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어록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아빠, 국물 좀 생겼어?"

등록 2003.11.18 10:36수정 2003.11.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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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막내 용휘는 지금 6살입니다.

막내 용휘는 지금 6살입니다. ⓒ 김민수


"아빠, 뽀뽀~."


애교를 부리며 달려와 아빠의 볼에 뽀뽀를 하는 용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일까? 이른바 '국물'을 만드는 중이다.

"아빠, 국물 좀 생겼어?"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용휘. 기어코 목소리가 높아지게 한다. 그 때 내가 한 마디 했다.

"너, 그렇게 말 안 듣고 떠들면 국물도 없어!"

"아빠, 국물도 없는 게 뭐야?"


"음… 그러니까 용휘한테 작전 필 것이 없다는 얘기지."

여기서 잠깐, 또 '작전'은 무엇인가?


우리 부자 사이에서 '작전'은 '엄마 몰래 아빠가 용휘와 약속하는 것'으로 주로 엄마가 사 주지 않는 '지지한' 장난감을 사주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엄마 몰래 이불 속에서 잠자기 전에 속닥속닥 이루어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작전 필 것이 없다는 이야기에 심각해진 용휘. 온갖 아양을 떨고 있는 중이다.

"아빠, 이젠 국물이 몇 개 됐어?"

"응, 한 개."

"그거 가지고 뭐 할 수 있어?"

"임마, 아무 것도 못하지. 최소한 세 개는 되야 작전을 피지."

용휘의 애교 공세는 국물 세 개를 만들 때까지는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뽀뽀에서부터 시작된 애정 공세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 아빠요, 자기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아빠만 닮았다고 하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결국 '국물' 세 개 만드는 데 성공.

"아빠, 싸랑해~"하며 합체를 하자고 달려드는 용휘의 배가 따뜻하다. 여기서 '합체'란 용휘와 아빠가 배꼽을 맞추고 자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아들과 아빠만의 대화가 있는 시절이 우리 용휘에게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벌써 서운하다.

아빠와 이불 속에서 키득거리며 두런두런 엄마 몰래 작전을 피고는 잠자리에 빠져드는 막내를 보면 게을러서 첫째 딸 이후 제대로 쓰지 못한 육아 일기가 못내 아쉽다.

a 여름에서 가을로-그 사이에 많이 컸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그 사이에 많이 컸습니다. ⓒ 김민수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기상천외한 말들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때만 재미있게 깔깔 웃다가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

시내를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급한 일이 생겼다. 중산간도로를 평소 때보다 빨리 운전을 하니 내리막길에서는 청룡열차를 타는 것 같나 보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막내가 이 말 한 마디로 차 안을 웃음으로 가득차게 만든다.

"고추가 깜짝이야!"

정말 실감나는 표현이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말들을 많이 한다.

외출을 했다 들어오면서 멍멍이들이 반갑게 맞이하면 "멍멍이한테 미안해서 어쩌냐… 야, 우리 맛있는 거 안 먹었어. 니네 못 먹는 닭 먹고 왔어"하기도 하고 병원에 갈 때는 망가진 장난감을 호주머니에 넣고 가서는 "선생님, 애도 고쳐 줘요"해서 기어코 새 장난감을 사 주게 만들기도 한다. 어디 우리 아이들만 재미있는 말을 하겠는가?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전부터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 시요, 노래다.

2001년도 11월 18일, 그러니까 꼭 이년 전에 있었던 용휘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육아일기를 살펴 보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용휘는 아빠에게 쫙 달라 붙어서 책 읽어 달라, 노래해 달라 주문이 많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조금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부자가 하는 놀이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이것은 누구 건가요?' 놀이인데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음율에 맞추어 놀이를 하다보면 용휘의 순발력으로 재미있어진다.

"이것은(배꼽을 만지며) 누구 건가요?" "용휘 꺼."
"이것은(엉덩이를 만지며) 누구 건가요?" "할머니 꺼."
"이것은(귀를 만지며) 누구 건가요?" "엄마 꺼."

그러더니 어젯밤에는 아빠의 온 몸을 하나하나 만지며 모두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래, 너 다 가져라!"했더니 두 손을 모우고 하나님께 식사 기도를 한다. "하나님, 진희 누나 바보야, 다희 누나 바보야. 아멘" 하더니만 아빠를 먹기 시작한다.

"코, 쪽!" "눈, 쪽!" "배, 쪽!" "다리, 쪽!"하며 온몸을 손바닥으로 딱딱치며 냠냠거리며 먹는다. 그러더니 이번에 코딱지를 먹겠다고 콧구멍으로 손이 온다.

"아이고, 더러버!"

그래도 용휘는 재미있는지 아빠의 몸 여기저기를 딱딱 치며 "쪽쪽" 먹는 흉내를 낸다.

"아이고, 용휘 배 부르겠네. 아빠를 다 먹어서."
"음, 배부르다! 아빠 잘자!"

하더니 금방 꿈나라로 가는 용휘, 용휘의 잠든 손이 따스하다. 한 손은 여전히 자기의 배꼽을 만지고 있고… 씨익 웃는 용휘. 좋은 꿈을 꾸나 보다.

-2001년 11월 11일 육아일기 중에서-


가끔씩 이렇게 육아일기를 읽으면 그 때의 장면이 떠오르며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저런 소중한 말들을 놓쳐 버린 것들이 많은 것 같아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아이들의 어록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적어놓기도 하면 참 재미있는 어록이 될 것이고, 아이들에게도 참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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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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