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꽃잔디'

내게로 다가온 꽃들(9)

등록 2003.12.18 10:26수정 2003.12.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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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잔디
꽃잔디이선희

세상에는 자연과 사람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랍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이러쿵저러쿵 말하지만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많습니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글과 말, 그리고 삶에 있어서의 거리감이 크면 클수록 위선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겠죠.

꽃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수없이 많은 말들을 하다보니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연이라는 것, 그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서 움직여진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신앙대로 고백하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고 일반적인 용어로 바꾸면 절대타자, 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연은 하나의 현상이기 이전에 은유라고 생각해 봅니다. 직설법이 아닌 은유로 다가오기에 똑같은 자연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과 느낌과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죠.

투기꾼들에게는 저 땅을 팔면, 개발하면 얼마나 남을까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그림을 그려주시는 이선희 선생님과는 단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전화 통화 두어 번과 몇 번의 메일, 그리고 그림이 좋아서, 꽃이 좋아서 그렇게 의기투합을 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글을 쓸 수 있는 것, 사진을 잘 담을 수 있는 것, 또 그런 환경에 사는 것 모두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서 쓰지 말자는 데까지 동의하면서 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그림이 더 좋을 때가 있고, 어떤 것은 사진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자연 그 상태가 가장 예쁘고 아름답죠.


그런데 겨울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갑자기 보내온 그림이 '꽃잔디'였습니다. 실물을 보지 않고는 그림을 못 그리신다는 분이 어떻게 엄동설한에 꽃잔디를 구하셨나 싶었습니다. 언젠가 담긴 담았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쳤던 꽃이었습니다.

바람이 차니 푸른 것이 벌써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푸르른 봄은 푸릇푸릇 잔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마도 이선희 선생님께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마음 한켠 따스해 지시라고 오늘은 꽃잔디를 소개해 드립니다.


김민수

'꽃잔디'의 꽃말은 '희생'이라고 합니다.

꽃과 잔디가 결합되어 꽃잔디가 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잔디는 늘 누군가에서 밟히는 입장이잖아요. 그러니 꽃말이 쉽게 이해가 갑니다.

꽃잔디에 관한 전설, 좀 긴 이야기지만 들어보시겠어요?

아주 먼 옛날, 하늘과 땅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란다. 아직은 세상의 질서가 바로 잡히지 않아 모두 제멋대로 살아갔더랬어.

예를 들면 코스모스를 피워야 할텐데 떡하니 장미를 피우고, 사과나무는 신맛이 싫다며 떡하니 감을 맺기도 했고, 하늘도 한 여름에 심술을 부려 눈을 내리기도 했단다.

하나님은 너무너무 걱정이 되었어 그래서 이 혼돈의 세상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한거야.

"해야, 따스한 봄볕을 온 세상에 고루고루 뿌려주렴."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질서가 잡히질 않은 탓인지 갑자기 구름이 나타나 소나기를 퍼부으며 심술을 부렸단다.

해가 화가 나서 구름에게 말했어.

"야, 구름아, 소나기는 여름에 내리는 거라는 걸 몰라. 지금 햇살을 보라구, 봄이야, 봄! 그러니 봄비를 내려야지."

"칫, 웃기고 있네 봄비를 내리든 소나기를 퍼붓든 네가 왜 간섭이야?"

구름은 화가 나서 친구인 번개와 천둥까지 불러와 장대비를 쏟아 부었단다. 얼마나 오래 심술을 부렸는지 강물이 넘치고 둑이 무너졌어. 따스한 햇살에 돋아나던 새싹들도 홍수에 휩쓸려 자취도 없이 떠내려가 버렸지.

하나님은 구름을 불러 잘 타이르고는 봄의 천사를 보내 산야에 꽃을 심고, 나무도 심고 아름답게 가꾸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너무 많이 망가진 세상은 천사 혼자서 예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데.

그래서 봄의 천사는 예쁜 꽃들에게 부탁을 했어.

"애들아, 강물에 휩쓸려 폐허가 된 곳에 가서 꽃을 피워주지 않겠니?"

그러나 예쁘다는 꽃들은 전부 거절을 했어. 그래서 봄의 천사는 한숨을 쉬며 앉아있었지.

그때였어.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봄의 천사님! 저희들에게 그 일을 맡겨주지 않겠어요?"

봄의 천사가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보니 거기에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잔디들이 겸손한 자세로 서 있었단다. 봄의 천사의 허락을 받은 잔디는 들판과 산기슭 어디나 풀과 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이면 푸르게 덮었단다.

너무도 고마운 봄의 천사는 하나님께 잔디에게 선물을 줄 것을 요청했고, 하나님은 잔디의 머리에 예쁜 관을 씌워주셨단다. 그게 바로 꽃잔디야.



이렇게 자연, 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마다의 이야기들이 구전되어 혹은 전설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마다 허투로 지어낸 이야기들이 없고, 우리가 꼭 간직해야할 귀한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마치 이른봄에 소나기가 내려 황폐해진 들녘과도 같습니다. 꽃잔디처럼 '나에게 그 황량한 땅을 푸르게 가꾸어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하고 나서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꽃잔디 같은 마음을 가지면 이 세상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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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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