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4)
마라도 기원정사

한국 최남단 마라도 기원정사 관음보살상

등록 2003.06.23 07:26수정 2003.06.2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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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표지석엔 "大韓民國最南端"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곳이 바로 한국의 최남단 마라도이다.

표지석엔 "大韓民國最南端"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곳이 바로 한국의 최남단 마라도이다. ⓒ 임윤수

큰맘 먹고 관광차 제주엘 갔던,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던 간에 재수 없이 바람이라도 불어 파도가 높거나, 바람은 불지 않아도 파도가 높게 이는 파랑주의보라도 내리면 구경할 수 없는 제주도내 관광지가 있다.

오름이란?

오름이란 제주화산도상에 산재해 있는 기생화산구를 말한다. 오름의 어원은 자그마한 산을 말하는 제주도 방언으로서 한라산체의 산록상에서 만들어진 개개의 분화구를 갖고 있는 소화산체를 의미한다. 오름은 분화구를 갖고 있고 내용물이 화산쇄설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산구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임윤수
제주도는 변변한 평야도 없으면서 산이라고 불리는 산은 기껏 몇 개뿐이라고 한다. 368개나 되는 봉긋봉긋한 산봉우리의 대개는 오름(岳)이라고 불린다. 산이라고 불리는 것은 제주도의 대명사이기도 한 한라산을 포함한 송악산과 산방산 그리고 이 외에 한 두 개가 더 있을 뿐이다.


제주의 서쪽 끝에 있는 송악산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두 개의 섬이 있으니, 좀더 크며 가까이 있는 섬이 가파도이며 좀더 멀리 조그마하게 보이는 섬이 마라도이다.

마라도는 우리나라 국토의 최남단이다. 대한민국의 영토 중 흙이 존재하는, 인간들이 발로 밟고 일어설 수 있는 제일 남쪽 끝 땅이다. 마라도는 섬 전체 면적이 약10만평 정도이고 섬을 빙 돌게되는 해안선의 길이가 십리 조금 넘는, 도보로 1시간쯤이면 넉넉하게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마라도는 길쭉한 타원형으로 마치 한 척의 항공모함을 연상케 하는 형상이다. 그리고 그 둘레에 마치 운동장 트랙처럼 포장된 도로가 있다. 위에서 보면 타원형의 형체지만 옆에서 보면 마치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한 형태이다. 바다 가운데 붕 떠있는 듯해 섬이 파도 따라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가져올 때도 있다.

a 작은 세움간판이 일주문을 대신하여 이곳이 한국 최남단에 위치한 기원정사임을 말해주고 있다.

작은 세움간판이 일주문을 대신하여 이곳이 한국 최남단에 위치한 기원정사임을 말해주고 있다. ⓒ 임윤수

송악산 선착장에서 마라도행 배를 타고 30분쯤 가면 섬에 도착하게 된다. 선착장에서 계단 몇 개를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연녹색 초원이 펼쳐진다. 광활한 초원은 아니지만 막힘없는 바다 가운데 초원은 마음조차 후련하게 해 준다.

기자가 20여년 전 마라도에서 잠시 생활을 할 때와 지금의 마라도는 영 달라져있다. 하기야 강산이 두 번은 바뀔 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제주도의 모습이 20여 년 전 마라도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였다. 굵직한 동아 밧줄로, 마치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은 지붕의 모습이 그렇고,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었을 정도로 낮은 집 구조가 그렇다. 요즘 제주도의 민속촌이나 민속마을의 그것들에선 왠지 억지부린 장사꾼 냄새가 난다.

a 한국의 최남단에서도 아침저녁으로 범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의 최남단에서도 아침저녁으로 범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임윤수

지금의 마라도엔 시멘트콘크리트 건물들뿐이지만 그때는 기껏해야 등대와 마라분교 두 건물만 시멘트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돌과 흙으로 벽을 만들고 억새로 지붕을 덮은 그런 초가들뿐이었다.


가끔 소개되는 제주도 민속놀이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이어도 타령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어도 타령에 나오는 전설의 섬 이어도는 마라도 앞쪽에 있다는, 말 그대로 전설의 섬이었다.

a 대웅전과 관세음보살상이 조화를 이루었다.

대웅전과 관세음보살상이 조화를 이루었다. ⓒ 임윤수

고기잡이를 나갔다 난파돼 영영 돌아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네들의 한과 그리움을 '이어도사나∼’이어도사나∼에 실어 타령으로 토해내고 있는 제주 민요가 이어도 타령이다.

제주의 여인들에게 이어도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혼이 잠든 곳이며 결국 자신도 님을 따라 찾아가야 될 곳으로 믿는 전설의 섬이었다. 다시 돌아오지는 못하지만 사시사철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 여겼던 이어도는 지겹도록 고달픈 이승의 삶을 떠나 제주도 여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꿈의 섬일지도 모른다.

