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환
각자 청색 플라스틱 장바구니 한 개와 배낭을 메고 누렇게 익은 황금들녘 논두렁길을 달려 1시간 거리에 있는 그 골짜기로 향한다. 메뚜기가 후다닥 날며 얼굴에 부딪힌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산길로 접어들어 오르면 백아산 중 가장 험한 골짜기다.
백아산(해발810m) 대판이 골짝은 산새가 험악하고 깊어 빨치산이 우글거렸던 곳이라 어른들도 접근하기를 꺼렸다. 숯 굽는 할아버지 내외가 뜨지 못하고 산신령 노릇을 대신하고 있을 뿐 사람들이 얼씬하지 않는다.
겁 없는 애들도 이 골짜기에는 1년에 딱 한 번이다. 대밭을 지나 응달지고 습기가 많은 울창한 숲 물가에 들어서면 갑자기 차가워져 싸늘하고 오싹하다. 이슬이 모였는지 나무뿌리가 머금고 있다가 뱉어낸 물인지 돌에 부딪혀 톡톡 소리 내며 흘러내린다. 목을 축일 겸 모두 엎드려 생명수를 한 모금씩 빨아 먹는다.
숨을 고르고 곧장 땀이 식기 전에 으름넝쿨을 찾아 나선다. 나무마다 칭칭 감고 올라선 으름넝쿨이 한두 개 보인다. 때죽나무, 자귀나무, 층층나무, 떡갈나무, 고욤나무, 신갈나무 등 활엽수 숲을 마치 담쟁이 비슷하며 나무를 뱀이 꼭 감싸 포위하듯 기어오르는 으름넝쿨 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