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에 절터·불상만 1백군데 1백개

[오마이추천 주말가족여행 6] 정신을 살찌우는 산, 경주 남산

등록 2003.06.19 08:01수정 2003.06.2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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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삼릉 소나무숲.

삼릉 소나무숲. ⓒ 권기봉

147군데의 절터와 118기의 불상, 96기의 탑, 그리고 고분 37기.

도대체 이렇게 많은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분과 왕릉이 있는 것을 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아닐 터. 그렇다고 어느 한 행정구역에 속해 있는 유물의 개수를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힌트는 단 하나의 산에 몰려 있는 유물과 유적이라는 것. 도대체 얼마나 큰 산이기에 이렇게 많은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불교가 흥했으면 절터와 불상만도 1백 군데, 1백 개가 넘을까?

일단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로 가라. 그리고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라.

"도대체 몇 백 개나 되는 불교 유적이 남아 있는 산이 어디입니까?"

열에 아홉은 손을 뻗어 경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담한 산, 남산(南山)을 가리킬 것이다. 전국 어느 곳이나 남산이라 부르는 산은 있지만, 특히 경주 남산은 남다른 산임에 틀림없다. 용장사(茸長寺)터 삼층석탑 등 13점의 보물을 비롯, 모두 672점의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경주 남산은 겨우 해발 468미터의 낮은 산에 불과하다. 그러나 산에 직접 올라 보면 알겠지만 그리 만만하게 생각할 산은 결코 아니다.

그 작은 산에 계곡만도 40여 개


보통 경주하면 불국사와 석굴암, 포석정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실제 신라 문화의 정수는 남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가 망하면서 함께 잊혀져 버렸지만, 경주 남산은 신라의 도성이 있던 월성(月城)과 지척이고 최초의 궁궐이 들어섰던 곳 역시 바로 남산 창림사(昌林寺)터 인근이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이들이 찾았을 남산엔 탑도 많고 그 탑들이 세워졌을 절터도 많다. 10여 세기 전 신라인들이 온갖 욕망으로 탁해진 자신에 놀라 찾았을 사찰과 불상들.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남산에 올라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보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너른 들판이 있고 맑은 내가 흘러 '쉬벌'이라고도 불린 땅 경주. 남산의 기원과 관련해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한 아낙이 우연히 경주를 찾은 남녀 신(神)을 보게 된다. 너무 놀란 나머지 "저기 산 봐라!"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이에 놀란 신들이 그대로 자리에 멈춰 산(山)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여자 신은 망산(望山)으로, 남자 신은 남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남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우람한 바위들이 계곡과 능선을 잇고 자르고 있어 남자 신이 변해서 된 산같다.

남북으로 8km, 동서로 4km의 그다지 크지 않은 산이지만 40여개의 계곡을 안고 있을 만큼 깊은 산이 남산이다. 어느 계곡을 먼저 가야할지 난감하다. 이번에는 우선 18개의 유물이 있는 삼릉골과 역시 18군데의 절터를 간직하고 있는 용장골을 따라 남산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다른 어떤 계곡보다 많은 유적이 남아 있어 처음 남산을 찾는 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줄 코스이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나타나는 불상들, 삼릉골로 들어가다

a 가장 먼저 만나는 ‘삼릉골 목 없는 석불좌상’.

가장 먼저 만나는 ‘삼릉골 목 없는 석불좌상’. ⓒ 권기봉

먼저 삼릉골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배를 든든히 할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험한 산이 남산이라 자칫 끼니를 거르고 산에 올랐다가는 허기에 지쳐 남산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삼릉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여름 별미' 콩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산에 올라 보자.

