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줌 거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10.22 07:54수정 2003.10.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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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정하. 험난함이 삶의 거름이 되어)



a 고운 흙이다. 배추 심기 전에 거름을 뿌리고 골을 만들었다.

고운 흙이다. 배추 심기 전에 거름을 뿌리고 골을 만들었다. ⓒ 느릿느릿 박철

부지런한 농부가 가을걷이를 마치고 내년에 쓸 거름을 준비한다. 요즘은 화학비료에 의존하다보니 거름을 잘 안 만든다. 그리고 기계로 농사를 짓다보니 소도 키우지 않는다. 그러니 땅은 혹사당하기만 한다. 땅이 산성화되어 쉬 늙어간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러다간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죽은 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소위 대량생산이라는 인간의 욕심과 허울이 땅을 죽음의 땅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화학비료가 만들어졌고 농약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땅을 닦달하다보니, 예전의 흙이 아니다. 흙 색깔이 다르다. 김매기 싫다고 제초제를 뿌려대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각종 농약을 살포하다보니 흙도 자연의 빛깔과 성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라. 땅에 자연 퇴비나 두엄은 하나도 주지 않고 화학비료만 준다. 많이 거두기 위해서이다. 또 거기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수없이 뿌려댔다. 그러니 땅 속에 들어 있는 모든 미생물이 깡그리 죽고 만다. 지렁이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만다.

자연의 순리와 순환의 체계가 인간의 욕심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거기에 새로운 변이(變異)와 변종(變種)이 생겨난다. 죽음의 땅에서 거둔 것을 인간이 먹으니 온전하겠는가? 요즘 항간에 유행하는 유전자조작으로 인해 만들어진 식물들은 어떠한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짓을 인간이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 죽음의 문화가 천지사방에 널려있다. 모름지기 농사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요 살리는 길이다. 그래서 천하의 으뜸이 되는 본(本)이다. 생명의 법칙이다.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는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


사람들이 목적지에 빠르게 가려고만 하다보니 온갖 편법이 난무하다. 소위 과학기술이라는 미명 하에 지름길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라면 모를까 농사는 예외이다. 농사만큼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 인간의 욕심이 배제되어야한다. 정직해야 한다.

a 사과가 익어 간다. 유기질 거름을 듬뿍주어야 사과도 맛있고 향기롭다.

사과가 익어 간다. 유기질 거름을 듬뿍주어야 사과도 맛있고 향기롭다. ⓒ 느릿느릿 박철

얼마간의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농사자체를 규정지을 만큼 비중을 차지할 수 없다. 퇴비나 두엄 등,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거름을 준 흙은 화학비료만 준 흙과 빛깔이 다르다. 흙의 입자도 다르다. 거름을 준 흙은 붉고 부드럽다. 그러나 화학 비료만 준 흙은 검고 거칠다.


요즘은 시골이라도 밭에서 나물 캐기가 쉽지 않다. 냉이, 달래, 씀바귀 등 나물이 없다. 나물이 나올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젖소목장이 많이 있는 인근지역에는 들나물이 많다. 그만큼 식물이 생명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구조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갑자기 무서워진다. 옛날에는 거름을 집에서 다 만들었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 가축을 키웠다. 가축을 키우면 집안전체에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정도였다. 시골을 지나가면 시골냄새가 났다. 집집마다 소나 돼지, 개, 닭을 가까이 했다. 거기에서 나온 부산물이 좋은 거름재료가 된다.

인분도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화장실 개량으로 좋은 거름재료를 다 흘려보낸다. 옛날에는 개똥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똥이 더럽다고 느낄 것이다. 과일을 먹는다고 할 때에도 똥을 준 과일과 똥을 안 준 과일과는 맛이 다르다. 거름을 준 과일은 풍성하게 자랄뿐더러 먹으면 맛이 있다.

그러나 거름을 주지 않은 과일은 열매도 풍성하지 못하고 맛도 없다. 그 과일은 향기가 없다. 과일이 향기롭기 위해서는 거름을 잘 주어야 한다. 맛있는 과일, 그것은 얼마 전까지 만해도 ‘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과일을 맛있게 먹고 맛있게 느끼는 것은 똥을 맛있어 하는 것과 같다.

지금 땅이 죽어가고 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먹이 사슬이 차단되어 가고 생명의 순환 체계가 산산조각이 날 지경이 되었다.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이 병으로 찌들어 신음하고 있다. 땅을 살려야 한다. 죽어가는 땅을, 병들어 신음하는 땅을 구출해야 한다. 이제 농가에서도 옛날방식대로 거름을 만들어 써야 한다. 농산물 수입개방과 맞물려 거대한 다국적기업의 횡포를 물리칠 수 있는 길도 결국은 양보다는 질을 우선으로 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다른 대안이 없다.

a 아내가 텃밭에서 콩대를 뽑고 콩을 따고 있다

아내가 텃밭에서 콩대를 뽑고 콩을 따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그렇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다운 사람, 이름하여 참 사람이 필요한 시대이다. 화학비료 같은 사람은 너무 많다. 농약 같은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시대의 변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거름 같은 사람이다. 거름에서는 거름 냄새가 난다. 땅도 사람도 병들어가고 있다. 땅도 살려야 하지만 사람도 살려야 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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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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