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드는데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더라고"

[새벽을 여는 사람들 40]서울대공원 인공포육장 사육사 한효동씨

등록 2003.09.25 12:23수정 2003.09.2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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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어디든 떠나고 싶은 가을입니다. 살랑거리는 바람 안고 그저 구름이 흐르는대로 따라가고픈 매혹의 계절이 도착했습니다. 유난히도 맑은 밤. 별자리의 안내를 받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이르렀습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컴컴한 동물원엔 이름 모를 동물의 잠꼬대 소리와 새벽 이슬에 늑장을 부리는 나무와 꽃들의 속삭임만이 감돌고 있더군요. 동물원의 산길을 쭈욱 따라 오르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대공원 자연학습연구실 인공포육장과 만나게 됩니다.

인공포육장의 문을 열자 헐레벌떡 뛰어와 사람에게 안기는 5살배기 강아지 뽀삐와 동물원의 아버지인 사육사 한효동(48)씨가 필자를 맞이합니다.

지난 밤 수달이 아파 3시 30분에야 간신히 잠이 든 한 사육사는 오늘도 2시간의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한 채 커피 한 잔으로 밀려드는 잠을 쫓으며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김진석
요놈이 바로 밤새 사육사 한효동씨를 괴롭힌 문제의(?)수달입니다. 밤새 아픈 것도 모자라 새벽이 찾아와도 분유를 잘 먹으려 들지 않자 한 사육사가 식염수를 먹입니다.

"먹어야 살지, 임마."
"애는 분유보다 식염수가 더 맛있나봐.(웃음)"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이 수달은 요즘 소화기관이 안 좋아 설사를 하며 계속 탈수 증상을 보인다고 하네요.

"이젠 걷기라도 하니 많이 나아진 모양이야. 어린 동물들은 아기와 똑같아.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니 항상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 잠? 대중없지. 아기 낳으면 한동안 부모들도 밤잠 설치잖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70-80%의 습도 유지, 분유 먹이는 각도는 45도, 영양분이 활성화 될 수 있는 60도의 적정 온도 유지 등 어린 동물을 보살피는 건 사람의 아기를 보살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동물마다 먹이는 분유 양과 시간, 농도 등이 제각각이기에 꼼꼼히 기억하고 챙겨야 합니다.

야간 근무를 했다고 다음날 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후 4-5시에 퇴근하고 내일이 오면 다른 이와 똑같이 오전 8시부터 6시 근무를 해야 합니다. 한 사육사는 휴일과 명절 등 각종 기념일을 챙긴 지가 언제인지도 모릅니다.

정부에선 사육사를 늘리지 않으니 일손이 모자라고 그와 오랜 시간 정이든 어린 동물들은 한순간이라도 그와 떨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수달 눈에 달라붙은 눈곱을 떼어주며 수건으로 정성스레 몸을 닦아주는 그의 투박한 손에서 온기가 전해집니다.

김진석
"저 소리 들려? 먹이가 맛있다고 지금 노래 부르는 거야."
"어떻게 사육사가 되셨어요?"
"먹고 살려고 했지.(웃음) 동물 사랑은, 무슨 얼어죽을 사랑 타령이야…."

잘 웃지도 않고 말에 꾸밈이 없는 솔직한 한 사육사의 무뚝뚝함이 고스란히 배어납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동물들 앞에만 가면 세상에 둘도 없는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돌변합니다.

"하다 보니깐 자꾸 정이 드는데 나도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더라고. 오래 전 인공 사육장이 없었을 때 어린 새끼가 태어나고 죽었던 일화가 있었어. 조금만 사람이 보살펴 주면 살 수도 있었는데…."

어느 새 18년의 경력을 쌓게 된 한 사육사는 84년에 개원한 동물원과 함께 서울대공원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많은 돈을 벌어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너무 고되고 비효율적인 직업이 아닐까요? 동물의 분뇨와 땀이 배인 작업복을 입고 24시간 대기하며 남이 안 보는 곳에서 휴일도 없이 일합니다.

뒤늦게야 한 사육사는 짧고 굵게 "좋으니깐 하지"라며 의미 심장한 말을 툭하고 던집니다. 백 마디 말이 과연 무슨 소용 있나요? 말은 아껴도 동물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과 손길 곳곳엔 진한 애정이 넘칩니다.

한편, '동물원은 동물의 인권 침해 장소다'하고 주장하는 동물 애호가들의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심스레 여쭤봤습니다.

"사람들은 한 쪽 면만 바라보는 것 같아. 동물원이 보호 시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줄 모르겠어. 사람의 작은 보살핌만 있어도 얼마든지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동물이 있다는 건 보려들지 않아.

