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유골' 한마디도 놓치지 마라

[取중眞담]안 중수부장과 문 수사기획관 브리핑 따라잡기

등록 2003.12.13 18:39수정 2003.12.1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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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안대희 중수부장은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둘러쌓여 수사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사진은 지난 11월 6일 안 중수부장이 출근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언중유골(言中有骨)!' 말속에 뼈가 있다고 했던가.

최근 검찰이 현대비자금에서 SK비자금, 대통령 측근비리, 불법 대선자금 수사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어마어마한 불법 대선자금이 하나 둘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로인해 대검 중수부에도 세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때문에 기자들 역시 대검찰청을 떠나지 못하고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국민들도 이제는 익숙해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이곳에선 매일 한 차례 브리핑이 열린다.

특히 대검 중수부의 수장인 안대희 중수부장과 문효남 수사기획관. 이 두 사람의 입을 통해 기자들은 매일 끼니를 해결하듯 '기사거리'를 얻어내고 있다.

안 중수부장 "내 뒤에 서지마라", "'수사상'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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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 중수부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요즘 인터넷상에서 '대선자객'이라는 풍자무협물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안대희 중수부장이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최고 핵심 인물인 그는 기자들에게 매일 아침 출근길부터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기자들은 틈만 나면 그에게서 무슨 이야기라도 듣기 위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다.

안 중수부장의 말 한마디는 취재기자들에게 중요한 정보이자 검찰의 수사를 예측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그래서 안 중수부장이 브리핑을 할 때면 늘 기자들이 북적거린다. 대검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는 브리핑에 20여 명 남짓의 기자들만 참석했지만 이제는 보통 50여 명의 기자들이 안 중수부장의 7층 방으로 발디딜 틈이 없이 모여든다.

이때 반드시 지켜야할 것이 있다. 워낙 말수가 적은 인물로 알려진 안대희 중수부장이 브리핑을 할 때면 안 중수부장의 뒤에 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안 중수부장은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뒤쪽에 기자들이 있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이를 두고 일부 기자들은 안 중수부장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매사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인 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브리핑 이후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과 안 중수부장의 대답은 마치 '칼과 방패'의 대결처럼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때 기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말할 수 없습니다"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노 코멘트" 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그날의 기사의 각을 어떻게 잡아가야할지 마음의 부담을 안고 방을 빠져 나온다.

문효남 수사기획관 "내 말을 잘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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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

평소 원칙과 소신을 고수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안대희 중수부장 못지 않은 '모르쇠'가 있으니 바로 문효남 수사기획관.

안 중수부장과 마찬가지로 기자들은 문 기획관을 매일 찾아가 정보를 캐내기 위해 일전을 벌인다. 그렇지만 그 역시도 "말할 수 없다" "수사와 관련된 사항은…" "확인해 줄 수 없다" 는 말만을 할 뿐이다. 사실 검찰 수사내용은 엄정한 보안이 필요하기에 당연한 대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 신경을 곤두세워 잘 듣고, 분석해보면 확실히 뭔가가 있다.

보통 대검찰청 출입기자들의 하루는 송광수 총장과 안 중수부장의 출근길 확인부터 시작해 문 수사기획관의 브리핑이나 이런 저런 수사내용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문 수사기획관은 안 중수부장을 대신해 일선에서 기자들과 대면하면서 난공불락의 '대검'을 지키고 완충 역할을 하면서 고전을 하고 있다.

문 수사기획관의 브리핑에서 역시 기자들이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정숙(靜肅). 그는 워낙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말소리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문 수사기획관의 브리핑 때면 귀를 기울이고 또 기울여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이때 기자들 중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리면 다른 동료 기자들에게 심한 눈총을 받는다.

한편 문 기획관은 '꼼꼼한' 성격이다. 중요한 내용을 발표할 때나 민감한 숫자(금액)가 나올 경우 혹시 말실수를 할까봐 메모용지에 내용을 적어 전달한다. 당연히 쪽지의 내용은 볼 수 없다. 메모용지를 이용하는 것은 안 중수부장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워낙 답변을 듣기 어려워 이중고를 느끼지만 문 수사기획관 브리핑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도 흘려 버릴 것이 없다. 또 조용조용 차분하게 말하는 문 기획관의 얼굴표정을 살피는 것은 기자들에게 필수 사항이다. 가끔은 그의 대답 대신에 표정이 어떠했는지도 기자들은 수첩에 기록한다. '대답할 수 없다'거나 '말할 수 없다'고 말할 때는 표정에 따라 '긍정'인지 '부정'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브리핑을 잡아라…"말할 수 없다"는 말속에 답이 있다

감질나지만 유일하게 기자들과 검찰과 연결되는 공식 통로는 브리핑이다. 한 대검 출입기자는 브리핑을 "기자들에게 하루를 연명할 수 있는 일용의 양식을 주는 자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 매일 한차례 수사상황을 브리핑을 통해 직접 들으며 앞으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전망도 할 수 있다.

