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렸어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 42]보현산 천문대 천문대장 전영범씨

등록 2003.10.08 19:57수정 2003.10.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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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한 관측결과가 영 신통치 않습니다. 낮엔 괜찮나 싶었는데 어둠이 찾아온 뒤 구름이 하늘을 잔뜩 가려 놓은 탓입니다. 요 며칠 계속 이랬습니다. 낮엔 멀쩡하던 하늘에 밤만 되면 구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천문학자에게 구름은 정말이지 반갑지 않은 불청객입니다.

“올해만큼 관측이 안 된 적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물속에서 살았지요. 관측을 하는데 있어 최적의 날씨는 대기변화가 없고 구름 없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상센터에서 비가 온다고 하든 말든 전혀 상관없어요. 오로지 구름이 있느냐 없느냐만 봅니다.”


그렇다고 관측을 포기하자니 곧 구름이 지나갈 것 같은 애매한 날씨입니다. 결국 애꿎은 천문대장 전영범(43)씨의 밤만 길어집니다.

"가능성만 있다면 관측자는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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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경상북도 영천시에 위치한 보현산에 오르는 길. 날이 이미 저물어 어둠이 짙게 깔린 산자락 여기저기엔 태풍 ‘매미’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마을 하나를 지나자 익숙하지 않은 푯말 하나가 눈에 띕니다.

‘관측 중. 일몰 후 외부 차량 금지’

캄캄한 산길을 오르는 외부인에게 보현산이 그 흔한 가로등 하나도 내주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천문대가 그 까닭입니다. 지난 94년 문을 연 보현산 천문대에는 그 시작을 함께 한 터줏대감 전영범 천문대장이 있습니다. 그는 일주일째 변광성을 찾는 측광관측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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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1.8m 반사 망원경 ‘도약’입니다. 이것을 발판 삼아 우리나라 천문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합니다. 높이 7.8m, 가로 3.9m, 무게 22t 으로 수형망원경 중에서는 대형에 속하며 대형 중에서 가장 작은 망원경에 속합니다. 오퍼레이터 김민수(28)씨는 처음 망원경을 봤을 때의 설렘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일반인들이 천문대를 방문해 '도약'을 보곤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김씨가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두 가지를 꼽습니다.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얼마냐는 질문, 그리고 두 번째는 얼마나 멀리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죠. 그런데 사실 그것은 잘못된 질문이에요. 망원경은 멀리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것을 밝게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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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천문대는 보현산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포항도 보이고, 바다의 오징어잡이 불빛도 반짝입니다. 전 대장은 자꾸만 밝아지는 보현산 주위가 걱정스럽습니다. 10년 전과 비교해 몇 배는 더 밝아졌습니다. 지상에서 반짝이는 불빛은 관측을 하는 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줍니다. 그만큼 밝은 별들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문학자로서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자료가 공유됩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클릭만 하면 모든 자료를 볼 수 있어요.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냐에 따른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속적으로 연구할 연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천문학자는 100여명 정도가 있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연구원 수는 300여명입니다. 이곳만 해도 연구원은 3명입니다. IMF 이후 대학원생의 숫자가 팍 줄어서 천문대에서 오퍼레이터로 비전공자를 쓴 적도 있습니다. 새로운 인적자원이 많아져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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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천문학이라는 것이 경제적인 부가가치가 높지도 않고 국가경제에 무슨 기여를 하냐고 사람들이 말해요. 이번에도 과학위성 하나 쏘아 올렸잖아요, 저도 굉장히 긴장을 했는데. 돈도 많이 드는데 그걸 왜 쏘아 올리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위성 쏘아 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과학기술의 모티브를 천문학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자연 과학 중에서 천문학은 세계 과학과 가장 근접한 학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초과학의 붕괴를 말합니다. 자연계 기피 현상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자연과학 기피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예요. 거기서 버티고 있는 것이 천문학이고요. 기초과학은 과학에 일종의 자극제를 주는 겁니다. 과학을 하고자 하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그 자체만으로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없어도 그것들이 과학본질을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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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까지 얻은 사진은 고작 4장. 그나마도 데이터로서 가치가 있을진 의문입니다. 결국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각자 연구실로 가 할 일을 하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잠시 쉬는 틈을 타 밤참을 먹고 난 새벽 1시 쯤. 오퍼레이터 김민수씨가 전 대장을 급히 부릅니다.

“하늘이 열렸어요!”

구름이 드디어 비켜 주었나 싶어 서둘러 나왔습니다.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라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데 한걸음도 못가 다시 구름이 보입니다. 그가 이왕 나온 김에 굴절 망원경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변광성이라도 찾아보자는 심산입니다. 변광성은 우주의 크기를 알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솔직히 이런 날씨에 가망성이 그리 높진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돔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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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일몰 시간이 다가옵니다. 해지는 것을 보며 관측을 시작하고 해뜨는 것을 보고 관측을 끝내는 천문학자에게 새벽은 참 기분 좋은 단어입니다.

“열심히 관측을 하다가 해가 뜨는 것을 보면 그 상쾌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더구나 좋은 사진을 하나 찍었다면 쉬러 들어갈 때 더욱 기분이 좋지요. 그리고 새벽은 모든 것을 정리해 주는 시간입니다. 새벽이 있어야 제가 관측을 끝낼 수 있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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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결국 오늘 관측결과가 영 신통치 않습니다. 그가 아쉬울 것 같습니다.

“항상 아쉽죠. 관측이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아쉬운 거니까요.”

전 대장의 두 아들 중 큰 아이가 관측에 유달리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아이만 원한다면 아빠의 뒤를 이어 천문학자가 되는 것도 좋다는 그가 "예전에 한 집에 천문학자가 둘이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립니다.

공부가 힘들어 도중에 포기한 이들도 많았고, 정말 돈벌이가 되지 않아 그만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예측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무작정 하다보면 발견하는 건데 그게 무슨 과학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천문학은 우주에 널려 있는 것이 실험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걸 찾아야 하는 것이고요. 찾기 위해 망원경을 개발하는 거예요. 천문학의 본질은 발견이지요. 발견하는 것이 즐거움이죠. 천체 현상을 발견하면 어떤 것이든지 즐겁습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주의 석호'

▲ 전영범 대장이 직접 찍은 M8 사진입니다
ⓒ전영범

전영범 대장은 현재 직접 천체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작년 우연히 만들게 된 성운사진이 마음에 들어 메시에 목록에 포함된 천체사진을 모두 찍겠다고 합니다. 메시에 목록이란 샤를 메시에가 1784년 혜성과 혼돈하기 쉬운 100여개의 성운, 성단을 목록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현재까지 110개의 번호가 붙은 메시에 목록 가운데 전 대장이 완성한 사진은 모두 100여장.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사진이 모두 완성이 되면 천문대 1층에 있는 전시실 벽면을 장식하고 싶답니다. 위 사진은 전 대장이 직접 찍은 라군 네블라(Lagoon Nebla)라는 이름으로 궁수자리에 있는 석호모양의 방출성운입니다.
/ 노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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