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66

꿈틀거리는 음모 (4)

등록 2003.12.24 13:30수정 2003.12.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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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비밀이 탄로 나면 그동안 온갖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쌓아 올렸던 명성이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악한 표정을 지은 그는 누가 서찰을 남긴 장본인인지 생각해내려 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웅휘로운 필체로 미루어 서찰을 작성한 사람은 분명 사내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용으로 미루어 부친이나 아우가 작성했어야 한다. 그러나 어찌 죽은 사람이 글을 쓴단 말인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잠시 안절부절 하던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또 하나의 서찰이었다. 그것은 한운거사 초지악이 어떤 인물인지를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여인들의 피눈물 젖은 서찰이었다.

"우와아! 아아아! 어떤 놈이냐? 놈이냐…? 나와라! 나와라…!"

와룡곡 위쪽 낙룡대에서는 연신 고함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고함은 곧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허공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 * *


"이놈! 이 간교한 놈, 어서 사실대로 고하지 못할까?"
"으으윽! 저, 정말입니다요. 제발, 제발 믿어 주십시오."

형틀에 묶인 죄수는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온통 봉두난발이 되어 용모를 전혀 살필 수 없으나 제법 퉁퉁한 몸집을 지닌 사내라는 것만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흥! 여기 물증이 있는데도 네놈을 믿으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자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절레절레 흔들던 죄수는 태사의에 앉은 여인이 흔드는 서책을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으으윽! 그, 그건 소인도 처음 보는…"
"무어라…? 이걸 처음 본다고? 네놈이 줘놓고도 처음 본다고? 흥!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여봐라!"
"예으이!"
"저놈을 매우 쳐라!"
"존명!"
쐐에에에엑!
퍼어억―!
"아아아악!"
쐐에에에에엑!
퍼억―!
"아아악!"

길이 다섯 자 여덟 치, 너비 다섯 치, 두께 팔 푼짜리 중곤(重棍)이 허공으로 한껏 치솟았다가 급전직하를 하면 둔탁한 타육음(打肉音)에 이어 돼지 멱을 따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죄인들을 다스리는 곤장(棍杖)에는 중곤(重棍), 대곤(大棍), 중곤(中棍), 소곤(小棍), 그리고 치도곤(治盜棍)이 있다.

이때 사용하는 곤장은 때리는 부위를 버드나무로 넓적하게 만들었으며, 작은 가시나무 회초리인 태(笞), 큰 가시나무 회초리인 장(杖)보다 훨씬 길고 두꺼웠다.

그 가운데 중곤(重棍)은 신체의 침해와 훼손이 큰, 가장 잔혹한 형구(刑具)로서 죽을 죄를 범한 자에게만 사용하는 것이고 치도곤은 글자 그대로 도둑을 다스릴 때 사용하는 것이다.

국문장에 놓인 형틀에 묶여 있는 자는 선무삼의 가운데 하나인 방조선의 졸개이자 하극상을 꿈꾸던 광견자 금대준이었다.

두 번째 곤장이 내려쳐지자 비명을 지르던 그의 고개는 힘없이 떨구어졌다. 지독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한 것이다.

금대준은 풍채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디 내놔도 빠지지는 않을 정도였다. 하긴 하루 종일 먹고 자리에만 앉아 있다 시피 하던 자이니 바싹 말라 있다면 이상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아랫배와 둔부는 그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자인지를 대변해준다 할 정도로 잘 발달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둔부의 살이 통통하다 할지라도 있는 힘껏 내리쳐지는 중곤을 견디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오늘로서 이런 국문이 사흘째이다. 처음엔 비교적 가벼운 형벌을 가했다. 겁을 주거나, 회초리로 후려치는 정도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해 온 바가 있기에 나름대로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금대준은 이실직고를 하지 않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렇기에 괘씸죄가 추가되어 중죄를 지은 죄수를 다스릴 때나 사용하는 형틀에 묶어놓고 여차하면 물고(物故: 죄수가 죽임을 당하는 일)를 내버리려 묵직한 중곤으로 다스리는 중이었다.

그런 그를 태사의에 앉은 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여인은 무림천자성 형당 당주인 빙화 구연혜였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싸늘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광견자의 간교함에 치가 떨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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