계곡이 시작되는가 싶더니만 나오는 것이 삼릉(三陵)이다. 말 그대로 세 개의 능이 있는 자리로 아달라왕(阿達羅王)과 신덕왕(神德王), 경명왕(景明王)의 능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능 때문에 계곡 이름이 삼릉골인데, 능을 둘러싼 소나무 숲에 더위가 싹 가시는 듯하다. 때문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세월아 내월아 하고 싶지만 어디선가 자꾸만 누가 올라오라고 부르는 것만 같다.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

바윗길이 시작되는가 싶더니만 첫 불상이 눈앞에 나타난다. 양감이 풍부하게 표현된 것이 두둑이 살찐 이를 보는 듯한데, 남산의 석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머리는 잘려나가고 없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니고 아래 계곡에 묻혀 있던 것을 이리로 옮긴 것이라 한다. 앞뒤 자세히 살펴보면 앞으로 소개할 불상들과는 달리 섬세히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왼쪽 어깨에 걸린 옷고름은 그 선이 참 부드럽고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a 삼릉골 마애선각육존불상이 새겨진 바위에 남아있는 배수로 흔적.

삼릉골 마애선각육존불상이 새겨진 바위에 남아있는 배수로 흔적. ⓒ 권기봉

여기서 왼쪽 위를 돌아다보면 바위에 부처 하나가 걸려 있다. 앞에 있는 머리 없는 불상과는 달리 마애불이다. 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로 왼쪽 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립스틱을 바른 듯 붉은 기가 남아 있는 입술이 인상적이다. 자칫 홀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

더 들어가면 이내 계곡이 두 갈래로 나뉘며 병풍처럼 널찍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를 쪼아 선으로만 불상들을 표현했는데, 규모나 선의 마무리가 남달라 보인다.

이 불상은 '휙'하니 지나치고 말 대상은 아니다. 그 왼쪽으로 틈이 나있는 곳을 따라 위로 올라가 보면 흥미롭게도 전각의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보이는 홈과 배수구로 쓰였을 법한 물길을 내 놓고 있다. 만약 이곳에 전각을 씌우고 전신을 만들었다면 서산 마애삼존불을 둘러싼 전각과 흡사한 것이 아니었을까?

5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역시 선으로만 표현한 불상이 하나 있다. 만든 방식을 그대로 따 선각여래좌상이라 부른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지만, 두꺼운 입술을 삐죽 내민 모습이 정겹기 그지 없다. 어디 입술만 두꺼운가? 코는 주먹코요, 귀는 독일 소시지처럼 길쭉한 것이 볼품은 없다.

조각한 이가 미감(美感)이 없었던 것인지 그저 우리네 보통 사람을 표현하려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느 사찰에서 보는 불상의 근엄함이나 위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a 삼릉골 선각여래좌상의 주먹코와 두꺼운 입술, 소시지 귀.

삼릉골 선각여래좌상의 주먹코와 두꺼운 입술, 소시지 귀. ⓒ 권기봉

아차, 남산에서는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계곡만 40개가 넘는 깊은 산이 남산이다. '경주남산연구소'에서 배포하는 남산 안내 지도를 직접 얻어도 되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도 지도를 다운받을 수 있으니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또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핸드폰 정도는 꼭 챙기자. 물론 다시 내려올 생각이 없다면야 지도나 핸드폰은커녕 물병도 필요 없겠지만.

아무튼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자. 자꾸만 어서오라고 하는 소리가 마음 속에서부터 들려온다. 선각여래좌상이 있는 곳에서부터는 아래로 내려가자. 어차피 산이란 것이 오르고 내리다 보면 결국 나와 하나가 되는 것. 지금까지 힘들게 오른 것이 아깝다고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사탕 우물거리는 불상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

a 삼릉골 석불좌상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탕을 물려(?) 버렸다.

삼릉골 석불좌상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탕을 물려(?) 버렸다. ⓒ 권기봉

이것은 대좌와 비록 깨어지기는 했지만 광배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불상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윗부분만 약간 깨진 채로 대좌에 올려져 있던 광배라지만 지금은 아예 두 동강이 나버렸고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역삼각형 몸통과 잘록한 허리가 마치 잘빠진 남자를 연상시키는데, 얼굴로 시선을 돌리면 미간이 찌푸려지고 만다. 누가 그랬는지 광대뼈 아래 부분을 시멘트로 발라버렸기 때문이다.

