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10

인과응보(因果應報) (7)

등록 2003.08.20 12:51수정 2003.08.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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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옥접은 장일정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이상하다 느꼈다. 처음엔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서먹함을 느꼈기 때문인가 싶었다. 자신도 약간은 어색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 듯 싶었다. 왠지 자신을 피한다는 느낌이 들자 여인 특유의 육감이 발동되었다. 그 결과 그의 주변에 유심선자 남궁혜라는 묘령의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땐 심한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하였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절망감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장일정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하절색이라 하더라도 소가 닭 보듯 하는 사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 기다리던 장일정이 당도하자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노래하는 종달새처럼 그의 곁에서 재잘대며 마냥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인이란 사랑을 하면 여우가 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아무튼 분위기만 좀 잡히면 대흥안령산맥에 남아있는 남의에게 가서 둘 사이를 허락 받고 혼례를 올리자고 할 참이었다.


이에 흔쾌히 동조하면 유심선자는 그저 친한 동료일 뿐이지만, 아니라면 둘 사이가 심상치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하여 은근히 말을 건넸는데 이에는 대답도 않고 성내에 용무가 남아있다면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겉으로는 조금 섭섭한 것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실상 호옥접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들어가야만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정인을 잃는다 하더라도 자존심마저 잃고 싶지는 않다는 여인 특유의 오기가 발동된 탓이다.

"미안해! 오늘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 그래."

"그, 그래요? 뭐, 가야 한다면 할 수 없지요."

호옥접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목덜미에 돋은 솜털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본 장일정의 심사는 복잡했다.

유심선자 남궁혜 때문이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잊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부모형제나 자식이 죽어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영원히 잊지 못한다면 그 슬픔 때문에 어찌 살 수 있겠는가!

호옥접과는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절해고도인 신선도에 있었으니 소식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워낙 바쁜 일이 많았기에 잊고 있었다.

지금이야 조금 지낼만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속명신수와 그 일당들에 의하여 그야말로 들들 볶이느라 하루해가 어떻게 저무는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신 없이 바빴다.

그동안 유심선자 남궁혜와는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냈다. 업무적으로 늘 함께 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장일정이 진맥을 하는 동안엔 병부(病簿)를 작성했고, 시침(施鍼)이나 뜸을 뜨는 동안엔 탕약을 다렸던 것이다.

남녀가 오랜 동안 같이 있으면 없던 정(情)도 생기는 법이다.

처음엔 남궁혜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믿고 따르던 늙은 의원이 죽었고, 내원에서 외원으로 내침을 당해 그야말로 천애고아나 마찬가지 신세가 된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편리를 봐주고자 가까이 한 것뿐이었다.

유학(儒學)에게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 가르친다. 남녀가 유별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녀는 본시 하나가 되려는 성질이 강하기에 그냥 내버려두면 세상이 온통 문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코자 그런 말을 지어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남녀칠세지남철(男女七歲指南鐵)이기 때문에 떼어놓으려 그런 가르침을 내린다는 것이다.

아무튼 장일정은 관심이 없으나 남궁혜는 그에게 관심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틈만 나면 그의 여인이 되어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꿈꾸느라 멍한 표정을 짓곤 하였다.

아무리 목석같은 사내라 할지라도 눈치챌 것은 눈치채는 법이다. 어느 날 장일정은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혜의 시선에서 뜨거운 사랑을 느꼈다. 이것이 부담스러워 애써 피하려 하였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 가깝게 다가왔다.

업무 특성상 바늘과 실처럼 늘 함께 하여야 하므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던 장일정은 굳이 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이상해진다 느낀 것이다. 그리고 대놓고 거절하면 자칫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싶어 배려한 것이다.

이것을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오해한 남궁혜는 그야말로 지극 정성이었다.

삼시 세끼 수발은 물론 빨래며 잠자리까지 정갈하게 보살폈던 것이다. 사람인 이상 이런 정성에 넘어가지 않으면 그야말로 냉혈한일 것이다. 하여 장일정 역시 남궁혜에게 각별한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말은 안 하지만 호옥접이 어떤 생각인지를 능히 짐작하는 장일정은 한동안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이 미안하였고, 남궁혜와 가깝게 지낸 것 또한 미안하였다.

그래서 심사가 복잡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호옥접만 남겨놓고 가려는 진정한 이유는 진정 그녀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장일정은 유대문과 왜문을 지상에서 말살시키기 위한 독공을 연마하던 중 그만 중독되는 사고를 겪게 되었다.

그대로 놔두면 한 줌 혈수(血水)로 녹아들 상황이었는데 다행히도 남궁혜의 눈에 뜨이게 되었다. 늦은 밤 장일정이 출출할까 싶어 음식을 장만해 왔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남궁혜에게는 내공이 있었다. 아마도 무림세가인 남궁가의 여식인지라 내공심법 정도는 아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녀 덕분에 체내로 유입된 모든 독들을 한쪽에 몰아넣기는 하였으나 아직 완전한 해독이 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자칫 잘못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을 중독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같이 있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장일정은 호옥접이 걱정할까 싶어 이런 사실을 숨긴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그녀는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이 버림받은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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