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철책의 아침은 밝아옵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41] 육군 무적부대 바위중대의 임진강이야기

등록 2003.10.01 13:34수정 2003.10.0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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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한동안 잊혀진 날이 있었습니다. 유년 시절 '국군 아저씨께'라고 수신자를 쓰고는 선생님의 날카로운 눈초리 아래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못이기는 척 친구들이 쓴 문장을 몰래 옮겨 적으면서도 한편으론 행여 '국군 아저씨'의 답장이 올까 하루 종일 우체통을 서성거리기도 했습니다. 왜 쓰는지도 모른 채 써야만 했던 위문 편지였건만 어쩌다 국군 아저씨에게 답장을 받아 일약 스타로 급부상했던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기도 숨가쁜 세상. 그냥 자연스레 사라지는 옛 추억이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무게마저도 숨죽이며 비껴 지나는 곳이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을지언정 언제나 한결 같은 긴장감으로 임진강 휴전선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밖에선 국군의 날을 맞아 퍼레이드 행사, 경축 행사 등 축제의 분위기로 들떠 있는 반면 정작 그 주인공들인 육군 무적부대 바위 중대원들은 평상심을 유지하며 냉정함을 잃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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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서산에 걸린 농염한 가을 해가 넘어 갈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는 시간. 이른 저녁 식사와 꿈같은 휴식을 뒤로 낮과 밤이 바뀐 전방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소년티를 못 벗은 듯 짓궂게 장난을 치고 담배 연기에 느긋한 여유를 부리던 병사들이 군장 검사 시간이 다가오자 잔뜩 긴장한 듯 진지한 모습으로 돌변합니다.

시계 바늘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그들에게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반듯하게 날이 선 군복과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은 군화가 흐트러짐 없는 정신무장을 대변합니다.


365일 동안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일몰을 보며 경계 근무를 시작하는 바위 중대의 군장 검사 시간엔 소리 없이 엄습하는 밤의 정적만이 감돕니다.

상황 변화에 따른 작전 대처 능력을 묻는 소초장의 돌발적인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대답하는 한 사병의 목소리가 적막을 가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은 후방에 있는 어느 누군가의 평온한 밤을 위해 무기를 점검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강안 경계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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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바위 중대 소초장으로 부임한지 이제 막 100일이 된 소초장 성진현(24) 소위는 초등학교 교사가 꿈입니다.

"'돈이 없으면 학교 오지 말아라' 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을 듣고 마음 속에 악마가 생긴 것 같다" 는 탈옥수 신창원의 사연을 전해 듣고 가슴이 아팠다는 성 소초장은 "학생 개개인의 꿈이 상처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 지켜주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 합니다.

성 소위는 "부대에 적응할만하면 여지없이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변수가 생기는 등 그간 본의 아니게 부하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연신 미안하다(소초장 부임 초기에 강에 떠 있는 쓰레기를 보고 착각했다고 한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소초장은 소초원들을 보고 일하고 소초원들은 소초장을 보고 일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소초를 책임진 소초장이니 순찰도 돌면서 몸을 움직이지만 꼼짝 않고 근무를 서야 하는 병사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죠. 가끔 제 오해로 인해 전방 지역의 특성상 비상이 자주 걸렸어요. 잠자다가 부랴부랴 정신없이 뛰어나온 병사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피곤해서 얼굴은 초췌한데 정작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이해해주는 병사들을 보면 얼마나 미안한지 몰라요. 그런 병사들 앞에서 제가 피곤해 하는 건 사치에 불과하죠."

집을 떠나야 집을 안다고 했던가. 성 소위는 "힘들 때 부모님이 보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 아닌가?"라며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사들이 입대 시 손잡고 우시던 부모님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전합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지키는 건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라며 군대를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곳' 이라 귀띔합니다.

밤의 음습함과 마주해야하는 성 소위에게 각기 다른 영혼을 지닌 별들과 달은 큰 위안이 되어 줍니다. 어쩌다 가끔 밤 보초를 서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는 성 소위는 군대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적잖은 소득을 거뒀노라 전합니다.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이모저모 생각해 보게 돼요. 나쁜 점들이 있으면 고치려고 노력도 하게 되구요. 군대에 있으면 필연적으로 여러 번 한계에 부딪치게 돼요. 하지만 그 때마다 포기하면 제 동료들이 두세 배 힘들게 되죠. 한계가 와도 단지 저 하나만 생각해 쉽게 포기 할 수가 없어요. 때문에 자연스레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게 돼요.