복원한답시고 시멘트 벙커를 씌워 연이어 문제가 터지는 석굴암이나 익산 미륵사터 석탑도 모자라 남산까지 와서 이런 흉한 꼴을 보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당대 최고의 기술로 복원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복원으로 오히려 원형이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은 결국 주최측의 경솔한 결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삼릉골 초입의 머리 없는 불상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보물 제666호는 눈알 사탕을 두어 개 물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그 볼살, 못내 불만이다.

a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의 얼굴 부분으로, 삼릉골의 다른 불상들과는 달리 위엄 있는 인상이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의 얼굴 부분으로, 삼릉골의 다른 불상들과는 달리 위엄 있는 인상이다. ⓒ 권기봉

상선암이다. 어쩌면 삼릉골에서 가장 멋진 불상일 수 있는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은 높이만도 5.2미터에 이르는,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이다. 무턱대고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얼굴을 묘사한 솜씨가 예사 석공이 아닌 듯한데, 몸통과는 달리 머리 부분을 입체화시켜 인상이 더욱 강해 보인다.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당시의 신라는 '고요한 신라'가 아니었다. 보통 나라가 안정될 때 이런 역사(役事)를 벌인다고 하지만, 과연 당시 신라인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큰 불상에 공력을 들였을까.

불상에서 잠시 눈을 떼고 배리(拜里) 들판을 내려다본다. 그 배리라는 지명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에 재상, 유렴은 아는 스님을 통해 한 스님을 소개받는다. 그러나 그 행색이 볼품없고 초라해 보통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유렴도 못 입고, 못 씻은 그 스님을 업신여겼단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님이 소맷자락에서 나온 사자를 타고 날아가 버린다. 이에 깨우침을 얻은 유렴이 그 스님이 날아간 곳을 향해 밤새 절을 하며 빌었다고 해서 '절하는 동네' 즉, 배리라고 비꼬아 불렀다고 한다. 그 배리는 지금 유렴대신 벼들이 비를 바라며 절하고 있는 듯하다.

a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과 배리 들판.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과 배리 들판. ⓒ 권기봉

아이를 바라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상사암에 올라 다시 한번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과 배리 들판을 보면 이제 삼릉골 여행을 끝이다. 잠시 앉아 몸을 식히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용장골을 찾아가 보도록 하자.

산 위의 도로, 용장골로 안내하다

남산 정상에 웬일인지 도로가 길게 나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 뚫은 길이라는데, 작년 여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토사 1천㎥를 토해낸 도로다. 이 도로를 따라 용장골로 가자. 가다보면 군데군데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야 할 곳에 웬 작은 나무와 잡초들만이 무성한 곳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지난 97년 2월 남산을 휩쓴 대형 산불의 흔적이다. 이후 지속적인 조림 사업을 해 그나마 녹색을 되찾아가는 느낌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산은 민둥산에 다름 아니었다고 하니 사람이 변하는 만큼 자연도 덩달아 변하는가 싶다. 아니 자연은 그대로인데 괜실히 사람들만 옆에서 변죽을 올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a 97년 2월의 대형 산불로 남산은 화를 당한다. 그러나 자연은 살아있어 차츰 생명력의 위대함을 확인시켜준다.

97년 2월의 대형 산불로 남산은 화를 당한다. 그러나 자연은 살아있어 차츰 생명력의 위대함을 확인시켜준다. ⓒ 권기봉

용장골은 용장사가 있던 계곡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 용장사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외로운 마애불과 석불좌상, 삼층석탑 한 기만이 남아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낼 뿐이다. 용장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을 쓴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31세 때부터 37세 때까지 칩거했던 절로,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주 못지않게 운치 있는 곳이 바로 용장사터에서 보는 경주다. 특히 단아하게 앉은 삼층석탑 너머의 산하는 다른 곳에서는 감히 볼 수 없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2층 기단 형식이나 따로 기단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암반 위에 그대로 세워 마치 남산을 기단으로 삼은 듯한, 대범함을 뽐내고 있다. 깊게 숨을 한번 들이쉬니 김시습의 '용장사' 시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용장사