소설 <이어도>에서는 '긴긴 세월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이어도를 말하고 있다. 그렇게 이어도는 전설의 섬이자 보이지 않는 상상 속의 섬이었다.

a 단층 건물인 대웅전 지붕에 커다랗게 기원정사라고 써있다.

단층 건물인 대웅전 지붕에 커다랗게 기원정사라고 써있다. ⓒ 임윤수

파랑도(波浪島)라고도 불리는 이어도는 마라도 서남쪽 149㎞ 지점 바다 속에 있으며 해도상 명칭은 'Socotra Rock'라고 한다. 1900년 봄에 6000t급 영국상선 소코트라호가 일본에서 상해로 가던 중 암초(이어도)에 좌초되면서 처음으로 발견하였다고 한다.

얼마전 이어도에 첨단 해양과학기지가 들어섬으로써 이어도는 더 이상 전설의 섬이 아닌 현실의 섬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400평에 불과한 작은 해양기지이지만 이어도는 동중국해의 어업 전진기지가 될 축복의 장소로 변했다고 한다.

전설 속에 머물던 이어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여전히 구원과 복을 주는 피안의 장소로 마라도 사람들에겐 기억될 것이다.

애환 가득한 마라도 여인네들의 한을 달래고 영혼을 구원해 주며 넉넉한 마음으로 복을 주는 피안의 장소로 인도하려는 듯 작은 섬 한국의 최남단 마라도에도 기원정사라는 절이 있다.

a 원목으로 건립된 기원정사 대웅전은 휴양지같이 편한 느낌을 준다.

원목으로 건립된 기원정사 대웅전은 휴양지같이 편한 느낌을 준다. ⓒ 임윤수

일반적으로 절하면 알록달록하게 단청이 된 고건축 방식의 전각(건물)을 생각하게 되지만 기원정사는 마치 원목의 별장 같은 분위기다.

제대로 된 일주문 하나 없이, 바닷가를 걷던 해안 길에서 그냥 들어서게 되지만 기원정사에는 은은함과 웅장한 타음을 담은 범종이 아침저녁으로 영락없이 타종된다. 철썩이는 파도와 기암절벽을 이룬 작은 섬에서 뎅∼ 뎅∼하고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는 마라도 사람들에게 삶의 애환을 달래 줄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그런 푸근함으로 느껴질 듯 하다.

범종각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게 되면 한국 최남단에 자리하고 계신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불자들과 창건주 법우스님의 기원을 담아 1987년 봉안되었으며 그 염원을 이루려는 듯 북쪽을 향하여 자비로운 모습으로 서 계신다.

a 석가모니불을 모셔놓은 대웅전은 100여명이 함께 기도하기에 넉넉한 공간이다.

석가모니불을 모셔놓은 대웅전은 100여명이 함께 기도하기에 넉넉한 공간이다. ⓒ 임윤수

제주도의 푸른 바다도 좋고 이국적인 거리의 가로수들도 좋지만 한국의 최남단 마라도에서 뵙게되는 관세음보살님의 잔잔한 미소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a 한국 최남단에 계신 마라도 기원정사 관세음보살님은 남북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은 채 북쪽을 향하여 서 계신다.

한국 최남단에 계신 마라도 기원정사 관세음보살님은 남북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은 채 북쪽을 향하여 서 계신다. ⓒ 임윤수

석가모니불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원목의 건축물로 관세음보살상 오른쪽에 있다. 통나무집을 연상하면 그 규모가 작게 느껴질지 모르나 100여명이 한꺼번에 기도를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다. 대웅전에서 땀 줄기 흥건하도록 108배 기도라도 하고 관세음보살님 앞에 서면 땀 줄기 씻어 줄 해풍이 감미롭게 온 몸을 감싸 줄 것이며, 어렴풋한 보살님의 미소가 심신을 편안하게 해 줄듯하다.

대웅전에서 몇 걸음만 더 나가면 망망대해 바다뿐인 이곳에도 통일을 염원하며 서 계신 관세음보살님이 은은한 불심을 피워내고 있다.

세계적 불교계 지도자 중의 한 분인 틱낫한 스님은 화를 다스리고 행복을 찾는 방법 중의 하나로 걷는 명상을 말씀하신다. 유람선을 타고 쫓기듯 둘러보는 마라도 기원정사는 조금 초라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루나 이틀쯤 그 곳에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섬 전체를 빙 둘러보며 명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면 속세의 모든 근심을 씻을 수 있을 것 같다.

쫓기지 않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섬 벼랑 위를 걷는 여유에서 넉넉한 행복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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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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