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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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3.09.24 12:18수정 2003.09.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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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명을 받은 빙화는 은밀한 내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던 차에 방옥두가 뇌흔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부친의 말대로 수뇌부에 간세가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이회옥을 문초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방옥두는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을 토하며 들어왔다.

형당 소속 고문기술자들에 의하여 그야말로 죽지 않을 만큼 지독한 고문을 당한 결과였다.

머리는 봉두난발이 되어 있었고, 걸치고 있는 의복은 걸레가 되어 있었다. 가시 박힌 채찍질에 당한 모양이었다.

손톱 아래에 침을 박았었는지 손가락 끝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이회옥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어려 있었다.


'흥! 아직 멀었어 네놈은 조금 더 고생한 다음에 죽여주지.'

신음을 토하던 방옥두가 무언가를 달라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보나마나 물을 달라는 것일 것이다.


현재 방옥두에게 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이회옥뿐이었다. 그가 갇혀 있는 뇌옥의 좌측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물 좀 달라는 소리를 하였지만 이회옥은 팔베개를 한 채 잠 든 척하였다. 철천지원수에게 물을 줄만큼 너그럽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방옥두는 하루종일 모진 고문을 당하고 돌아왔다. 그를 데리고 온 옥졸은 빨리 불어야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는 충고를 하였다.

그러면서 말하길 어수룩하게 불었다가는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당할 것이라 하였다. 지금까지의 관례로 미루어 모든 정황이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떨어져야 고문이 멈춘다는 것이다.

이에 방옥두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는데 무엇을 불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발악을 했다.

날짜가 지난 동안 방옥두는 점점 엉망이 되어갔고, 그를 바라보는 이회옥의 입가엔 더 진한 미소가 어렸다.

하옥된지 정확히 열흘 째 되던 날, 여느 날처럼 모진 고문을 받고 반쯤 혼절한 상태로 끌려들어온 방옥두는 뇌옥 복판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 그의 무릎 아래는 완전히 피투성이였다. 보아하니 압슬에 처해진 듯하였다.

"이놈! 다른 날 같으면 마늘 즙에 고춧가루를 듬뿍 섞은 범벅 맛 좀 보여줬을 것이나 오늘은 특별히 봐주마. 쨔식! 그렇게 불 것을 왜 안 죽였다고 고집을 피웠는지… 퉤에!"

널브러져 있는 방옥두의 얼굴에 누런 가래침을 뱉은 옥졸은 총총히 사라졌다.

오늘 무림천자성 형당에서는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또 한 번 증명되었다. 지난 칠 일 동안 숱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살인하지 않았다고 우기던 방옥두가 범행 일체를 자백한 것이다.

주리를 틀고, 곤장을 내리쳐도 안 불었으나 날카로운 사금파리 조각을 깔아놓은 바닥에 무릎을 꿇려놓고 돌덩이를 올려놓자 모든 것을 자백할 테니 제발 치워달라고 애원했던 것이다.

사실 압슬형에 처해졌을 때 느껴지는 고통은 안 겪어본 사람은 아마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무릎 관절을 덮고 있는 슬개골(膝蓋骨)은 물론 정강이뼈에까지 사금파리가 박히면서 뼈가 갈라질 듯하기에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제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내라 할지라도 압슬에 처해지면 굴복하기 마련인 것이다.

어찌되었건 방옥두가 자백한 사건의 전모는 이러하였다.

평생 형제처럼 지내던 뇌흔은 언제부터인가 형수라 할 수 있는 연화부인과 수련부인의 미색을 탐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눈치 챈 방옥두는 몇 차례 점잖은 경고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급한 용무 때문에 외출한 사이 뇌흔이 연화부인과 수련부인을 차례로 겁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 온 방옥두는 울고 있는 두 여인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듣고는 분기탱천하였으나 즉각 발작하지 않고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병장기를 사용하면 누가 어떤 방법으로 죽였는지를 금방 알게되기 때문에 뇌흔을 때려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애병인 무적검 대신 몽둥이를 준비했고, 기회를 노리던 중 적절하다 판단되는 순간 뇌흔을 불러내 때려죽였으며, 증거물인 몽둥이는 불 태웠다고 한다.

완전범죄를 꿈꾼 것이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살해 현장에 신패를 떨어트렸고 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국문을 하였던 빙화는 왠지 석연치 않다 생각되었지만 모든 정황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기에 사건을 종결시켰다.

방옥두는 동료를 살해하였으나 그동안의 공과를 참작하여 당주 직에서 직위해제하고, 향후 이십 년간 하옥되는 형벌을 받았다.

살인을 저질렀으나 뇌흔이 먼저 도발한 것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 있었기에 팔열지옥갱으로 보내지는 것만은 면한 것이다.

"으으으! 으아아으으윽!"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간신히 추스른 방옥두는 구석에 깔려 있는 건초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거리로 따지면 불과 일 장도 채 되지 않을 짧은 거리였지만 무릎 아래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인지 신음도 아니고 비명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냈다.

"으으으! 으으으으! ……?"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신음을 삼키던 방옥두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가 전율하고 말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누, 누구…?"

"크흐흐! 내가 누구냐고? 네놈 덕분에 집도 절도 몽땅 잃어버린 사람이지."

"으읏! 너, 너는…? 네가 어떻게 여길…?"

장승처럼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옆 뇌옥에 하옥되어 있던 이회옥이라는 것을 알아본 방옥두는 깜짝 놀랐다.

뇌옥과 뇌옥은 창살로 막혀 있다. 그리고 뇌옥의 출입구에는 묵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데 안에서는 손이 닿지 않는다.

따라서 이회옥이 자신이 하옥되어 있는 뇌옥으로 들어오려면 자신이 갇혀 있던 뇌옥의 출입구를 열고 나간 다음 다시 자신이 있는 뇌옥의 출입구를 열고 들어와야 한다.

물론 손에 닿지도 않는 부위에 있는 자물쇠를 열어야 한다.

출입구는 녹이 잔뜩 슬어있어 열릴 때마다 귀에 거스르는 금속성이 난다. 그런데 그런 소리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이회옥이 자신의 뇌옥에 서있으니 깜짝 놀란 것이다.

"흐흐흐! 빙화의 고문이 고통스러웠나 보지?"
"……?"

"팔 다리가 잘린 것도 아닌데 왜 신음소리를 내고 그러냐?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일 때는 그들이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겠지?"
"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이회옥의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방옥두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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