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전철 안에서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요즘에는 좀체 보기 힘든 낯선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꾀나 많은 지하철 안에서 노약자 보호석에 앉은 젊은 부인이 있었다. 나이가 5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세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맞은 편에 앉아서 보는 아이들은 국제결혼을 하여 낳은 아이들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케 하였다.
자리에 앉고 나서 남자아이가 엄마에게 무얼 달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가방을 뒤져서 껌을 꺼내어서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껌을 까서 입에 넣고서는 껌 껍데기 포장지를 전동차 바닥에 버렸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가 아주 엄한 목소리로 "여긴 찻간이야. 너 왜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거야. 어서 주워"하자 아이는 시무룩해져서 엄마를 쳐다보면서 어리광을 부리려 하였다.
"안 돼. 어서 주워. 다른 사람은 하나도 버리는 사람이 없잖아. 그런데 너만 버릴 거야. 누가 이 걸 주워야 하지?"
어머니가 다시 말을 하자 곁에 앉아 있던 아이의 이모인 듯한 젊은 여자가 "그냥 주우면 될 걸 가지고 아이를 왜 그래?"하면서 쓰레기를 주우려고 하자, 아이 어머니가 얼른 손목을 잡아 말리면서 "이러지 마! 이건 이 아이가 버린 거야. 지 손으로 주워야 하는 거야. 네가 평생 따라다니면서 주워 줄 거야?"하니까 이모는 무참해서 얼굴이 빨개지면서 "아직 어린애를 가지고 너무 하잖아. 그냥 주워버리면 될 걸 가지고..."하고 맞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보면서 "봐, 네가 버려 놓으니까 이모가 주으려고 하지 않아. 얼른 네가 주워! 이모하고 엄마가 너 때문에 싸우겠어. 어서!"하고 소리를 높이자 아이는 얼른 껌종이를 주워서 엄마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종이를 받는 게 아니라 다시 아이에게 "그걸 누굴 줘? 네가 버렸으니 네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나가서 쓰레기통에 버려야지"하고 말을 하자, 아이는 얼른 종이를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비로소 "그래 잘 했어. 이제는 그렇게 꾸중듣고 주워 넣지 말고 처음부터 호주머니에 넣는 거야. 알겠지?"하고 다짐을 받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이런 경우를 보았다면 과연 어떻게 하였을까?
아마도 어머니가 주워 버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모른 척하고 있었을는지 모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잘못하고 있는 점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말을 알아들을 정도라면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이나, 공중도덕에 위배가 되는 일은 하지 못하게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이 이런 일에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있거나, 어린아이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버리기 쉽다.
오히려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무라기라도 하면 "아직 어려서 모르고 그런 것을 가지고 그렇게 야단을 치고 그래요? 자기가 뭔데 남의 아이를 기죽이려고 그래 참 별꼴이야" 정도는 보통이고 한술 더 떠서 "아니 당신이 뭔데 우리아이를 나무라고 그래요? 당신 자식들이나 잘 가르칠 것이지?"하고 덤벼들기 일쑤이다.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한 것일까?
아무리 어리더라도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벌써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별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은 자녀의 판단력을 길러주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기능을 길러주는 일이다.
이것이 결코 자녀를 괴롭히는 일이라거나 기를 죽이는 일은 아니다. 장차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켜야할 사회적인 기초기능을 익히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교육을 감싸고 귀여워만 하다가 망치고 있지는 않는지? 해도 괜찮은 일과 안 되는 일을 어려서부터 가릴 줄 알게 해주는 것은 부모로서 맡은 바 구실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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