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기 펄럭이는 가을 하늘 공활한 날, 성라초등학교에서김규환
구름도 백아산 너머로 학처럼 날던 아침
일어나 보니 송단목장부터 안개가 걷혀 마당바위(756m 빨치산 활동의 주무대)를 둥둥 치고 백아산(810m) 상봉으로 가벼이 올라간다. 마치 나는 학(鶴) 같다. 날씨가 좋아 밤새 고즈넉이 ‘북면동국민학교’ 어린이들을 지켜주던 흰 구름도 날고 싶은가 보다. 시야도 탁 트여 기분이 상쾌하다. 그야말로 공활(空豁)한 가을 날씨였다.
나는 청군이다. 비닐 응원 머리띠를 방향을 돌려 푸른색이 밖으로 나오도록 둘러매고 집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엄마 후딱 가잔께요.”
“점심은 싸야 될 거 아니냐. 쇠죽 양껏 퍼주고 가거라.”
“예. 글면 먼저 가 있으끄라우?”
“니 성이랑 같이 가고 있그라.”
“오빠 같이가….
“연순이는 엄니가 데꼬 올라구라우?”
“오냐.”
취학 전 동생은 혼자 기다리려면 힘들다. 그날은 어린이 날보다 우리에겐 더 즐거운 날이니 아이들 세상이다.
“아참, 엄마.”
“왜? 서둘러 가지 않고?”
“거시기…. 점심 때 사야 될 것도 있는디요. 100원만 주싯쇼.”
엄마 치마 춤에 넣어 꼬깃꼬깃, 너덜너덜해진 100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받아 들고 돌길을 전속력을 내서 달려갔다. 평소 기다려주던 아이들도 잠시 돌아보지 않고 학교로 간다. 멀리 건넌 마을 강례 쪽에서도 아이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신작로를 돌아 네 가구 밖에 안 사는 학교 마을 안 길을 돌자 행진곡이 들려온다. 백아산 쪽에서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소리다.
벌써 아이들은 점방 앞에서 ‘쫀드기’를 사서 씹으며 달콤한 물을 쭉쭉 빨고 있다.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아이도 있다. 교문 앞엔 뻥튀기 아저씨가 '펑펑' 소리를 내며 달콤한 유혹을 하고 있었다.
쌀 한 숟가락에 밀가루처럼 잘게 빻은 사카린 조금을 넣고 “피식-.” 방귀소리를 내며 널찍한 스펀지 과자를 “펑펑” 쏟아낸다. 10원 드리면 10개 씩 준다. 입에 들어가자 씹기도 전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허망한 뻥튀기. 하지만 살살 녹는 그 맛에 10원어치를 더 먹었다.
부잣집 아이들은 환타나 사이다를 병 째 침을 발라가며 마시고 있다.
고학년들은 학교로 가서 운동회를 준비한다. 6학년 범병선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니 5, 6학년은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울긋불긋 가장 좋은 한복을 차려 입은 아주머니들이 양 손에 점심 꾸러미를 들고 몰려온다. 아저씨들은 점방에서 아침부터 막걸리 한 잔씩을 돌려가며 취기에 부끄러움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