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에 담긴 일본인의 장인 정신

북위 40도, 일본 기타도호쿠(북동북 지방) 기행 (2) - 아키타현

등록 2003.07.28 15:58수정 2003.07.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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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타도호쿠지방의 겨울은 마치 크림 속을 헤집고 다니는 듯 온누리가 온통 눈세상이었다.

기타도호쿠지방의 겨울은 마치 크림 속을 헤집고 다니는 듯 온누리가 온통 눈세상이었다. ⓒ 박도

아키타 행 여객기

10: 55, 망망대해에 구름만 보다가 마침내 그 틈새로 일본 섬들이 보였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섬들은 삼림이 우거진 탓인지 거무칙칙했다. 기내를 둘러보니 객석이 반 이상 비어 있었다.


11: 10, 탑승 후에도 여러 가지 챙기느라고 골몰하던 김자경 씨가 그제야 내 자리로 왔다.

그는 일본인보다 일본 지리에 더 밝았고 일본 문화에 조예가 깊어 보였다. " 한번 모시고 싶었는데 이번에야 이루어졌다"고 했다. 옛 담임선생에 대한 그의 마음씀에 가슴이 뭉클했다.

자기 나름대로 견문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얘기했다.

공중탕에 갔을 때 몸을 많이 가리는 사람은 일본인이고,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한국인일 경우가 많다.

일본인들은 남의 눈을 의식해서 공중탕이나 온천에서도 물을 아껴쓰는데, 한국인들은 내 것은 무척 아끼면서 공동의 것에는 소홀히 해서 물을 헤프게 쓰거나 수도꼭지도 잘 잠그지 않는 면이 없지 않다.

일본의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을 하루에도 한두 차례 바꾸거나, 하루하루 바꾼다. 그 이유는 남성 특유의, 여성 특유의 냄새를 중화시킨다거나, 고객에게 남탕의 호기심을, 여탕의 신비감을 씻어주기 위해 그런다.

우리나라는 역 앞은 뜨내기를 상대한 까닭으로 음식점이 부실하거나 흔히 바가지를 씌우는데 견주어, 일본의 역은 모든 생활권의 중심이 되어 역앞 식당이나 가게라도 품질이나 가격면에서 믿고 이용하기가 좋다. 또 한번 산 물건도 영수증만 가지고 가면 두 말하지 않고 환불해 준다.

하지만 일본인은 이런 좋은 면만 가진 게 아니라, 강한 자에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 무자비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마음 속의 감정이 겉으로 잘 나타나는 사람들인데 견주어, 일본인들은 혼네(실제 속내)와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내는 모습)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좀처럼 그들의 진심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개인에 따라 일본인들 중에서도 직선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특히 구두로 일본인의 초대나 인사를 받았을 적에는 응할 때도 진심으로 상대방이 나를 오라고 초청하는 것인지,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것인지에 대해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a 아키타 현의 고속도로

아키타 현의 고속도로 ⓒ 박도

일본에도 지방색이 있어 지방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 등에는 나름대로의 차이를 보이는 곳이 많다.


그 중에서 교토는 예로부터 옷차림의 치장이나 호사에 치중을 했고, 천하의 부엌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인 오사카는 '구이타오레(먹다가 죽는다 라고 해석하면 될까?)'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재도 오사까의 유명한 식당이름에 구이타오레라는 집이 있다), 음식 먹는 것에는 신경을 쓴다고 한다.


그 새 사제간이 역전되어 그로부터 많이 배웠다. 기내 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자 거무칙칙한 게 날씨가 몹시 흐렸다. 온통 뿌연 우연 사이를 여객기가 날고 있었다.

11: 50, 기장이 “지상 관제소의 통보에 따라 기상 악화로 10여 분 공중대기 중"이라고 했다. 기상 악화로 이대로 회항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창밖을 내다보자 일본 산하가 온통 검은 빛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12: 10, 예정보다 10분 늦게 여객기는 사뿐히 아키타 공항에 안착했다. 기내 창으로 내다본 일본의 첫 인상은 온통 눈밖에 보이지 않는 ‘설국(雪國)’이었다.

12: 30, 입국 수속을 마치고 터미널로 나오자 “환영 한국 매스컴 방문단”이란 피켓을 들고 6명의 일본인들이 손을 흔들면서 영접했다.

이들은 아키타(秋田)현 관광과 주사 후지와라 토루(藤原亨), 이와테(岩手)현 관광과 주사 구로타 마사노부(黑田正信), 아오모리(靑森)현 관광과 주사 사카모토 히데히라(阪本秀平) 그리고 UNIA 총무부 과장 가노 유이치(河野裕一) 씨와 운전기사 이즈미야 에이지(泉谷英治) 씨, 안내인 이누우에 아이코(井上愛子)씨였다.

악수를 나눈 후 터미널 주차장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눈의 천국

버스가 출발하자 아이코씨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을 동행 박성희씨가 다시 우리말로 통역했다. 쉰은 족히 넘을 듯한 아이코씨의 시냇물이 흐르는 듯한 애교어린 말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a 겨울을 즐기는 물새들

겨울을 즐기는 물새들 ⓒ 박도

이곳 아키타(秋田) 현은 일본의 3대 산림지대로서 삼(杉: 스기)나무가 매우 울창한 바, 대부분 60-80년이나 된 나무가 많다고 했다.

