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58

진보, 개혁, 보수, 수구 (6)

등록 2003.12.01 08:44수정 2003.12.0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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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이쪽은 내 사촌인 소화타 장일정이라 하오. 이쪽은 선무곡에서 온 일타홍 홍여진 낭자라네."
"소녀가 고명하신 소화타께 인사드려요."
"아, 아니외다. 소, 소생 장일정이…"

장일정의 약간 더듬는 듯한 모습을 본 이회옥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루난과의 혈전 이후 혼절하였다가 깨어났을 때 자신도 호옥접을 보고 잠시 굳었었다는 것을 떠올렸던 것이다.

수인사를 마치고 호옥접이 내왔던 차를 모두 마신 홍여진은 자꾸 이회옥의 눈치를 살폈다. 긴히 상의할 이야기가 있는데 좀처럼 독대(獨對)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잠시 머뭇거리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저어…, 소녀 공자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여기선 그냥 말씀하셔도 되오."

"그, 그래도… 이건 대외비(對外秘)인지라…"
"혹시 장보고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오?"

"장보고요? 혹시 해동 땅 완도 청해진(淸海鎭)에 근거지를 두었던 해상왕 장보고(張保皐) 어르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호오! 알고 계시는구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은 왜…?"
"후후! 여기 있는 소화타가 그분의 직계 후손이라오."

"예에…?"
"다시 말해 아우도 우리와 같은 한족(韓族)이니 제세활빈단 이야기해도 된다는 말씀이오."
"……!"


홍여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이 사촌지간이라서가 아니다.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광활한 영토를 복속시켰던 광개토대제와 하마터면 당나라를 멸망시킬 뻔했던 이정기, 그리고 한때나마 바닷길을 완전 장악했던 장보고였다.

이회옥은 이정기의 후손이면서 광개토대제의 유전을 이었고, 장일정은 장보고의 후손이니 존경하던 선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잠시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신당서(新唐書)와 구당서(舊唐書), 그리고 자치통감(自治統監)의 기록에 의하면 이정기와 장보고는 분명히 적(敵)이었다.

이정기가 평로치청군(平盧淄靑軍)을 이끌고 당나라를 멸망시키려 할 때 장보고는 서주(徐州)에서 서주절도사 휘하 군단인 무령군(武寧軍)의 군중소장(軍中少將)을 맡고 있었다.

다시 말해 당나라의 장수로서 이정기의 앞길을 막아서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장보고는 이정기의 군사를 맞이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따라서 적대 관계여야 정상인데 피가 섞인 사촌지간이라고 하니 약간 이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이정기의 휘하에는 고구려 유민 출신이 많았다. 반면 장보고의 휘하에는 신라인들이 많이 있었다. 고구려 유민이나 신라 사람이나 모두 당나라로부터 차별과 핍박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서(史書)에는 당나라에서 신라인들이 당하는 핍박을 보다 못한 장보고가 신라로 되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신라 사람들이 노예만도 못한 생활을 한다는 말로 흥덕왕을 설득한 그는 군사 일만을 할당받았고, 청해진 대사에 임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덕분에 강력한 세력이 되어 해상을 완전 장악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약간 다르다.

청해진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이정기 왕국이 당나라에게 패망하고 십 년 정도가 흐른 뒤부터였다.

이정기가 죽은 후 평로치청군을 이끈 사람은 그의 아들인 이납이었다. 그는 나라 이름을 <제>라 칭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그 자리는 그의 아들인 이사도와 이사고로 세습되어 갔다.

당시 제나라는 물산(物産)이 풍부한 핵심지역과, 운하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천하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했다.

더욱이 바다를 통해 발해와 신라, 그리고 왜(倭)까지 외교와 상행위를 함으로써 가장 위력적인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정기가 죽은 지 삼십팔 년이 되던 해에 당나라 헌종의 대대적인 침공을 막아내지 못해 오십오 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끝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 당나라는 잔인한 보복 조치를 취했고, 주민들은 여러 지역으로 분산 이주되었다. 한족(韓族) 출신 유민들이 다시는 집단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정기에 관한 기록들은 여기까지 기록된 뒤 끝을 맺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그의 왕국은 그대로 끝난 것일까?

그리고 휘하에 있던 그 많던 군사들 모두가 전사(戰死)하거나 당나라 군사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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