그 외 포용력, 책임감, 각종 업무 능력 등이 있지만 그중 가장 고마운 건 사람입니다. 내 앞과 뒤에 함께 하는 동료 병사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저 든든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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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요즘 성 소위의 근심 중 하나는 임진강의 겨울나기입니다.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초소를 감도는 강바람의 날카로움이 보통이 아닙니다. 빠르면 10월부터 내복을 꺼내 입어야 하는 무적 부대의 겨울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내고 싶을 만큼 춥다 못해 잔인합니다. 벌써부터 새벽이 되면 입술이 퍼래진다고 병사들을 걱정하는 성 소위의 앳된 모습 한켠엔 큰형의 너그러움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선 환락과 자유의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는군요. 이에 성 소위는 "억울하지 않으면 거짓말이죠"라며 나름의 군대론(?)을 펼칩니다.

"가끔 친구들에게 전화했는데 술 먹는다고 빨리 끊으라고 할 때면 정말 억울하죠.(웃음) 하지만 우리도 그랬으니까… 우리가 그랬을 때 또 누군가는 저와 같은 억울함을 느꼈겠죠."

이어 성 소위는 군대를 '열쇠'로 비유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소개합니다.

"만약에 집에 열쇠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군대는 일종의 열쇠와도 같아요. 더불어 다양한 사람을 사회적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군대도 이젠 안좋은 관습은 다 버려야죠. 이젠 점차적으로 군대도 변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군대 문화가 지금보다 더 개선되기 위해선 개인성의 존중 부분에 있어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 같아요."

"밝은 곳에만 있던 사람이 과연 어두운 곳도 볼 수 있을까요?" 조금은 엉뚱한 발언이었지만 그 물음의 속내엔 가슴 따뜻한 성 소위의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두운 곳에도 있어봐야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철학이자 이상이라고 밝히는 성 소위의 눈빛이 병사들의 고된 뒷모습을 쫓고 있습니다.

그가 아끼고 그를 따르는 많은 병사들과 함께 성 소위는 내일도 서부 전선을 굳건히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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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두 겹의 철책 사이로 많은 것들이 나눠집니다. 병사들과 같이 뜬눈으로 지새는 밤하늘도 오늘만은 국군의 날을 맞아 엄살을 부리고 싶은지 심술이 잔뜩 껴 별과 달의 그림자마저도 감춰 버립니다.

짙은 어둠에 세상의 형체가 희미해지고 고요함에 침삼키는 소리가 진동을 할 시간. 병사들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워 집니다. 정처 없이 유영하는 불빛에 떠오르는 자신의 그림자를 벗삼아 그렇게 또 어느 이름 모를 무수한 병사들의 새벽이 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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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올해 3월 바위중대 중대장으로 부임한 최훈(29) 대위의 바지 주머니 속엔 사탕이 한가득입니다. 병사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몰라 고민하던 최 대위는 소위 시절 무서웠던 호랑이 선배의 마음이 담긴 사탕 선물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후 최 대위는 지난 7개월 동안 순찰을 돌며 가장 입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사탕을 병사들에게 나눠주며 덤으로 그의 따스함까지 같이 전합니다. 비록 작은 사탕이지만 병사들은 사탕 이상의 것을 주고자 하는 최 대위의 마음을 알기에 "마음을 느꼈다"는 낯간지러운 러브레터를 최 대위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최 대위는 "육사 시절 배웠던 군대와, 직접 지휘관이 되어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군대는 조금은 다르다"며 부임 초기 방황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지휘관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최 대위는 "병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지휘관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자신도 사람인지라 본의 아니게 사심이 들어가 부하들에게 상처를 줘 후회를 한다는 최 대위는 직책상 혹은 업무상 자신의 한쪽면만을 병사들에게 보여주어야 함에 연신 안타까워 합니다.

