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지 마! 고개 들지 말고 일해!"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31>공장일기<20>

등록 2004.01.15 12:50수정 2004.01.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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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함안 산장호수에서 <남천문학> 세미나를 마치고

함안 산장호수에서 <남천문학> 세미나를 마치고 ⓒ 이종찬

"근데 문학과 관련된 책은 와 없노?"
"그기 아이라 우선 우리들이 사회과학적인 인식의 눈부터 뜨야 할 거 아이가. 그라이 인자부터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던 관념들은 싸그리(깡그리) 버려뿌야 된다카이."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자꾸 이런 거만 공부해 쌓다가 시인이나 작가가 되는 기 아이라 싸움꾼이 되는 기 아인지 모르것다 이 말이다."
"지금 시대는 시인이나 작가가 곧 싸움꾼이 되어야하는 그런 시대라카이."



그때 우리는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철학 에세이> <알기 쉬운 오늘의 한국경제> <우상과 이성> <해방전후사의 인식> <영국의 노동운동사> 같은 그런 책들을 주로 공부했다. 그리고 매달 팸플릿 형식으로 나오던 <말>지를 통해 바깥 세상 돌아가는 실상을 쬐끔씩 엿보았다.

"요즈음 민중문화운동론이 일부 문인, 예술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문화운동을 주로 문학, 예술운동에만 한정짓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민중문화운동은 문학,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그 기초로서 철학 및 사회과학 분야를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마산문화 3집 '머리말' 몇 토막)

하지만 구성원들 중에서는 불만도 제법 있었다. 왜냐하면 문학팀에 모인 대부분 구성원들은 이미 등단을 한 현직 시인이나 작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우리들이 공부하는 책들은 그 당시 당국이 불온서적이라며 금서(禁書)로 낙인 찍은 그런 책들이었다. 게다가 문학예술과 관련된 책은 하우저가 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한 권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책들을 통해 그동안 내가 잘 모르던 여러가지 사회 모순에 대한 인식의 눈을 새롭게 뜰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시가 우리 생활과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현장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뭐어? 내 시가 시가 아이라 유행가 가사 수준에 불과하다꼬? 다음 주에 어디 두고 보자. 니는 울매나 낙서 같은 시로 술술 잘 쓰는지 한번 볼 끼다."
"창작품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성질로 그리 부리모 우짭니꺼? 감정은 절대 금물이라 안 캤심니꺼."


당시 우리 구성원들은 학습이 끝나고 나면 문단 선후배에 관계 없이 매주마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창작품 한 편을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제출된 그 창작품에 대해서는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처럼 가차없는 칼질이 가해졌다. 그 때문에 창작품 토론 시간이 밤 10시를 넘기는 때도 많았다.


a <마산문화> 1집은 책을 서울에서 다 잃어버려서 찾을 수가 없다. 사진은 <마산문화> 3집

<마산문화> 1집은 책을 서울에서 다 잃어버려서 찾을 수가 없다. 사진은 <마산문화> 3집 ⓒ 이종찬

그랬다. 당시 제출하는 창작품에는 창작자의 이름을 적어내지 않게 했다. 그러나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구성원들은 그 작품이 누구의 작품이라는 것을 대충 알고 있었다. 또 구성원들이 제출한 그 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나면 저절로 그 작품을 쓴 주인공이 밝혀졌다.

마산문화 문학팀은 그렇게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 하면서도 모임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물론 구성원 중에는 마산문화 문학팀에서 추구하는 이념과 토론내용에 대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스스로 탈락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또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우리들의 모임을 예의 주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우리 일하는 모습을 사진을 찍듯이 똑같이 담아놓은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나? 이런 기 시라카모(시라면) 나도 쓰것다."
"그기 진짜배기 시다."
"그래. 지는(자신은) 라면조차 끓여먹을 돈이 없어가(없어가지고) 쫄쫄 굶고 있음시로(있으면서), 우째서 '하늘은 맑고 세상은 아름답다' 카는 그런 글로 쓸 수가 있노. 그기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거 아이가."


나 또한 마산문화 문학팀에서 공부한 것을 토대로 <남천문학동인회>의 모임을 공장 간부들 몰래 은밀하게 이끌어 나갔다. 당시 <남천문학> 동인들은 공장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야유회나 세미나를 한다는 핑계로 불모산 깊은 계곡이나 함안의 산장호수 등지에서 주로 만났다.

"내년에 <마산문화>가 나오는데 누구의 작품을 싣는 것이 좋을까?"
"우선 우리 구성원보다는 주변 분들에게 우리 뜻에 걸맞는 그런 작품을 청탁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그 해를 넘기고 이듬 해, 그러니까 1982년도에 마침내 마산의 양심을 대변하는 진보 무크지 <마산문화> 제1집 "겨울언덕에 서서"가 발행되었다. 그리고 <마산문화> 1집에 실린 최순임의 "수출자유지역에서의 하루" 란 소설이 한국문단뿐만 아니라 민중문화운동권에 몸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다.

"고개 들지 마! 고개 들지 말고 일해!"

갑자기 반장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일본인 시라이시 부장이 작업장보다 3미터나 높은 센터에서, 팔장을 끼고 노란 금테 안경 너머로 내려다보고 서 있는 모양이다. 이런 경우 잡담을 하거나 작업 외에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눈에 뜨일 경우, 그 소속 반장은 물론 주임, 계장까지 센터로 불려가서 호된 책임 추궁을 당하기 때문에 모두들 겁을 먹고 있는 거다. 얼마 동안 그렇게 고개도 꼼짝 못하고 손만 움직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최순임, '수출자유지역의 하루' 몇 토막)


이 소설은 당시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열악한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던 '최순임'이란 여성노동자가 쓴, 일종의 르포 같은 소설이었다. '최순임' 이란 이름 또한 '수출자유지역에서의 하루'를 쓴 그 여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산문화 문학팀에서 급히 만들어 낸 필명이었다.

덧붙이는 글 | <계속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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