아키타는 미인의 고장으로 클레오파트라, 양귀비와 함께 세계 3대 미인의 하나인 오노노코마치(小野小町)가 태어난 바, 미인이 많은 이유는 깨끗한 눈이 많이 내려 물이 맑고, 일조 시간이 짧아 피부가 희고 곱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아키타는 쌀 산지로 유명한 바, 쌀이 좋은 이유는 물이 맑고, 땅이 기름지며, 기온의 차가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버스는 시가지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달렸다. 산도 들도 모두 눈 세상이었다. 앞뒤 옆 모두가 온통 눈이었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계속 질금질금 눈이 내렸다.

눈이 그냥 쌓인 정도가 아니라 적설량이 2미터 이상으로 눈더미를 이뤘다. 이렇게 많은 양의 눈은 생후 처음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편해 하지 않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의 눈이면 온 나라가 법석일 텐데 이곳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오히려 눈을 즐기고, 눈을 상품화해서 관광자원화해서 팔고 있는 듯했다.

고속도로 양 옆에도 일이 미터는 쌓였다. 그런데 차가 다니는 차선에는 눈이 없었다. 그곳은 열선을 깔아서 눈이 내리면 즉시 녹게 만들었나 보다.

도로나 마을 곳곳에는 ‘낙설주의’라는 팻말이 자주 눈에 띄었고, 네거리 신호등은 세로였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이라 적설(積雪)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생활의 지혜였다.

a 사토요스케 우동 자료관 표지판

사토요스케 우동 자료관 표지판 ⓒ 박도

사토요스케 우동박물관

13: 40, 그들이 보여준 첫 번째는 이나카와마찌(稻川町)에 있는 사토요스케(佐藤養助) 우동박물관이었다.

이 가게의 이나니와 우동은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지방의 특산물로 손국수(손으로 반죽하고 밀어 늘려 만듦)의 전통 기술이 옛 맛을 그대로 전한다고 했다. 매끈매끈하고 쫄깃쫄깃한 면발이 일품이라 천황에게 진상한 우동으로 유명하단다.

우동 자료관(박물관)으로 들어갔다. 1665년 창업으로 현재 7대째 가업을 이어온다고 자료관 한편에다 자기네 족보와 제1대부터 제7대까지 사진과 이름을 자랑스럽게 게시해 놓았다.

그뿐 아니라, 각종 표창장, 명품 인정서, 장부, 옛 엽전, 어음, 계산서, 명사들의 사인(이중에는 한국 황태자 전하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글도 있었음), 시대별로 우동 만드는 기구의 변천사, 포장된 우동상품, 우동 그릇 젓가락 등등 우동에 관한 모든 게 일이층 자료실을 가득 메웠다.

a 사토요스케 자료관(우동박물관)

사토요스케 자료관(우동박물관) ⓒ 박도

이곳 지배인이 내실로 안내하고는 막 끓인 우동을 내왔다. 이 우동은 일본에서 가장 비싼 우동으로 한 그릇에 2천 엔(우리 돈으로 약 2만 원 정도)이라고 한다. 아무리 물가가 비싼 일본이라지만 우동 한 그릇이 2만 원이라니….

소문 그대로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맛이 담박했다. 우동 하나로 자기네 고장을 명소로 만들어서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일본인의 장인 정신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든 원동력으로 보였다.

구리료헤이라는 일본 작가가 쓴 <우동 한 그릇>이 일본 열도를 울리고 한국 독자까지 울렸다. 해마다 연말이면 두 아들과 우동가게를 찾는 가난한 세 모자의 사랑을 그린, 일본인의 감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우동 한 그릇에도 온 정성을 다 쏟는 그네들의 장인 정신을 그저 탄복만 하고 박수만 칠 것인가?

나는 시원하고 산뜻한 우동 국물을 마시면서 그네들보다 역사가 더 오래된 우리나라 <안동국시> <평양냉면> <춘천막국수>도 맛을 더욱 개발하고 현대화시키면 이나니와 우동 못지 않은 명품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일본을 따라잡고 이기는 길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생활 속인 부엌에, 안방 반짇고리에, 대장간에, 도자기 가마에 있다.

하찮아 보이는 곳에 최선을 다하는 일본인의 장인 정신이 자기네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내 나름대로 진단하면서 다음 행선지로 가고자 버스에 올랐다.

a 자료관에 게시된 역대 주인들의 사진과 표창장들

자료관에 게시된 역대 주인들의 사진과 표창장들 ⓒ 박도



a 우동 그릇들

우동 그릇들 ⓒ 박도



a 현재 팔고 있는 우동 면제품

현재 팔고 있는 우동 면제품 ⓒ 박도



a 우동 만드는 기구들

우동 만드는 기구들 ⓒ 박도



a 자료관 앞에 쌓인 눈 (필자의 목까지 쌓였다)

자료관 앞에 쌓인 눈 (필자의 목까지 쌓였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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