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가 쳐들어 온다아~"

장마철에 풀과 벌이는 전쟁

등록 2003.07.25 11:10수정 2003.07.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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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심은 들깨 밭. 이렇게 때를 놓친 풀은 조금 더 키워 낫으로 베어 깔아 준다. 작물은 풀이랑 같이 있을 때 생기가 있다. 나는 풀 속에서 키운 감자를 생협에 나오는 유기농 감자보다 두 배가량 더 받고 팔 수 있었다.
두 번째 심은 들깨 밭. 이렇게 때를 놓친 풀은 조금 더 키워 낫으로 베어 깔아 준다. 작물은 풀이랑 같이 있을 때 생기가 있다. 나는 풀 속에서 키운 감자를 생협에 나오는 유기농 감자보다 두 배가량 더 받고 팔 수 있었다.전희식
잡초가 쳐들어 온다아~~.
밭에 나갔던 어느 날엔가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잡초가 쳐들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밭이 한 순간의 기습 공격에 점령당한 기분이었다. 장맛비 머금은 어둑어둑한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포위당한 장수의 당황스러움이랄까? 곡식을 지켜야 하는 이 가엾은 장수는 퇴로도 없다. 들깨밭을 매고 콩밭으로 오면 그제 맸던 옥수수밭이 언제 맸냐는 듯이 풀이 무성했다. 생강밭은 풀이 생강 키를 앞지른 지 오래다.

‘아, 졌다. 내가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이길 수 없겠구나.’
이런 마음이 절로 들었다. 돌아서면 한 뼘씩 자라 있는 잡초들을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항복을 하는구나’ 싶었다.

장맛비는 멈출 줄 모르고 방울토마토는 곯아 떨어졌다. 오이도 햇볕을 못 봐서 병이 들었고, 수박은 네 포기를 심었는데 몇 개가 잘 달리더니 어느 날 보니 꼭지가 다 떨어졌다. 감자를 캐낸 빈밭은 들깨모를 옮길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며칠 되지 않았는데 맨땅이던 감자밭에 새파란 독새풀이 아우성처럼 돋아나 있었다.

첫 번째 심은 들깨. 베어 덮은 풀이 썩어 가고 있다. 틈새로 올라 오는 풀은 아주 약하다.
첫 번째 심은 들깨. 베어 덮은 풀이 썩어 가고 있다. 틈새로 올라 오는 풀은 아주 약하다.전희식
환삼덩굴은 사납게 훈련받은 특수부대원 같다.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마구 헤집어 놓는 게릴라 같다. 밭둑에서 일직선으로 뻗어 이랑을 몇 개나 가로질러 콩이건 참깨건 가시 돋친 넝쿨로 칭칭 감아 댄다.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하다가 3천 원짜리 왜낫을 하나 부러뜨렸다. 전쟁이었다. 뽑아 낸 잡초뿌리를 하늘로 향하도록 하여 밭고랑에 깔아놨는데 장대비에 뒤집혔는지 허연 뿌리를 드러낸 채 땅 속으로 뻗어 가 박혀 있었다. 쓰러졌던 풀은 고개를 치켜들고 벌떡 일어나 있었다.

비를 맞으며 잡초를 뽑았다. 질척한 흙덩이가 함께 올라온다. 참깨도 같이 쓰러진다. 참깨만 다시 심는다. 바지춤이 흘러 내려도 끌어 올릴 수가 없다. 비옷 입은 몸은 땀으로 목욕을 한다. 흙물이 튄 안경은 빗물이 씻어 내렸다.

아득한 내 기억 속에는 이제 막 돋는 바늘 같은 어린 잡초가 있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만만한 상대였다. 귀농운동본부에서 구입한 '풀밀어'로 단숨에 쓸어버릴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완승을 거두리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콩밭도 두벌 매주기를 끝냈더니 이제 땅이 보일 듯 말 듯 콩잎으로 다 덮여 있었다. 평소보다 넓게 골을 잡은 들깨밭도 며칠만 더 지나서 관리기로 한번만 두드려 주면 풀을 다 잡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날, 바로 그날 비만 오지 않았더라도 전세가 뒤집히지 않았을 것이다. 밭고랑에 깔 양계장 보온덮개도 여러 개나 구해 놓지 않았던가. 그날, 비를 맞고서라도 풀을 맸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까?


들깨 밭이랑 콩 밭 사이로 심은 옥수수
들깨 밭이랑 콩 밭 사이로 심은 옥수수전희식
고추는 이제야 묶어 주었다.
제법 짱짱하게 고추를 매달았을 때 나는 고추를 지지대에 묶는다. 고추가 제 무게를 버거워하는 이때까지 기다려서 묶는다. 근 두 달여 동안 혼자 버티며 뿌리를 깊이 내린 고추는 대궁 굵기가 다른 집 두 배가 된다. 풀을 두 차례 베어 고추 이랑에 깔아 주었는데 새 풀이 다시 뚫고 올라오지만 기세는 많이 꺾여있다. 고추밭은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은데 옥수수밭이나 콩밭이 문제다.

