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밭이랑 콩 밭 사이로 심은 옥수수전희식
고추는 이제야 묶어 주었다.
제법 짱짱하게 고추를 매달았을 때 나는 고추를 지지대에 묶는다. 고추가 제 무게를 버거워하는 이때까지 기다려서 묶는다. 근 두 달여 동안 혼자 버티며 뿌리를 깊이 내린 고추는 대궁 굵기가 다른 집 두 배가 된다. 풀을 두 차례 베어 고추 이랑에 깔아 주었는데 새 풀이 다시 뚫고 올라오지만 기세는 많이 꺾여있다. 고추밭은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은데 옥수수밭이나 콩밭이 문제다.
잠시 비가 그치고 터진 구름 사이로 햇볕이라도 한 줄기 내비치면 작물들이 햇살에 얼굴을 씻는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항상 나보다 먼저 들에 나와있다. 농약통을 등에 지고 마스크도 없이 약을 치는 사람은 한씨 할아버지다. 비 오는 날은 시내 침 맞으러 가는 날이고 외지 아들들 오는 날은 한약 달이는 날이다. 물고를 내는 사람도 있다. 매다 남은 콩밭에 들어가자니 토마토 줄기를 묶어 줘야겠고, 들깨를 옮기자니 참깨밭을 매야 할 지경이다. 호박 밭은 예초기로 한번 밀어 줬는데도 다시 풀이 무성하다.
따라나왔던 새들이가 물었다.
“아빠.”
“응. 또 무슨 당치도 않는 걸 발견했느냐?”
“네. 소자 한 마디 아뢰올 말씀이 있나이다.”
“폼 잡지 말고 말해 봐”
“곡식은 이렇게 가꿔도 자꾸 풀한테 지잖아요. 풀은 뽑아내도 이기구요.”
“그거야 생명력이 강해서 그렇지. 곡식처럼 오냐오냐 키우면 사람도 약해져. 이렇게 애들은 밭에 끌고 나와서 일 시켜야 튼튼해진다.”
“농담 아니고요. 그래서 하는 얘긴데요. 잡초도 한 몇 년 밭에다 심어서 거름도 주고 잘 가꾸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생명력이 약해져서 곡식한테 지지 않을까요?”
“너, 풀 안 매고 놀고 싶어서 그러지? 그건 과학이 아니란다. 꿈 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