시멘트도 그래. 물론 시멘트가 동물에 좋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청결이나 오염문제에 대해선 일반 토양보다 나아. 자연흙은 동물의 변과 같이 썩어 버리기 때문에 또 다른 오염과 병에 대한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어. 그렇지 않기 위해선 토양을 자주 갈아 줘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야. 동물들 분유만 해도 다 비싸게 수입해서 쓰는데 정부는 동물원에 대해 아무 것도 지원해 주는 게 없어."

김진석
그간 한 사육사가 서울대공원과 동고동락하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좋아진 자연 환경과 시설 뿐이라 합니다. 한 사육사는 여전히 동물들을 구경거리로만 바라보는 시민들의 문화의식 및 질서의식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며 아쉬워합니다.

"결국 정부의 잘못이야. 사람들에게 동물에 대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들을 시키려 들지않아. 지금까지도 우리 나라가 독자적으로 개발 및 출판한 동물 도서가 없을 정도니까. 사람들은 물론 정부에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어. 대학에서도 연구 지원비가 가장 적은 과가 수의학과야.

우리나라 그래프는 뾰족 그래프야. 사회·문화·경제·정치 등 모든 것이 원만히 둥글게 그려져야 하는데 경제만 뾰족하게 급속도로 솟았어. 그러니깐 무너지는 것도 한 순간인 거야.

간혹 우리 고유의 동물인 호랑이를 보고 사자라고 가르치는 어른도 있어. 아무리 함부로 음식을 던지지 말라고 푯말을 붙이고 말을 해도 신경도 안 써. 토끼 같은 경우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이빨이 퇴화돼 버려. 잘못해 자칫하면 퇴화된 이빨이 뇌를 자극해 치명적인 병을 앓을 수도 있어. 사람들은 정말 너무 몰라. 이는 결국 동물원 더 나아가 삶의 문화를 간과한 정부의 책임이 커."

성체가 되기 전까진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개미핥기는 우리 나라에 단 3마리가 있습니다. 태어난 지 18일이 된 이 개미핥기는 한 사육사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생활을 하며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진 찍는 소리에 놀랐는지 숨을 곳을 찾는 개미핥기가 한 사육사의 품을 파고 듭니다.

요놈도 성질이 보통이 아닙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지 계속 고개를 흔들며 분유를 거절합니다. 이에 한 사육사는 예의 그 무뚝뚝함을 다 던져 버리고 자상함을 발휘, 기어코 분유를 먹이고야 맙니다.

"이렇게 잘 먹을 거면서, 왜 그리 난리를 친 거야."

피곤한 시간에 투정을 부린 개미핥기가 얄미울 법도 한데 한 사육사는 오히려 쓰다듬으며 애정표현을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모든 어린 생명은 사랑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읊조리는 한 사육사의 얼굴엔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는 부모의 흐뭇함이 고단함을 대신합니다.

김진석
분유통을 소독하고 깨끗이 닦는 일도 한 사육사의 몫입니다. 어린 새끼 동물이기에 무엇보다도 청결을 강조하는 한 사육사는 옷소매가 젖어들 정도로 정성 들여 분유통을 닦습니다.

"더러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사육사를 동물 똥만 치우는 사람 혹은 천한 직업으로 생각하는것 같아. 솔직히 말해 동물을 오래 돌보고 있으면 우리는 거의 수의사가 다 돼. 약 처방은 기본이고, 동물의 변만 봐도 애가 아픈지 건강한지를 체크할 수 있어. 단, 자격증만 없을 뿐이지 웬만한 경력 지닌 수의사 못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육사야.

다양한 동물을 돌보며 자연스레 쌓이는 현장의 경험과 지혜를 쉬이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가 다른 이들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우리도 존중받았으면 해.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더 인정받기 위해선 더 열심히 해야 되겠지. 열심히 해야 당당히 말할 수도 있는 거니깐."

그가 강조하는 동물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종의 보존' 입니다. 동물들의 근친상간을 막고 종의 보전 및 개발을 위해선 외국 및 지방 동물원과 자매 결연을 맺는 것을 포함해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에 그는 단순히 동물을 볼거리로만 생각하는 정부의 인식 전환을 부탁하며 체계적인 지원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김진석
"사람은 참 욕심 많고 이기적인 동물이야. 동물을 키우기 위해 성대 수술을 하거나 거세하는 걸 보면 참 안타까워. 만약 사람의 아기라고 생각해봐. 그게 어디 말이나 되겠어? 동물병원도 그런 건 안 해 줬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우리보다도 더 영리한 동물이 있어. 게다가 직감력도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 감성도 풍부하고 감정 표현도 할 줄알아. 결국,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거야."

정년 퇴직 후 호랑이 농장과 후배 양성에 남은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한 사육사는 그저 '열심히 사는 것' 이 그의 철학이자 신념입니다. 오랜 벗들과 약주라도 한 잔 걸치고 싶은 밤의 유혹과 가정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항상 동물 곁을 떠나지 않는 한 사육사는 앞으로도 서울대공원의 동물원을 24시간 밝히며 지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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