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5

백악루에 나타난 광견자 (7)

등록 2003.10.31 15:05수정 2003.10.3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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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도법을 연마하느라 피곤에 지친 청타족 용사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객잔 후원의 한 정실에서는 일남이녀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라와 유라, 그리고 자하두였다.

"하하! 이제 되었지?"
"호호호! 고마워요. 덕분에 놈을 처치할 수 있었어요."
"고맙긴, 너희 덕분에 나도 원수를 갚게 될텐데."


셋의 관계는 분명 부녀지간이었다. 그런데 대화 내용이 이상하였다. 부녀지간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시각, 진짜 청타족 족장 자하두는 호법과 장로들을 대동하고 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사라와 유라를 찾으려고 오는 중이었던 것이다.

오늘 자하두 노릇을 한 사람은 두 여인에 의하여 구함을 받았던 사면호협 여광(呂廣)이었다. 청타족 용사들을 쉽게 제압하기 위하여 일부러 자하두의 얼굴로 역용하였던 것이다.

황산에 있는 팔열지옥갱을 떠나온 이후 합비를 찾은 일행은 오래 전 사라와 유라로 하여금 철기린에 의하여 욕을 당할 뻔하게 하였던 마면호 안형을 찾았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있고, 삼세지습이지우팔십(三歲之習而至于八十)라는 말이 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다.

마면호가 바로 그랬다. 절세미녀 둘이 나타났다는 수하의 보고를 받고 긴급 출동한 그는 사라와 유라를 보고는 침을 질질 흘렸다.


철기린이 빙기선녀 사지약에게 빠진 이후 웬만한 계집들은 그의 눈에 차지도 않아 고심하던 터였다. 그렇지만 사라와 유라라면 사정이 달라도 한참 다를 것이다.

빙기선녀와 달리 금발에 벽안인 데다가 몸매 또한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라와 유라를 제압한 마면호는 희희낙락하였다. 출세길이 훤히 열렸다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의 착각이었다.

합비무천장으로 돌아온 그는 사라와 유라의 벗은 몸을 감상하려다가 거꾸로 제압 당하는 불상사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합비무천장에서는 사라와 유라를 유력한 장주 살해범으로 지목하고 추격중이다. 탑리목분지에 있어야 할 자신들을 납치하고, 철기린에 바쳐 몸을 망치려 한 죄를 물어 그의 사지를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합비를 떠난 일행이 다음에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남경(南京)이었다. 이곳을 시작으로 장강을 따라 동진(東進)하다 보면 청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그러던 중 보달기를 본 사라와 유라는 사면호협으로 하여금 자하두로 역용하게 하였다.

사면호협의 얼굴 가운데 턱은 유난히도 각이 져 있다. 따라서 보달기가 자세히 살폈다면 족장의 턱이 전과 다르게 넓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나 워낙 겁을 집어먹은 탓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산해관에 들러 놈을 제거한 후 기회를 노려보자."
"그래요. 어차피 철기린이라는 자는 쉽게 응징할 수 없는 자이니 기회를 봐야지요."

"저, 죄송한 말씀이지만 산해관에 가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잖아요."
"들를 곳이라니? 어디…? 아, 맞아! 태산에 먼저 들러야지."

이제 산해관으로 직행하여 자신을 지옥갱으로 보낸 혈면귀수를 응징하려던 사면호협은 먼저 가야할 곳이 있다는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초지악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해냈다.

태산에서 정의수호대원들을 양산해내는 무공교두 노릇을 하는 그는 일찍이 부모를 시해하는 패륜을 저질렀으며, 동생에게 독을 사용했고, 동생의 약혼녀를 겁간(劫姦)한 악질 중의 악질이다.

사라와 유라는 반드시 한운거사 초지악을 척살하겠다고 사부의 무덤 앞에서 맹세하였고 하였다. 그래서 태산에 가야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는데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인 그자는 단 하루도 하늘을 이고 살 자격이 없는 자예요. 그러니 가는 길에 놈을 먼저 처단해요."
"그래야지. 하지만 놈을 처단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야. 청타족 용사를 포함해도 우린 불과 오십인 반면 거기엔 적어도 오백에서 일천에 달하는 예비 대원들이 있을 거거든."

"그래서 일월도법을 전수한 거잖아요. 그건 초지악이 전수하는 무공에 대한 완벽한 파훼식이 될 거니 숫자상의 불리함은 어느 정도 극복될 것 같아요."
"으으음! 과연 그럴까?"

사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면호협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한때나마 무천장주였기에 누구보다도 정의수호대원들의 무공에 대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비 정의수호대원들은 태산에서 일월도법을 익히기 전 나름대로 무공 수련을 한다. 개중에는 가전무공을 연성한 자도 있는데 일월도법을 능가하는 무공도 있다.

따라서 일월도법의 파훼식만 가지고 그들을 상대하려다간 자칫 화를 입을 수 있기에 근심스런 표정을 지우지 않은 것이다.

"호호! 잊으셨나요? 일월도법은 강해요."
"그래 그건 안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사면호협의 찌푸려진 검미는 좀처럼 펴질 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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