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풀린 진돗개 목덜미를 누가 잡으랴

술 취한 개와 함께 만들었던 몹쓸 추억

등록 2003.12.09 15:44수정 2003.12.1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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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에 들어서는 내 트럭 앞으로 흰 개가 나타나서 가로 막길래 아랫집 개가 저렇게 커지는 않는데 누구네 개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차마 받아 들이기 난감한 우리집 진돗개 '금이'기야 하랴 했었지만 속절없이도 금이가 맞았다.


나는 대뜸 "새들아아아…"하고 목을 놓아 새들이부터 불렀다. 트럭 문도 닫지 않은 채 나는 개가 언제 풀렸는지, 옆집에 가서 재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또 닭장에 가서 닭을 물지는 않았는지를 다급하게 물었다. 방에서 나온 새들이는 개를 다시 묶어 보려고 개밥 그릇을 가지고 얼러도 보고 구슬러도 봤지만 끝내 붙잡지 못했다고 한다.

어제따라 얼어붙는 겨울 날씨라 언 손을 부벼가며 내가 다시 개를 묶어 보려고 개 사료를 가득 퍼 와서 불러보기도 하고 맛있는 생선 먹다 남은 것을 가져다 "금이야, 금이야…" 애타게 불렀지만 꼬리만 살살 흔들면서 내 손끝을 핥기만 하고 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다정스레 부르는 주인놈 하는 꼴이 미덥지 않을 수밖에는.

할 수 없이 나는 닭장에 가서 개가 파고 들 개구멍은 없나 닭장 울타리 단속을 단단히 하였다. 또 개 사료 포대도 꼭꼭 여며두었다. 개 밥 끓이는 가마솥 뚜껑도 잘 덮어 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 아침까지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도록 주변을 단속해 둔 것이다.

금이를 강아지 때부터 풀어 키우다가 아래 윗집 성화에 못이겨 개 목걸이를 사다 묶으면서 내가 당한 고초를 생각하면 등골이 다 오싹하다.

가장 처절했던 순간은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게 된 금이가 비가 추적추적 오는 마당에서 비틀비틀 하다가 물이 고인 땅바닥에 콱 쳐박혔을 때다. 금이는 몇 번이나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려고 했지만 앞 무릎이 풀썩풀썩 꺽였다. 먹이다 남은 소주병을 쥐고 있던 나는 사경을 헤매는 금이를 차마 지켜 볼 수가 없었다.


다시 일어 선 금이는 비실비실 옆으로 자빠질 듯 달려 나가다가 집 앞 개울로 굴러 떨어져버렸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는데 고무신조차 거꾸로 꿰고 내가 울먹이면서 달려갔지만 자기를 도탄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는 걸 알고 금이는 필사적으로 내달려 산으로 도망을 갔다.

눈이 게게 풀린 금이를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과음을 하고 술이 깨면서 겪는 속쓰림이었다. 기품 있던 새하얀 털은 여기저기 흙탕물로 얼룩이 졌고 곁에만 가도 독한 소주 냄새가 앙등을 하였다. 술을 타 먹여서 정신을 잃으면 묶을 수 있다는 아랫동네 개 장사 아저씨 말만 듣고 사료에다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탔지만 실패했던 나는 이번에는 과일주 담는 35도짜리 소주 됫병을 사다가 이틀이나 금이를 굶긴 다음날 음식에 타서 주었던 것이었다.


금이가 사라진 산등성이를 바라만 보다가 속풀이 약이라도 사다 먹여야 하나 싶었지만 당장 생사가 궁금하였다. 긴 작대기를 들고 산을 올라가다가 양지 바른 무덤가에 모로 누워 있는 금이를 보았다. 그 옛날 풍산개 '산이'를 새들이랑 새날이랑 울먹이면서 묻어야 했던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인기척을 느낀 금이가 고개를 쳐들자 나는 뛸듯이 반가웠지만 금이는 나를 피해 덤불을 헤치고 또 도망을 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술이 조금 깨는지 발걸음에 생기가 좀 도는 듯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개를 묶는 것은 이내 포기했고 과음으로 죽을까봐 가슴 졸이던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아랫방 아궁이에 군불을 지폈다. 오랜 장마로 방에 들어 찬 습기를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불이 솔찮이 타 오를 때였다.

아궁이가로 그림자가 지는 듯싶더니 글쎄 금이가 흙 투성이이긴 해도 생기를 완전히 되찾은 표정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내게로 오는 게 아닌가? 저놈이 술이 깨니까 내가 저를 술 먹였던것도 잊었나 싶었다.

내 곁에 온 금이를 나는 면목이 없어서 못 본척 했다. 그렇게 다가 온 금이는 내 곁에 누워 따스한 군불을 쬐며 천천히 잠이 들었다. 두 발로 턱을 괴고 자던 금이는 아예 배를 하늘로 벌러덩 누워 네 다리를 뻗더니 드러렁 드러렁 코까지 고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욕심이 생겼다. 개 목걸이를 가지러 일어서려니 금이가 깰것 같고 그냥 못 본 채 하자니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새들이를 불렀다. 눈치를 챈 새들이가 먼 발치에서 긴 장대에 개 목걸이를 걸어서 내게 건네 주었다. 나는 금이를 털끝 하나 안 건드리고 목덜미 고리에 쇠줄을 걸었다.

쇠줄이 걸리면서 목걸이가 제법 심하게 당겨졌는데 금이는 세상 모르고 계속 자고 있었다. 흔들어 봤다. 나중에는 거칠게 흔들어봤다. 겨우 눈을 게슴츠레 뜬 금이는 귀찮다는 듯이 다시 코를 골았다.

이렇게 하여 닭 두 마리를 물어 죽였고 아랫집 할아버지네 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서 상당 기간 할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내가 눈치를 봐야하는 세월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지만 내 가슴에는 금이가 속을 다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쓰린 기억이 남겨지게 되었다.


개 줄이 풀려 온 마당을 쏘다니는 금이를 보면서 이런 고통을 다시 반복해야 하나 싶은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금이도 이제는 어미개가 다 되어서 술을 먹이더라도, 말 술을 먹여도 쓰러지지 않을 것 같고 술을 입에 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일을 어찌 하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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