일정하지 않는 근무 시간과 명절, 휴일 없는 전방 군 생활의 고단함도 새벽을 깨우는 아침 해의 반가운 인사 한 번이면 금세 잊혀집니다. 그 누구보다도 무사히 평화롭게 떠오르는 해를 가장 반기는 최 대위는 새벽이 기지개를 피는 순간 마치 자신이 새벽을 여는 것 같은 황홀경에 빠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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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피할 수 없으면 즐기세요! 억지로 징집된다는 수동적인 생각 대신 건강한 대한 민국 남성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책임진다는 자부심과 긍정적 사고 방식을 가졌으면 해요.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건강한 남성들은 국방의 의무를 지녔잖아요. 그리고 군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뭐든 반드시 얻어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드님을 군대에 보내주신 대한민국의 부모님들께 전합니다. 이젠 군대도 많이 바뀌었으니 옛날 과거 군대만 생각하지 마시고 믿고 보내주십시오. 자신과 다른 개성을 지닌 수많은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군에 오는 젊은이들은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지막까지 명예로운 군인으로 남고 싶다는 최 대위는 작은 약속과 신뢰부터 소중히 지킬 줄 아는 군인이 되겠노라 연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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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10월 1일, 여느 해와 다름없는 국군의 날을 맞이하는 아침이 밝아옵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 혹은 가족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과 국가를 위해 건강한 젊은이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삶과 안락한 가정을 뒤로 오늘도 "이상무!"를 힘차게 외치기 위해 달릴 것입니다.

육군 무적 부대 바위 중대 명물

일병 구준회(21, 동생), 일병 구권회(21, 형) 쌍둥이 신고합니다!

부모님의 4년 걱정을 2년으로 단축 시키겠다는 생각에 동반 입대한 쌍둥이 형제가 있습니다. 백일 휴가도 나란히 다녀온 그들은 좋아하는 영화, 음식, 가수 등 모든 취향이 일치해 좀처럼 다툴일이 없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나중에 행여 좋아하는 한 여인 때문에 서로 다투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주 일요일에 보고도 뭐가 그리 반가운지 삼일 만에 만난 형제는 이산가족을 만난 듯 그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형 권회군은 주말에, 동생 준회군운 수요일에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며 부모님의 걱정도 반으로 줄입니다.

"처음엔 서로 힘든 모습을 지켜 봐야하는 게 가슴 아플 것 같아 떨어져 있고 싶었다" 는 권회군은
"지금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옆에 있는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며 무척 만족스러워 합니다. 이에 형의 얼굴만 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인 준회군의 생각은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요. 중대만 일치 할 뿐 다행히도(?) 부대가 틀려 주말 예배 시간 동안만 만날 수 있는 그들은 "서로를 믿는다" 며 의미 심장한 눈빛과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권회군은 "막연히 군대란 그저 몸으로 시간 떼우다 가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낮과 밤이 바뀐 전방이다 보니 정말 생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며 " 고된만큼 전방에서 근무하는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에 준회군 또한 "보통같으면 무의미하고 짧게 보냈을 새벽 시간에 근무를 하며 평소엔 몰랐던 많은 걸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며 "비록 계급은 일병일지언정 고된 전방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고 말을 이었습니다.

권회군은 "군에 있으니 그냥 흘려보낸 시간과 주변에 가까웠던 사람이 너무 그립다" 며 "자칫하면 젊음에 취해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는 시기에 군대가 제대로 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전환점이 되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준회군 또한 "반드시 군에 있는 동안 무언가를 배워 갈 것" 이라며 "군에서 만난 많은 이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얻어 갈 것" 임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이어 그간 집안에서 삼형제의 막내아들로서 딸노릇을 했다는 준회군은 "아마 어머님이 저의 빈자리를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라고 짖꿎은 장난기를 보이다가도 끝내는 가슴이 뭉클하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한편 권회군은 "'나와 너의 어머니는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라고 편지를 써주신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을 군대와서야 느꼈다" 며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에 결국 울고 말았노라 고백했습니다.

이어 한참을 망설이던 권회군은 어렵게 마지막 말을 당부합니다.

"한번도 못했던 말이 있는데...너무 상투적이서요. 근데 꼭 하고 싶습니다! 부모님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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