다. 언젠가 한번은 시장의 상점들을 돌며 적선을 구하던 상이군인들이 한 집에서 시비가 붙어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는데,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괜히 몸이 움츠려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상이군인이라는 이름만 알았지 그 이름의 구체적인 뜻은 알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이군인, 또는 상이군경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게 된 때는 아마도 중학생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상이군인에 대한 내 소년 시절의 기억이 별로 밝지 못한 것이며, 상이군경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좀더 일찍이 알지 못했던 사실은 오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에서 우리나라의 보훈 의식이나 보훈 체계가 참으로 일찍 제대로 자리잡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상이군경에 대한 내 소년 시절의 음울한 기억이나 그 가난했던 시절의 여러 가지 관련 정황들을 떠올려보면서 오늘의 보훈 상황을 돌아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고장만 해도 버젓이 '보훈회관'이 건립되어 100명이 넘는 상이군경들이 뿌듯한 마음을 안고 보훈회관을 이용하며 친목도 잘해 나가고 있으니 여간 다행이 아니다.

최근 <대한민국상이군경회>에 회원으로 등록을 했다.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 판정으로 지난 3월 제7급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곧바로 상이군경회에 가입 신청을 했는데, 6월 '보훈의 달'을 맞으면서 '회원증'을 받게 되어 고맙고도 기쁜 마음이다.


'국가유공자증' 외에 '상이군경회원증'을 소지하게 되니 현실 생활에서 누리는 보훈 혜택의 폭이 좀더 넓어졌다. 최근의 먼길 나들이에서 그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열차 이용은 홍성보훈지청에서 보내준 '철도무임승차확인증'으로 무임 혜택을 볼 수 있었는데, 서울 지하철과 시내버스 이용 등은 상이군경회원증 제시로 무료였고,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이용은 30% 감면 혜택을 볼 수 있었다.

무임이나 감면 혜택이 주어지는 수송·통신 시설 이용이나 그 외 여러 가지 지원의 세목들을 보면, 그것들을 모두 합해도 별로 큰 금액은 아닐 것이다. 나 같은 7급의 경우 현재 월 보상금이 20만 6천원이니 금액적으로는 그다지 큰 혜택이 아니라 하더라도, 심리적 상징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서울 나들이 길에서 상이군경회원증을 제시하고 지하철 '무임승차권'을 받았을 때 느낀 보훈에 대한 질감이 매우 신선했음을 즐겁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고장 보훈회관에 가끔 출입을 하게 되면서 6.25 전쟁 때 격전지에서 부상을 당한 선배 어른님들을 많이 뵙게 된다. 이제는 인생의 황혼녘에 다다라 계시는 그 어른님들을 뵐 적마다 송구한 마음이 절로 들곤 한다. 명색이 작가로서, 더욱이 '고향을 지키는 작가'라는 자칭 타칭의 수식 명칭을 달고 살면서 우리 고장 상이군경 어른님들에 대해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다는 죄송한 생각이 참으로 크다.

한국 전쟁에서 부상당한 그 선배 어르님들 앞에서는 나의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지는 기분도 경험하곤 한다. 확실한 부상에 의한 장애도 아닌 처지에서 상이군경들의 대열에 동승하고 있는 것이 조금은 면구스러워지는 기분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월남에서 행정병이나 비전투요원이 아닌 말단 소총중대의 전투병이었다는 사실에서 묘한 위안을 얻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훈 대상자들 중에는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저 1980년 광주시민들의 민주항쟁을 진압한 공으로 줄줄이 훈장을 주고받은 '똥별'들이 그들이다. 지금도 그 부당한 '똥별들의 행진'은 보훈 행정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것이 보훈의 기본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데도, 별로 문제 제기도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나는 그 철면피한 똥별들을 생각하면 내 보훈 혜택과 관련하여 묘한 모멸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자부심과 위안을 얻는다. 그들보다 내 보훈 혜택의 폭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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