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방아 찧어 주고 얻은 새경

왕겨 열 포대와 찹쌀 서너 되

등록 2003.11.28 10:20수정 2003.11.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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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했지만 너무 쉽게 생각했다가 큰 코 다친 하루였다. 정말 코를 다쳤다. 콧구멍이 콱 막혀 버렸다. 앞이 안 보이는 먼지 속에서 얇은 마스크 한 장에 운명을 걸고 방앗간에서 한나절을 비비적대다 보니 머리랑 어깨랑 콧잔등은 물론 짧은 수염에까지 먼지가 자욱하게 앉았다.


안경에 앉은 먼지는 떡이 되었다. 마스크 틈새로 올라가는 입김이 안경에 서리고 그곳에 먼지가 쌓이니 떡이 될 수밖에는. 코를 풀어 보니 시커먼 건더기가 끈끈하게 한 뼘이나 끌려 나왔다.

동네 한씨 할아버지가 나락 80가마니를 방앗간에 실어만 달라길래 선뜻 그러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팔순의 늙은 할아버지를 뻔히 바라보면서 운전대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건조기에서 나락을 꺼낼 때부터 '야, 이거 오늘 욕보게 생겼구나' 싶었는데 근 100개나 되는 나락 부대를 여미는 단계에서 나는 무지막지한 먼지와 맞닥뜨렸다.

차라리 트럭에 싣고 운전해 가는 동안은 천국이었다. 아랫동네 건조기와 읍내 방앗간에서 나는 먼지 속에서 살았다.

트럭에서 나락 포대를 끌어내리고, 옮기고, 방아 찧고 나서 쌀 포대를 싣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40kg짜리 쌀부대는 단단히 끌어안고 들지 않으면 허리를 다칠 것 같았다. 쪼그리고 앉아 허리를 곧추세운 채 가슴으로 꽉 끌어안고 조심스레 일어섰다.

시골 방앗간이지만 설비가 최신 기계였고 겉보기에는 제법 깔끔했다. 그래서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이것만 해주자 하고 덤벼들었는데 쌀을 처리하고 나니 왕겨가 남았고 왕겨를 처리하니 쌀겨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아예 할아버지는 좋은 일꾼 만났다는 식으로 한발 뒤로 물러서시는 게 아닌가. 이런 오늘 코를 단단히 꿰었구나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초대형 부대에 왕겨를 담는 작업은 지독했다. 휘몰아치는 한겨울 눈보라같이 쏟아지는 왕겨를, 포대를 든 채 주둥이를 잘 붙들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해야 했다.


쌀겨를 부삽으로 자루에 퍼 담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왕겨든 쌀겨든 할아버지한테 몇 부대 달래야지 하면서 위안을 삼았지만 목덜미로 스며드는 까끄라기는 특히 고약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콕콕 찔러대는 까끄라기는 일이 끝날 때까지 몸에 담고 지내야했다. 근데 그 까끄라기에서 나는 수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고향마을에 가 닿았다.

탈곡기가 돌아가고 나락단을 지게에 져 나르고 탈곡기 곁에서 나락단을 앗아 주던 시절. 긴 싸리 빗자루로 탈곡기 앞에 떨어지는 지푸라기를 틈틈이 쓸어내고는 알곡만 짚으로 짠 가마니에 퍼 담던 시절.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그 시절의 매콤한 타작마당 냄새가 방앗간 까끄라기에서 났던 것이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 와서는 백열전등을 마당 거름자리까지 달아 내놓고선 새벽녘까지 키질을 하시던 어머니까지 떠올랐다.

이때 한씨 할아버지의 구부러진 등허리가 새삼스러워 보여 이왕 해 주는 일 완벽하게 다 해주자 싶어졌다. “제가 오늘은 할아버지 아들내밉니다. 그렇죠?“라며 농담도 주고 받았다.

11남매나 키우셨지만 자식들이 집에 자주 찾아오지를 않으신다. 큰아들은 내일 모레면 곧 환갑이라고 한다. 두 노인네 부부는 교대로 시내 침집에도 가고 약도 지어먹고 어떨 때는 일어서지 못해서 나를 부르면 차를 몰고 가서 시내 침집까지 모셔다 주기도 여러 번 했다.

쌀 14가마니는 큰아들이 싣고 갈 거라고 방앗간에 놔두란다. 여섯 가마니는 윗집 기정이네서 산다고 해서 실어다 주고 나는 왕겨 열 포대를 얻었다. 맘대로 움직이질 못하고 내내 집에만 계시면서 바라만 보시던 할머니가 깜깜한 밤에야 일을 끝내고 돌아가려는 내 차 짐칸에 찹쌀 몇 되를 담아 주셨다. 떡이나 해 먹으라고.

몇 달 전 후배에게서 그냥 얻어 고쳐 쓰고 있는 트럭 가지고 정말 좋은 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때는 운송료로 방앗간에다 쌀 한 가마니 당 쌀 한 되를 삯으로 주든지 아니면 직접 소달구지에 하루 종일 실어 날랐던 할아버지가 무척 고마워하는 것도 그럴 만했다.

트럭에 나락과 쌀을 싣고 여러 차례나 동네를 오가는 나를 보는 동네 사람들 눈빛이 참 흐뭇해 보였다.

대형 포대로 열 포대나 되는 왕겨는 마당구석에 쌓아 보니 작은 산이 되었다. 그까짓 왕겨 뭐에 쓸려고 하냐지만 나만의 속셈이 있다.

올 겨울. 으스스한 겨울날 마당 한 가운데에 불을 지펴 왕겨 훈탄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훈탄을 만들어 인산과 칼리 거름으로 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양질의 목초액을 뽑아내려는 것이다. 2~3일간 타오를 잿불에는 고구마도 굽고 감자도 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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