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12

악인은 지옥으로 (2)

등록 2003.08.22 12:03수정 2003.08.22 15:32
0
원고료로 응원
무림천자성의 이목은 만천하에 깔려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수배자가 되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잡히게 되어 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었다. 그것은 증거인멸이었다.


이회옥과 말년만 죽이면 자신이 하극상을 범했는지, 무적검을 잃어버렸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러한 상념이 스치는 순간 말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게 되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이 그의 수급을 베어 버린 것이다.

이후 배루난은 품에서 화골산(化骨酸)을 꺼내 말년의 시신에 뿌렸다. 그러자 매캐한 냄새와 더불어 시신이 녹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그곳엔 한 줌 혈수(血水)만 남아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된 배루난은 손에 익은 무적검이 쥐어지고 불의의 급습을 가할 기회가 포착되면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 생각하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였다.


그가 택한 곳은 울창한 죽림을 막 벗어나려는 지점이었다.

그곳에는 한 그루 적송(赤松)이 있는데 잎사귀가 제법 울창한 위에 은신해 있다 지나칠 때 공격하기에 더없이 적합하였다.


잠시 후 예상대로 이회옥이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밑으로 내려서면서 무적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이에 이회옥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뒤로 후퇴하였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철판교(鐵板橋)라는 신법을 응용한 것으로 하체에 막강한 근력(筋力)이 없으면 도저히 운신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철판교는 상체를 뒤로 눕힘과 동시에 발뒤꿈치로 땅을 차 후퇴하거나 방향을 바꿀 때 사용하는 신법으로 웬만한 무인들은 시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근력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회옥이 누구이던가! 청룡갑으로 근력 하나는 확실히 다져놓았기에 창졸지간이었지만 철판교를 응용한 신법을 구사할 수 있었기에 목숨을 구한 것이다.

어쨌거나 울창한 죽림 속을 파고드는 이회옥의 어깨에서 선혈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본 배루난은 쏜살의 속도로 따라붙었다. 이제 승기를 잡았단 판단한 것이다.

"이런 개자식이…? 챠잇! 죽어랏!"
쐐에에에에엑!

파지지지직―!
"이런 제기랄! 빠드드드득!"

이번에도 간발의 차이로 대나무 몇 그루가 속절없이 베어지면서 잎사귀들이 분분하게 날렸다. 상대가 번번이 쥐새끼처럼 빠져나가자 배루난은 약이 올랐는지 이를 갈며 따라붙었다.

한편 이회옥은 뭔가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게 생겼다는 절박감을 느꼈다.

이럴 때 제왕비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번 시전하면 적어도 보름 동안은 사용할 수 없지만 그것만 있으면 배루난을 저승의 고혼(孤魂)으로 만드는 것쯤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제왕비는 침상 밑에 보관되어 있다. 혹시라도 분실하면 어쩔까 싶어 두고 다니는 습관을 들인 탓이다.

철기린이 후일 자신의 심복으로 삼기 위하여 하사한 제왕비는 모조품이 아닌 진품이었다. 철기린은 자신이 잘 보관하고 있는 것이 진품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제왕비의 모조품을 만들라는 부탁을 받은 묘수신장은 자신이 죽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과거 진시황의 무덤을 만들었던 장인(匠人)들이 모조리 학살당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무덤의 위치와 구조를 감추기 위한 조치였다.

묘수신장은 철기린으로부터 진품 제왕비를 받아드는 순간 그것이 결코 예사 물건이 아님을 직감하였다.

그리고는 모조품을 만들고 나면 그것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도 짐작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흔쾌히 만들겠다고 한 것은 어린 손녀 때문이었다. 몹쓸 병에 걸렸지만 막대한 치료비가 없어 죽어 가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던 참이었다.

철기린은 손녀를 치료해 주면 모조품을 만들어 주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만 살릴 수 있다면 제 목숨 따위는 버릴 수 있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흔들었던 것이다.

과연 무천의방이었다. 인근 의원들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서던 손녀의 고질이 불과 한 달만에 완치된 것이다.

사실 묘수신장의 손녀가 걸린 병은 예사 의원들에겐 다스리기 까다로운 질병이지만 무천의방 소속 의원들에겐 그리 어려운 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건강하게 된 손녀를 본 묘수신장은 모조품 제작에 착수하였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지만 한낱 신외지물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거두려는 것이 못마땅했던 그는 제왕비의 모조품을 만들면서 진짜와 가짜를 바꿔치기 하였다.

워낙 정교하게 만들었기에 묘수신장 자신 또한 진품을 가려낼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 철기린으로서는 속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물 네 자루 중에 섞여 있었던 그것이 공교롭게도 이회옥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것이 진품인 것을 알게 된 것은 다물연공관에서 시험삼아 만빙결을 시전해 본 직후였다.

삽시간에 다물 연공관 전체가 마치 빙굴이 된 것처럼 얼어붙는가 싶더니 작은 쐐기 모양의 결정체들이 산지사방으로 섬전처럼 뻗어갔던 것이다.

만일 진품이 아니라면 그런 결과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진품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