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6

말똥 치우는 늙은 개 (1)

등록 2003.11.03 14:23수정 2003.11.0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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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라? 나 더러 선무곡의 증포소(蒸包所)를 장악하라고?"
"헤헤! 그렇습니다요."
"흐음! 증포소라 하면 홍삼을 제조하는 곳이라고 들었네만 그곳을 장악해 무슨 이득이 있는가?"

"대인! 소인은 일찍이 선무삼의 가운데 하나인 방조선 어르신 밑에서 병부잡이를 했습니다요."
"흐음! 그런데?"


"얼마 전, 선무곡은 점창파의 파암노를 구매하려 했습니다요. 그건 무척이나 비싼 물건이지요. 그런 그것을 구입하겠다고 한 것은 선무곡에서 질 좋은 홍삼을 양산해냈기 때문이었습니다요."
"흐음! 그런데…?"

이회옥은 짐짓 흥미가 당긴다는 듯 손으로 턱을 비비며 부복하고 있는 금대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무곡에는 홍삼을 제조하는 증포소가 딱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요. 여길 거치지 않으면 홍삼이 될 수 없습죠."
"그래서?"

"현재 증포소는 인삼을 증포했다는 증서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인삼 한 근당 열 냥씩 은자를 받습니다요. 그곳은 현재 호법 가운데 하나가 관장하고 있습니다만 대인께서 맡으시겠다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요. 증포되는 물량이 제법 많으니 거기서 나오는 은자만으로도 철마당 경비는 충분히 충당될 듯하옵니다요."
"흐음! 그으래…?

오늘 이회옥은 철마당 수뇌들을 대동하고 마굿간 순시를 한 바 있다. 이는 조만 간에 있을 주석교 침공을 대비한 점검으로 매 삼 일에 한 번 있는 공식 행사이다.


일행이 가장 마지막에 들른 곳은 금대준이 한참 말똥을 치우고 있던 곳으로 철기린의 애마 즉, 비룡의 마굿간이며, 당주 집무실 바로 뒤에 있는 곳이었다.

철마당에 온 이후 금대준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말똥 치우고, 냄새나는 건초를 걷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이며, 생전 처음 해보는 고된 일이기에 힘도 들고 허리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고통스럽다거나 불만스럽다는 표정이 없었다.

여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무림천자성의 식솔로 인정받는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이었다. 비록 말똥이나 치우는 허드레 일이지만 동경해 마지않던 무림천자성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던 것이다.

둘째는 당주의 신임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희열 때문이었다. 이회옥은 금대준을 볼 때마다 의가(醫家)에서 병부잡이 일을 하였다면 힘든 일을 한 경험이 없을 터인데 괜찮냐고 물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척한 것이다.

이것을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당주의 지속적인 관심이라 생각한 금대준은 희열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이었다.

마지막 셋째는 자신이 담당한 마굿간이 무림천자성의 소성주이자 차기 성주로 내정된 철기린 구신혁의 애마, 비룡의 거처라는 것에 대한 벅찬 감격 때문이었다.

하여 얼마나 쓸고 닦았는지 마굿간에는 늘 마른 건초가 깔려 있었고, 퀘퀘한 말 오줌 냄새나 말똥 냄새도 나지 않았다.

금대준은 자신에게 이런 일을 할 기회를 부여한 이회옥이 하늘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매일 아침 당주 집무실을 향해 돈수(頓首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림) 구배(九拜)를 올렸다.

그러는 한편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에 더 들까를 고심하였다.
무림천자성에 온 이후 반년이 넘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체면 때문에 말은 안 했지만 심한 마음 고생을 하였다. 잃어버린 권력에 대한 심한 향수병을 앓은 것이다.

자신이 헛기침이라도 한번하면 벌벌 기던 사람들이 득실대던 선무곡을 떠나 무림천자성에 오니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눈썹하나 까딱하는 사람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권력의 맛을 아는 사람은 절대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놓고 난 이후 찾아오는 허무감으로 인해 미칠 지경이 되기 때문이다. 하여 어떻게든 권토중래(捲土重來)할 기회를 엿보던 중이었지만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어렵게 다리를 놓아 비문당 부당주에게 만나주기를 청했으나 소가 닭 보듯 하여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였던가!

청을 넣은 지 무려 한 달만에 간신히 떨어진 접견 허락에 뛰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나갔으나 비문당 부당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하여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앞이 캄캄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회옥을 만났다. 그와의 우연한 만남은 가히 천우신조에 비견될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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