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것들을 보며 느끼는 단상들

등록 2003.11.14 06:56수정 2003.11.14 18:4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도시락-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었을까?

도시락-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었을까? ⓒ 김민수

옛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잊혀진 것을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순간 그 옛것에서 느껴지는 향수를 경험해 본 이들은 아주 오래 그것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밭일을 나갈 때 간단하게 요기할 것을 싸서 다니던 도시락, 특별히 제주의 것이라고 하니 그 안에 어떤 것들이 담겨져 있었을까 궁금하다. 물에 된장을 풀어 밥을 말아 훌훌 마셨다고 하니 그런 것들에다가 달랑무 아니면 젓갈이 들어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보다 조금 더 진화한 철도시락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보온도시락을 떠올릴 것이며, 요즘처럼 학교에서 급식이 제공되는 시대에 사는 아이들은 '도시락은 무슨 도시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의 변두리는 자기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는 철거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다보니 늘 서울 중심가로 나가는 버스는 초만원이었다.

버스 종점은 운행이 끝나는 지점이요 시작되는 곳, 새벽이면 늘 그 곳은 버스를 타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로 북적거렸고, 첫 정거장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버스는 만원이었다.

포개어지고 또 포개어지며 안내양의 도움으로 겨우 발만 올려놓으면 버스기사의 능수능란한 버스 흔들기로 사방 포위된 채 꼼짝없이 버스의 흔들림에 몸을 맡겨야만 했다.


늘 버스에서 나던 냄새 중 하나는 바로 김치냄새였다. 누군가의 가방이 뒤집혔을 것이다. 아니, 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정도의 냄새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관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생각에서부터 추운 겨울 난로에 도시락 얹어 놓던 생각에 이르기까지… 옛 것을 보면 그리움같은 향수가 하나 둘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마련이다.

a 밀짚모자

밀짚모자 ⓒ 김민수

주인장의 말에 의하면 도시락도, 저 모자도 실제 사용하던 것인데 썩을 때까지 그냥 밖에 저렇게 전시해 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했던 물건들. 알지 못할 사람의 삶이 배어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뙤약볕에서 검게 그을렸을 얼굴, 그 얼굴은 다름 아닌 우리 부모님들의 얼굴이었다.

밀짚모자. 한 때는 여름철이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액세서리가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여성용 밀짚모자에는 원색의 비닐이 둘러쳐져 있었다. 밀짚모자의 끝선은 노랗고 파랗게 물들인 짚으로 마감했다. 남성용은 그보다 작았고 검은 비닐만 둘러쳐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역마다 밀짚모자의 모양은 달랐겠지만 밀짚모자를 써야했다면 뙤약볕에서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보다는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을 능력처럼 여기는 풍토에서 밀짚모자는 벗어버리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a 양은주전자

양은주전자 ⓒ 김민수

논밭에서 일하시던 아버님을 따라나서면 "얘야, 선이네 가서 막걸리 한 되만 받아와라!"하셨다. 사진의 나무에 걸려있는 주전자는 반되정도 받을 수 있는 주전자인 것으로 보인다.

반짝반빡 빛나면서도 녹슬지 않고 강한 스테인레스가 등장하여 그릇세계를 평정을 한 이후 양철주전자와 냄비는 우리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러면서 사라진 많은 단어들이 있는데 '반(半)'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막걸리뿐만 아니라 고기도 반근, 두부도 반모가 있었다. 언제나 온전한 한 근 또는 한 말을 사먹나 고대하던 시절, 모내기철에 반되 아닌 몇 말, 반근 아닌 몇 근의 막걸리와 고기를 사면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동네의 구멍가게에서는 항아리에 막걸리를 담아두었다가 꼬마 손님이 막걸리 심부름을 오면 눈깔사탕같은 것을 덤으로 주었다. 구멍가게에서 논밭으로 가는 그 짧은 거리는 유혹의 거리였다. 씁쓰름한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셔본다.

'캬, 쓰다. 이걸 어른들은 왜 먹는 것일까?'

저 주전자를 보는 순간만큼은 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고향, 그리고 작은 논두렁과 밭두렁을 거닐던 나의 어린 시절이 선명하게 보인다.

a 항아리-제주에서는 주로 곡식을 넣어두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항아리-제주에서는 주로 곡식을 넣어두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 김민수

이 항아리는 육지의 항아리와는 다르게 쓰였다. 따스해서 겨울에도 푸성귀가 밭에 늘 있고, 땅이 얼지 않으니 김장독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주로 밭 같은데 놓아두고 곡식저장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주에 와서 밭을 볼 때마다 신기한 것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밭마다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돌담이었고, 또 하나는 밭에 있는 항아리였다. 지금은 항아리가 간혹 보이지만 옛날에는 밭마다 있어서 그 곳에 곡식을 저장하곤 했단다.

왜! 집에 두지 않고 밭에 있는 항아리에다 저장을 했는가 물으니 '전쟁'이 많아서 그리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항아리에도 아픈 역사가 배어있다.

돌담은? 돌담 역시도 반듯하고 높게 쌓은 것은 부와 권력을 상징한단다. 그래서 무덤 가의 돌담의 경우는 어떻게 쌓았는지를 보면 어느 정도의 집안인지를 안다고 한다.

육지에서의 항아리는 대개 김치보관용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김장독을 묻는 것이 연례행사였고, 추운 겨울 김장독에서 꺼내어 먹는 김치의 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추운 겨울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김칫독에서 김치를 꺼내 김치부침개나 김치만두를 해 먹으면 그 겨울밤이 그렇게도 짧을 수가 없었다.

억새나 갈대로 만든 도시락이나 모자, 양은주전자, 항아리 따위는 고가의 골동품을 취급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호사가들이 한 두 개 사서 자기의 거실이나 정원에 장식품으로 두기도 하겠지만 그 곳에서도 시골집 마당에 놓여 있는 이런 향수들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못 생겼어도 무농약, 유기농이라면 비싼 값에 불티나게 농산물들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늘 때깔 좋은 것만 먹던 양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못 생긴 것, 벌레 먹은 것을 찾는다고 하니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그나마 서민들이 싼값에 먹을 수 있었던 못생긴 것과 벌레 먹은 것마저도 빼앗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