보통 30여 분 동안 열리는 브리핑 시간 동안 기자들은 최대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칼날을 세운다. 그리고 이를 방어하는 검찰의 '방패'는 견고하기만 하다.

브리핑을 끝내고 나오는 기자들의 수첩을 보면 본인도 못 알아볼 정도로 쭉 흘려 적은 글씨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취재수첩을 다시 보면서 서로서로 빠진 부분이 없나 맞춰 보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면서 책을 읽을 때는 행간을 읽듯이 브리핑 내용의 '행간'을 찾는다. 이를 잘 파악하는 기자들이야말로 고수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

때로는 스무고개 진행하듯 브리핑을 한다. 또 때로는 선문답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하는 안 중수부장과 문 기획관의 답변에도 기자들은 굴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답변을 하는 안 중수부장과 문 기획관이지만 기자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마치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처럼.

안 "신빙성 없는 이야기 전달할 수 없지"
문 "인생살이 확실한 게 어딨나"
[브리핑 발췌] 안대희-문효남의 말말말

다음은 안대희 중수부장과 문효남 수사기획관이 기자들과 나눈 말들 중에 의미(?)있는 말들을 정리한 것이다. 연속적으로 문답이 오고가는 내용을 보아야 안 중수부장과 문 수사기획관이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가는 것을 더 잘 느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일부만 소개한다. <편집자주>

안대희 중수부장

[12월 12일] (이광재씨와 안희정씨에 대한 이야기가 불거졌을 때.)
- 다른 기업에서도 민주당에 돈이 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진실게임을 할 때가 아니다. 수사 관계자로서 그렇게 생각한다."

- (민주당의 또다른 통로로 안희정씨로 지목하며) 안희정씨가 아니라는 것이 '안'이라는 것인가.
"나참. 노코멘트. 좀더 확인하고 말해야지.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지 않나. 오후에 결정하겠다."

- 386의 실세라는 것만이라도 확인해달라.
"지가(이광재씨) 실세가 아닌가."

[11월 28일]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12월달이면 틀을 잡는다는 말이 나왔을 때.)
- (대선자금 수사) 1월쯤 끝나나.
"나도 쉬어야지…, 어디 좀 가고…." (끝내고 싶다는 뉘앙스였음)

- (안 중수부장에게 기자들이 항의) 수사 내용을 공개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주요 소환자가 오거나 가면 확인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아무개씨 어제 온 것도 그렇고.
"정말 몰랐다. 어제 온 것. 아침에 알았다. 문 기획관은 알았나.(몰랐다고 하자) 이게 바로 또다른 검찰의 한계 아닌가. 검사들이 알아서 수사를 너무 열심히 한다."

- 현대캐피탈의 이아무개 회장 왔다는데.
"그 사람이 회장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10월 9일] (안 중수부장 아침 출근길에 전날 최대표의 발언을 놓고 질문.)
- 최병렬 대표가 중수부장을 두고 "대한민국 최고의 실세"라고 말했는데.
"현재의 검사 권력은 없고, 의무 밖에 없는 존재다. 법에 따라 모든 사건을 한다. 무슨 권력이 있나... 그렇게 이해해 달라."

문효남 수사기획관

[12월 13일] (이광재씨는 귀가조치되고, 안희정씨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을 때.)
- 이광재씨는 완전히 구제된 것인가.
"인생살이에서 확실한 게 어딨나. 일단 귀가 조치된 것이지. 수사는 끝난 게 아니다."

- 롯데그룹과 관련해 '최종 사살'만 남았다고 하던데.
"우리도 빨리 털고 싶은 심정이다."

[12월 5일] (기업 대선자금 관련 롯데그룹 압수수색을 한 날.)
"비자금 관련해서 (롯데) 압수수색 했으며, 상당히 (관련 자료들이) 치워진 것 같다고 하는데, 치워도 영원히 없앨 수 없는 자료가 있지 않은가."

- 그럼 SK 비자금 관련해서 말해달라.
"수사팀에서 이야기를 해줘야지 말하지."

[12월 4일]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의 수사가 진행될 때.)
- 문병욱 대선자금이 이광재와 연결되나.
"아직 모르겠다. 때가 되면 왕창 얘기할 거다."

[11월 27일] (12월달로 검찰 수사가 넘어갈 때.)
- 12월에 소환되는 사람 중 국회의원보다 높은 사람이 있나.
"국민이 있겠구나…."

[11월 23일] (불법 대선자금 수사 및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한 기자들의 계속된 질문에.)
"(기자들이) 궁금하겠지만, 이번 수사는 건축에 비교하면 골조 정도 잡아놓고, 내부와 내장제 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다."

- 그럼 완공은 언제 하나.
"우리도 그게 궁금하다. 입주자가 수긍하면 완공이 앞당겨지고, 수긍을 안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길어지고…. 그러면 더 단단해지겠지만."

[11월 21일] (삼성 관계자를 검찰에 소환했을 때.)
- 삼성 3명 불렀나.
"안불렀다면 때가 되면 부르고, 불렀다면 수사팀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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