잠시 비가 그치고 터진 구름 사이로 햇볕이라도 한 줄기 내비치면 작물들이 햇살에 얼굴을 씻는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항상 나보다 먼저 들에 나와있다. 농약통을 등에 지고 마스크도 없이 약을 치는 사람은 한씨 할아버지다. 비 오는 날은 시내 침 맞으러 가는 날이고 외지 아들들 오는 날은 한약 달이는 날이다. 물고를 내는 사람도 있다. 매다 남은 콩밭에 들어가자니 토마토 줄기를 묶어 줘야겠고, 들깨를 옮기자니 참깨밭을 매야 할 지경이다. 호박 밭은 예초기로 한번 밀어 줬는데도 다시 풀이 무성하다.

따라나왔던 새들이가 물었다.
“아빠.”
“응. 또 무슨 당치도 않는 걸 발견했느냐?”
“네. 소자 한 마디 아뢰올 말씀이 있나이다.”
“폼 잡지 말고 말해 봐”
“곡식은 이렇게 가꿔도 자꾸 풀한테 지잖아요. 풀은 뽑아내도 이기구요.”
“그거야 생명력이 강해서 그렇지. 곡식처럼 오냐오냐 키우면 사람도 약해져. 이렇게 애들은 밭에 끌고 나와서 일 시켜야 튼튼해진다.”
“농담 아니고요. 그래서 하는 얘긴데요. 잡초도 한 몇 년 밭에다 심어서 거름도 주고 잘 가꾸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생명력이 약해져서 곡식한테 지지 않을까요?”
“너, 풀 안 매고 놀고 싶어서 그러지? 그건 과학이 아니란다. 꿈 깨라.”

올해는 고추를 조금만 심었다. 100 포기다
올해는 고추를 조금만 심었다. 100 포기다전희식
며칠 지나면 동학혁명 유적지를 기차와 걷기로 순례중인 창원의 초등학생 열 댓 명이 우리 집에 오기로 되어 있는데 얘들 몫으로 그때까지 참깨밭을 이대로 둘까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올해 참깨농사 완전히 망칠 것 같다. 아래 밭에서 봤던 한씨 할아버지한테 부탁해 볼까? 농약은 분무기에 반말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쪼그리고 앉아 참깨보다 몇 배 많은 풀들을 뽑아내려면 며칠 걸리겠지만 제초제 한번만 뿌리면 깨 베서 털 때까지 풀 걱정은 잊어도 될 것이다.

내가 만약에 제초제를 뿌렸다면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지만 제초제에 대한 유혹은 글을 읽는 사람들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7년 동안 고집스레 지켜 온 원칙이지만 눈물을 머금고 100여 평 참깨밭을 결국 갈아 엎어버리면서 제초제를 치면 저 참깨들을 다 살릴 수는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다. 풀과의 전쟁의 타이밍의 문제로 압축할 수 있다.

장마가 시작되면 일단 풀과의 전쟁은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 손을 써야 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풀밭에서 살았다. 잡초를 뽑으면서 내 마음 속 번뇌망상도 뜯어내고 쓰러진 콩 포기를 일으키면서 감사명상, 비파사나명상으로 원기를 만들며 부지런을 떨었건만 이 꼴이 되어 버렸다.

세 번째로 심은 들깨. 노동력을 분산하기 위해 나누어 심었는데 그래도 풀과 씨름하기는 힘겹다.
세 번째로 심은 들깨. 노동력을 분산하기 위해 나누어 심었는데 그래도 풀과 씨름하기는 힘겹다.전희식
직파를 하면 발아해서 새 순이 나기까지 풀한테 이기는 게 없다. 풀을 베어 덮어주면 되지만 작목에 따라 풀을 덮으면 싹이 못나는 게 있어서 그것도 대책이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 발아시켜서 뿌리든지 아니면 아예 모종을 키워 옮겨 심기도 했다. 풀과의 전쟁에서 내가 구사한 전략전술(?)은 그 뿐이 아니다.

'풀밀어'가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잡초 길이가 손가락 마디 하나 되기 전에 촌각을 다투며 만사 제쳐두고 밭으로 달려가기도 했고 낫을 한꺼번에 두 세 개씩 갈아 가지고 풀을 베어 덮어 주기도 했다. 양계장 보온 덮개를 이용해 공기와 물기가 잘 통하면서도 햇볕은 차단하여 풀이 크지 못하게도 했다. 더 이상 어쩌란 말이냐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변산공동체에 계시는 윤구병 선생님의 ‘잡초는 없다’는 책도 봤고 들녘출판사에서 나온 ‘신비한 밭에 서서’도 다 읽었고 공감을 했다. 그러나 할 수 없다. 부분적으로나마 나도 비닐을 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유기농에서 풀은 박멸의 대상이 아님을 잘 알기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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