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작죠? 그래도 무지하게 맛있어요

[포토에세이] 내 작은 텃밭에서 거둔 옥수수

등록 2003.07.28 11:03수정 2003.07.2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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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옥수수

옥수수 ⓒ 김민수

바람이 많은 제주, 바람에 시달리는 환경 때문인지 옥수수 키가 짤막하다. 지난해 옥수수를 심었다가 태풍 루사에 옥수숫대가 다 꺾여서 단 하나를 수확하는데 그친 경험이 있기에 올해는 기대를 크게 하질 않았다.


장맛비가 지난 후 콩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올라와 검질을 하지 않으면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게 생겼으니 미룰 수가 없어서 새벽예배를 마치고 골갱이를 들고 작은 텃밭에 나갔다.

아침상에 올린 푸성귀들을 거둘 생각에 작은 소쿠리도 하나 챙겨들고 나갔다. 이슬을 촉촉하게 머금은 옥수수가 정갈한 머리칼로 상큼하게 인사를 한다.

a 텃밭에서 막 따온 가지, 오이, 옥수수

텃밭에서 막 따온 가지, 오이, 옥수수 ⓒ 김민수

콩밭을 두어 두렁 맨 후에 옥수수를 살펴보니 아직 작기만 한데 옥수수의 머리칼(?)이 마른 것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손으로 만져보니 작지만 제법 여물었다. 작지만 알차게 여문 옥수수를 하나둘 따다 보니 양이 제법 된다. 옥수수도 따고, 오이와 가지, 고추를 아침상에 올린 요량으로 한 소쿠리 따니 마음도 풍성해진다.

'과연 옥수수 속내는 알차게 여물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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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래도 우리 식구 먹을 만큼은 됩니다.

그래도 우리 식구 먹을 만큼은 됩니다. ⓒ 김민수

옥수수를 까보니 작지만 실하게 여물어 쪄먹기에 딱 좋을 정도였다. 첫 번째 수확치고는 많은 양이라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옥수수를 건넨다.


"아이고, 이게 옥수수야? 뭐 이렇게 잘아?"
"잘아도 먹어보고 평가를 하자구."

아내는 약간 불만이다. 비료를 조금만 주었어도 더 실한 옥수수를 얻었을 것인데 극구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나의 고집 때문이었다.


나의 작은 텃밭에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못생기고, 많은 수확을 못한다고 할지라도 모양으로 먹지 말고, 양으로 승부하지 말자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a 참 작죠? 그래도 무지하게 맛있던데요.

참 작죠? 그래도 무지하게 맛있던데요. ⓒ 김민수

그래도 옥수수를 까놓고 보니 어떤 놈이 가장 잘 생겼고, 못생겼는지 판가름을 내고 싶다. 가장 잘게 생긴 것들 먼저 뽑았다. 아이들 손바닥보다도 작은 옥수수, 그래도 옥수수라도 알갱이가 제법 여물었다. 사먹는 사람은 도저히 먹어볼 수 없는 작은 옥수수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며, 높은 점수를 준다.

'고맙다. 이렇게 너의 본 모습을 찾아주어서….'

아주 작은 옥수수지만 따지고 보면 얼마나 풍성한 수확인가? 옥수수 알맹이 하나를 심어 가장 작은 옥수수에서 30배 이상의 소출을 얻었는데….

a 오늘 거둔 옥수수 중에서 가장 실하게 생긴 것입니다.

오늘 거둔 옥수수 중에서 가장 실하게 생긴 것입니다. ⓒ 김민수

이번엔 가장 실한 것을 하나 뽑았다. 참 잘 생겼다. 조금 더 키우면 좋을 것 같지만 알맹이가 딱딱해져서 맛이 떨어지니 적기에 수확을 한 것 같다. 씨앗으로 두기 위해서나 강냉이를 튀겨먹기 위한 것은 더 두어야 하지만 삶아먹을 것은 이 정도 선에서 촉촉한 맛을 즐기며 먹는 것이 옥수수의 제 맛이다.

a 가지-바람에 시달리면 이렇게 된다고도 합니다.

가지-바람에 시달리면 이렇게 된다고도 합니다. ⓒ 김민수

채소류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오이가 똑바로 자라지 않고 자꾸만 구부러져서 그 원인 파악을 해보았더니 바람 영향이라고 한다. 아마 가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똑바로 실하게 자란 가지들만 구경하던 아이들에게는 마치 동그라미처럼 휘어진 가지는 생소할지도 모른다.

나의 작은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들은 대부분 못 생겼고, 작다. 그래도 시장에서 사오는 채소들에서 맛볼 수 없는 깊은 맛과 정성이 들어있다.

아침상을 물린 후 곧이어 나온 옥수수. 배가 부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옥수수는 게눈 감추듯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아이들과 아내의 옥수수 시식 한 소감 한 마디는 이랬다.

"야, 정말 오랜만에 옥수수다운 옥수수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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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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