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60

진보, 개혁, 보수, 수구 (8)

등록 2003.12.08 18:31수정 2003.12.0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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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는 말에는 옳고 그름 등등을 따져보기 전에 일단 발을 내디뎌 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진보 세력은 자신들이 하려는 일이 정의로운 방법인지 그렇지 않은지, 혹은 안전한지 그렇지 못한지를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 보려고 한다.


이들의 본래 취지는 현재의 악습(惡習)을 일거에 타파(打破)하고, 대신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더 낫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세상을 새롭게 해보자는 집단이다.

그들의 생각했던 대로라면 가장 빨리 발전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반면 예상치 못했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정말 위험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전보다 못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개혁 세력은 언뜻 보면 진보 세력과 상당히 비슷한 궤(軌)로 보이지만 자세히 따지고 보면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개혁의 개(改)는 고친다는 의미이고, 혁(革) 역시 고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나쁘게 되거나 망가진 것을 손봐 이익이 되게 한다는 뜻일 것이다. 고치면서 먼저보다 더 망가트려 손해보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악습이 나쁘다면 그것을 혁파(革罷 :기구, 제도, 법령 따위가 낡아서 못 쓰게 된 것을 버림)만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고쳐 쓰자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이 바로 개혁 세력이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고쳐 이롭게 하려할 때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법이다. 따라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이는 진보 세력보다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수는 보호한다(保)와 지킨다는(守) 의미가 결합된 말이다. 이 말 역시 나쁜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 말이다.


보호한다라는 것은 아낀다, 보살핀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지킨다라는 말도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대로 두지 않고 이익이 되게끔 고친다. 하지만 전혀 다른 것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크게 해롭지 않다 판단되면 과거의 것과 같이 비슷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 생각하였다. 과거의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고쳐보느냐 아니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느냐는 의미만 다를 뿐 크게 보면 개혁이나 보수는 많은 공통점을 지녔다고 생각되었다.수구는 옛것(舊)을 지킨다(守)는 의미의 말이다.

이는 옛것이 설사 잘못된 것일지라도 절대 고치지 않고 그것을 고수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말이다.

악법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고치지 않고, 악습임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이유는 하나뿐일 것이다. 과거의 악법이나 악습, 혹은 나쁜 제도 덕분에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고치지 않으려 하겠는가?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립한 이회옥은 진보, 개혁, 보수, 수구 가운데 진보는 위험하지만 악의가 없었으니 설사 잘못되더라도 정상 참작을 해주어야 마땅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개혁과 보수는 지극히 합리적일 것이니 나쁘게 되는 경우가 드물 것이라 생각하였다. 반면 수구는 다분히 악의적이므로 잘못되었다면 추상(秋霜)과 같은 처벌로 다스려야 한다 생각하였다.

“이제 본 단주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 들으셨소?”
“그러니까 악인록 권이에 기록된 자들을 진보와 개혁, 그리고 보수와 수구로 분류하라는 말씀이시지요? 그 다음엔요?”

“가장 먼저 수구세력을 이끄는 수뇌부를 제거하시오. 그들이 제거되어야 선무곡의 앞날이 발전될 수 있을 것이오.”
“수구 세력의 수뇌부들이라 함은 누굴 지칭하시는 건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오?”
“그건 아니에요. 다만 소녀의 생각과 같은지 알고 싶어서…”

“후후! 좋소, 속 시원히 알려드리리다. 수구 세력을 이끄는 꼴통들은 장로원에 많이 있을 것이오. 서정원, 태장랑, 최견구 같은 놈들과 그들 휘하에서 연일 헛소리나 지껄이는 홍표, 금갑, 정근, 하봉 같은 놈들이야말로 꼴통 중의 꼴통이라 할 수 있소.”
“……!”

“그들 외에도 선무삼의라 일컬어지는 방조선과 금동아, 그리고 이중앙도 꼴통에 포함시키시오. 그리고 놈들 밑에 있는 금대준이나 조잡재 등등도 마찬가지이오.”
“……!”

“놈들을 척살하되 반드시 수급을 베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 효시(梟首)하시오. 그 과정에서 절대 인정을 베풀지 마시오. 고름은 절대 살이 될 수 없기 때문이오.”
“그럼, 개과천선할 기회도 주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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