용장골 깊어 오가는 사람 없네
보슬비에 신우대는 여울가에 움돋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 희롱하는데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었네
의자에 먼지가 재처럼 깔렸는데
깰 줄 모르네 억새 처마 밑에서
들꽃은 떨어지고 또 피는데


석탑 옆에 있는 석물은 신라 유가종(瑜伽宗)의 대덕인 대현(大賢, 太賢)이 염불을 하며 불상 주우를 돌 때 불상도 함께 얼굴을 돌렸다는 석불좌상. 역시 머리는 어디 갔는지 목을 떠난 지 오래인 듯한데, 무릎을 감싼 옷 주름 표현이 풍부하다. 대좌의 모양새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마치 UFO를 몇 개 겹쳐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평평한 자리에는 사람들이 조약돌로 탑을 쌓았다. 그러나 쉽게 돌을 쌓지 말지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출가하게 될지 그 누가 알리요.

안개 낀 새벽녘 용장골을 보셨나요?

a 용장사터 삼층석탑은 하늘에 떠있다.

용장사터 삼층석탑은 하늘에 떠있다. ⓒ 권기봉

석굴암이나 감은사터 등 경주에서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는 사진가 안장헌은 남산에서 자신의 마음을 이끄는 '10경'으로 꼽고 있는 삼릉골과 용장골은 이렇다.

안개 낀 오전 8시나 일몰 시간의 용장골 삼층석탑과 아침 안개 혹은 석양. 역시 안개 낀 날 새벽의 삼릉 소나무 숲. 그리고 9월 하순에서 10월초 오후 2시 30분경의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과 황금들녘.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남산을 적잖게 찾은 이들의 조언을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아니, 너무 조바심을 내는 것인가? 어차피 남산은 꾸준히 마음으로 보고, 안에서부터 느껴야 하는 것. 한두 번의 방문으로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살찌우길 바라는 것이 오히려 성급한 것일 수도 있다.

휘적휘적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아래로부터 차가운 계곡물 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내려오란다. 여유 있게 돌아보면 족히 한 나절은 걸리는 코스이지만 답사 자체가 인간의 심연을 향한 것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리 피곤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은 남산. 이미 가슴 속 한켠을 차지해 버린 듯한 남산의 느낌,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a 함부로 돌탑을 쌓지 말지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출가를 할지 그 누가 알리요.

함부로 돌탑을 쌓지 말지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출가를 할지 그 누가 알리요. ⓒ 권기봉



<2003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경주 남산 무료 답사
오는 8월 10일까지 매주 일요일 출발

ⓒ경주남산연구소


8월 13일부터 10월 23일까지 <2003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린다.
특히 눈에 띠는 행사는 경주 문화의 백미인 남산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오는 6월 22일부터 8월 10일까지 매주 일요일 열릴 이번 남산 답사 행사는 서남산과 동남산 두 가지 코스로 진행된다. 이 중 서남산 코스는 <오마이 추천 주말가족여행>의 코스와 비슷한데, 남산의 계곡 중 가장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어 남산 불상들을 시대적, 미술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점심은 개인이 지참해야 하나, 행사는 무료로 진행된다.

답사 행사 참가 신청은 www.cultureexpo.or.kr을 통해 선착순 접수를 받고 있으며, 054-745-2771을 통해 전화 접수도 가능하다.

<경주남산연구소>를 통해 상세한 남산 등산 지도를 얻을 수 있는데, www.kjnamsan.org에 접속하면 직접 지도를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다. 교통 표지판이나 대중교통망이 발달되어 있어 삼릉골 입구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용장리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삼불사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또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경주 시내에서 언양으로 향하는 35번 국도를 타면 된다.

그러면 오릉사거리에서 1.8km 정도 가면 삼불사와 배리 삼존석불로 들어가는 곳이 나온다. 여기서 계속 직진, 450m 정도 더 가면 바로 삼릉골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게 된다. 삼릉골 입구 맞은편, 즉 진행하고 있는 방향으로 '신삼릉휴게소‘ 간판이 걸려 있으니 놓칠 일은 없을 것이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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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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