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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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3.09.22 12:48수정 2003.09.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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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천자성이라 하여 살인 사건 같은 강력사건이 안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내들끼리 있다보면 어쩌다 시비가 붙어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술을 마신 상황에서 젊은 혈기를 어쩌지 못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런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수뇌부라 할 수 있는 당주가 같은 당주급에 의하여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겠으나 둘 다 오십이 넘은 나이이다.

따라서 욱하는 성질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살해의 동기가 모호하였다.

방옥두와 뇌흔의 사이에는 해 깊은 원한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있다면 수십 년 동안 친형제처럼 지냈을리 없기 때문이다.

삼각관계에 의한 연정 때문도 아닐 것이다.

방옥두는 연화부인과 수련부인을 얻은 후로는 제아무리 요염한 기녀들이 지나가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정도로 목석같은 사내로 변모하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업무 때문이라고도 볼 수 없다. 철마당과 철검당은 하는 일이 완전히 다르며 서로 연관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주가 당주를 죽였으니 골치가 아픈 것이다.

어쨌거나 살해 동기를 알 수는 없지만 모든 정황증거는 방옥두가 살인범이라 확증할 만하였다.


시신의 곁에 놓인 그의 신패가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리고 뇌흔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인물은 방옥두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부인인 연화부인이 말하길 가끔 잠이 오지 않으면 뇌흔과 술잔을 기울이기 위하여 철마당으로 가곤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흐흐흑! 속하, 정말 억울합니다. 속하는 정말 뇌 당주를 안 죽였습니다. 제발, 제발, 속하 좀 믿어 주십시오."
"으으음!"

조경지는 눈물 흘리는 방옥두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한 동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여 어떻게 하나를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조경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던 방옥두와 시선이 마주쳤다.

"흐흑! 제발 속하를 믿어 주십시오."
"이놈! 증거가 있거늘… 으음! 안 되겠군. 구 당주!"
"속하, 여기에 있습니다. 하명하십시오!"

지금껏 뒤에 있던 빙화 구연혜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아무리 성주의 여식이라고는 하지만 어린 시절 학문을 가르쳤던 스승인 조경지 앞에서는 공손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방옥두는 무림천자성의 철검당주가 아니다. 따라서 본성 당주급에 대한 모든 예우를 거둬들인다. 내일부터는 형당에서 취조하여 사건의 전말을 밝히도록!"

"존명! 명대로 하겠습니다. 무엇 하느냐? 죄수를 매달아라!"
"존명!"

빙화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옥졸들이 달려들어 익숙한 솜씨로 방옥두를 매달았다. 이회옥이 그랬던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매달은 것이다.

하옥됨과 동시에 내공을 쓸 수 없도록 산공독을 복용시켰기에 반항할 수 없던 방옥두는 꼼짝못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놈을 국문장에 준비시키도록!"
"존명!"

빙화의 명에 옥졸들의 허리가 다시 한번 직각으로 꺾였다.

"흠! 네 솜씨를 믿어 보마."
"염려 마십시오. 왜 죽였는지를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오냐!"

조경지가 사라지자 빙화는 지풍을 날려 방옥두의 혈도 몇 군데를 제압하였다. 내공을 쓸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빙화는 방옥두가 하옥되어 있는 뇌옥 바로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회옥을 힐끔 바라보고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구부시의 명으로 잠시 다른 일을 생각하느라 그의 존재를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빙화는 내심 투덜거리면서 돌아섰다.

형당 당주가 된지 사흘째 되는 날 부친인 구부시로부터 호출이 있었다. 잘하라는 격려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갔지만 그곳에서 빙화는 놀라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림천자성의 수뇌부만이 알 수 있는 비밀들이 종종 외부로 유출되고 있으므로 누가 간세인지를 색출해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외출을 하면서 만일 어떤 정황이 포착되면 즉각 제일호법인 조경지와 상의하라고 하였다.

현재 무림은 북선무곡 때문에 시끄러운 상황이다.

북선무곡 다시 말해 주석교의 수뇌부가 이미 천뢰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철룡화존은 강온양책(强溫兩策)을 구사하고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 대화하겠다고 나서는 한편 즉각 천뢰탄을 해체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 그것이다.

사실 대화에 나서겠다고 하는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공격하는 것으로 이미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다.

월빙보 침공이 성공리에 마쳐지자 철룡화존은 연회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장차 악의 축이라 명명했던 모든 문파들을 세상에서 쓸어내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들뿐만 아니라 무림의 모든 문파, 다시 말해 소림이나 무당과 같은 정파까지 모조리 쓸어내 전 무림을 복속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여력이 안 되기에 마음에 묻어두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철룡화존은 다음 상대로 주석교를 꼽고 있던 터였다.

따라서 겉으로는 대화하는 척하지만 기습 공격을 가할 만반의 준비를 착착 갖추도록 명을 내린 바 있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일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면 북선무곡은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부가문과 월빙보가 어떻게 당했는지를 너무도 알고 있으므로 최악의 경우 선제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주석교와 무림천자성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 워낙 전력차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석교의 입장에서는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을 품고 먼저 공격할 수도 있다.

만일 주석교가 천뢰탄으로 선무곡이나 왜문을 공격하면 엄청난 인명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그 때 선무분타나 왜문분타에 주둔해 있는 정의수호대원들도 상당수가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림천자성은 또 한번 명성에 먹칠을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공격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비밀이어야 한다.

사실 수뇌부에 간세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없다는 증거도 없다. 그렇기에 내부에 침투해 있을지도 모르는 간세를 색출해내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말로는 진짜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없으면 그만이라는 심산이었다.

아무튼 이번 외출은 대화를 위해 일월마교와 화존궁의 수뇌들과 회동하기로 미리 약속한 것이므로 반드시 가야 한다.

또한 중대 사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야 하므로 인의수사 채니와 오각수 도날두, 그리고 무비전주 고파월과 반드시 동행하여야 한다. 그들을 제외하고는 나면 조경지가 가장 믿을만하기에 그와 상의하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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