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1

백악루에 나타난 광견자 (3)

등록 2003.10.22 13:46수정 2003.10.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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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개 같은 놈을 보았는가? 선무곡 사람들이 왜 저 놈더러 미친 개 같은 새끼라고 하는지 이해할 만하군. 에이…!'

한참 이야기를 듣던 이회옥은 터져 나오려는 욕지기를 참으려 거푸 석 잔의 술을 마셨다.


광견자가 왜 악인록에 기록되었으며, 반드시 척살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었는지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선무곡의 명운(命運)을 가늠할 수도 있는 중요한 정보였다. 그런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주청에서 떠벌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것을 보고하는 자신이 얼마나 충성스러운지를 알아달라는 태도였다.

어느 가족이든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고민이나 비밀이 한 가지씩은 있는 법이다. 선무곡은 한족(韓族)들로 이루어진 문파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로 보면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외부에 절대 밝혀져서는 안 될 비밀이 있다.

지금은 갈라서서 대립하고 있지만 한 핏줄인 주석교와의 통합을 위하여 비밀리에 진행되는 회담의 내용이나, 새로운 병장기를 개발하는 일 따위가 그렇다. 그런데 그런 내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무림천자성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선무곡 사람들이 얼마가 죽던 상관없으니 과감하게 주석교를 공격하라는 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만일 선무곡주가 거치적거리면 그냥 놔두지 말고 제거하라는 소리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일 필요하다면 선무곡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줄 수도 있다 하였다. 다시 말해 선무곡주가 어디로 이동할지 미리 알 수 있으니 기다렸다가 죽이라는 소리였다.


광견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회옥은 과거에 품었던 의문 가운데 하나를 해소할 수 있었다.

전대 선무곡주 냉혈철심은 위축된 선무곡의 힘을 키워 장차 무림의 당당한 문파로 거듭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하였다.

그 중 하나가 비밀리에 무궁공자 이위소를 초빙한 것이다. 가공할 위력을 지닌 천뢰탄 개발하기 위함이었다.

무궁공자가 작업을 하던 곳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선무곡의 수뇌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다시 말해 업무에 관련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궁공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회옥은 대체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광견자를 보고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확연히 깨달은 것이다.

당시의 일을 알고 있던 수뇌부 가운데 무림천자성을 하늘처럼 여기던 반역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 반역자의 보고를 받고 백악루에서 치밀한 음모를 꾸몄을 것이다.

그 결과 무궁공자가 희생되었고 종래에는 냉혈철심마저 수하의 손에 비명횡사하게 되었을 것이다.

'흠! 왜 배때기를 쑤신다는 표현을 했는지 알만하군. 저런 놈은 누구의 말마따나 창자를 뽑아 죽여야 해!'

이회옥은 금면십호가 왜 과격하면서도 저속한 표현을 썼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선무곡은 한때 왜문의 지배를 받았다. 그때 얼마나 지독하게 당했는지 지금도 왜문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그들보다도 더 증오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에게 빌붙어 동족을 핍박했던 친왜파들이다.

그들은 왜문의 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저항하던 선무곡 제자들을 밀고함으로써 부와 권력을 잡았고, 그들 투사(鬪士)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문보다도 친왜파들을 더 증오하는 것이다.

이적행위(利敵行爲)로 권력과 재물을 얻은 그들을 혹자는 눈에 뜨이는 족족 죽여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제세활빈단에서도 그들에 대한 응징 방안을 수립한 바 있다.

동족을 배반하여 얻은 권력과 재물은 전부 몰수하고, 그 행위의 정도에 따라 생존해 있는 자는 참수형을, 이미 죽은 자는 부관참시(剖棺斬屍)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후손들은 영구히 곡의 대소사에 관여할 수 없도록 곡규를 새로 짜야 마땅할 것이라고 하였다.

호부(虎父)에 견자(犬子) 없다는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변절자의 가문에서 변절자가 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따라서 변절자들의 후손들은 영원히 권력으로부터 격리해 놓아야 후환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선무곡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늘날에도 친왜파와 그의 후손들은 권력의 중심부에 앉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도 온갖 발악을 하고 있다.

사실 선무곡의 오늘날이 요 모양 요 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왜문이 물러간 직후 그들을 색출하여 모조리 참수형에 처했다면 이렇지 않을 것이다.

타고난 기회주의자들인 친왜파들은 왜문이 물러간 직후 새로 수립된 선무곡의 권력에 빌붙었다. 당시의 권력가들은 그들을 척살하기는커녕 요직에 두루 앉히는 우(愚)를 범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기득권의 중심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당시는 선무곡도 대부분이 무지몽매할 때였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곡도들의 의식이 깨어가자 친왜파들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동족을 배신한 그들에게 철저한 응징을 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이 새로 택한 새로운 배경이 무림천자성이었다.

선무곡이 남북으로 갈리는 어수선함 덕분에 이러한 계략은 성공하였다. 그래서 친왜파들이 오늘날에도 선무곡에서 행세를 하며 지내는 것이다.

어쨌거나 선무곡주에 출마하였다가 패한 청죽수사 이법은 친왜파의 자식이다. 모든 친왜파가 그러하듯 그 역시 무림천자성에 빌붙었다. 무림천자성의 성문을 지키는 수문위사라 할지라도 한 마디만 하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릴 정도였다.

덕분인지 무림천자성에서 막강한 지원을 하였고, 선무곡 내의 암(癌)적인 존재인 수구 세력들도 열렬히 지지했지만 곡주에 출마했던 그는 젊은 곡도들에 의해 낙선하고 말았다.

흔히들 도고일척(道高一尺)할 때 마고일장(魔高一杖)한다고 한다. 나쁜 것일수록 성장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엔 정의가 승리한다는 뜻이다.

청죽수사의 낙선은 사필귀정이라 할만한 일이었다.

그의 승리를 위해 온갖 방해 공작과 흑색 선전을 하는 가운데 수구 세력을 이끌던 방조선과 금동아, 그리고 이중앙 역시 친왜파였다가 무림천자성의 개가 된 인물들이다.

악인록 후반부에는 악인들을 벌할 때 절대 송양지인(宋襄之仁)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송양지인은 십팔사략(十八史略) 권일(卷一)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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