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 올개도 꾸껀지 맨드나?"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32>국건지

등록 2004.01.19 14:22수정 2004.01.1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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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엿가락처럼 길게 뽑아놓은 가래떡

엿가락처럼 길게 뽑아놓은 가래떡 ⓒ 이종찬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 코 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그 어느 해보다 마음이 더욱 춥고 허전한 것은 웬일일까.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 보아도 예전처럼 그런 설날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다. 게다가 조류독감과 돼지콜레라, 광우병 따위로 푸줏간 앞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허연 김을 모락모락 내며 가래떡을 뽑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가까운 떡방앗간에 가보았지만 가래떡을 뽑는 기계는 멈추어 있다. 그 대신 얼마 전에 뽑아낸 가래떡이 엿가락처럼 나란히 줄을 서 있다. 예전 같으면 아주머니들이 가래떡을 뽑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한창 피우고 있을 때인데.

"옴마!(엄마) 올개(올해)도 꾸껀지(가래떡) 맨드나?"
"그라모 설에 꾸껀지로 안 만들고 운제(언제) 꾸건지로 만들끼고?"
"찰떡도 할끼제?"
"와? 찰떡이 디기(많이) 묵고(먹고) 싶나?"


꾸껀지? 그래. 그 당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래떡을 '꾸껀지'라고 불렀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꾸껀지'는 아마도 '국건지', 즉 ' 국 건데기'의 센 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경상도 사람들의 말에는 '쎄'(혀), '할배'(할아버지)처럼 센 말과 줄임말이 많으니까 말이다.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내가 태어나 살았던 고향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꾸껀지를 빚을 멥쌀을 커다란 고무대야가 민망할 정도로 가득 담았다. 붉으죽죽한 그 고무대야는 우리들이 작은 설날에 소죽 솥에 데운 뜨거운 물을 퍼내 목욕을 할 때 쓰이는 욕조이기도 했다.

"야가(얘가) 야가! 오늘따라 와 이라노?"
"한 주먹만 더."
"생쌀로 그리 많이 묵으모 나중에 배 아푸다카이."



그랬다. 어린 날 먹을 게 별로 없던 우리들은 간식으로 생쌀을 많이 씹어 먹었다. 하지만 생쌀을 너무 많이 씹어먹으면 이도 얼얼한데다 이내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그래서 우리들은 부모님 몰래 생쌀을 후라이팬에 볶아먹기도 했다. 볶은 쌀은 생쌀보다 훨씬 더 고소했고 씹기에도 편했다.

a 가래떡을 뽑기 위해 잘 불려놓은 멥쌀

가래떡을 뽑기 위해 잘 불려놓은 멥쌀 ⓒ 이종찬

그 당시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생쌀을 먹지 못하게 했다. 생쌀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 뿐만 아니라 몸에 기생충이 생긴다고도 했다. 또 생쌀을 많이 먹으면 몸 속에 있는 기생충이 생쌀을 낼름낼름 받아먹고 살이 쪄서 나중에는 우리들 살을 뚫고 몸밖으로 기어 나온다고도 했다.


하지만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호주머니에 몇 줌씩의 생쌀을 집어넣고 양지 바른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서 오도독 오도독 소리를 내며 씹어먹었다. 그러다가 간혹 마당뫼에 모여 저마다 가져온 생쌀을 꺼내 깡통에 집어넣고 도랑물을 약간 부어 고두밥을 해먹기도 했다.

그런데 그 귀한 쌀이 커다란 대야에 가득 담겨 있었으니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특히 물에 불은 그 쌀은 딱딱하지가 않아 먹기에도 아주 편했다. 그래서 마을 아이들은 대부분 꾸껀지를 뽑기 위해 대야에 불리고 있었던 그 쌀을 몇 줌씩 집어 먹었다. 곧 꾸껀지를 한입 가득 먹을 생각을 하면서.

"꾸껀지다아~ 꾸건지가 왔다아~"
"내부터!"
"내부터!"
"야(얘)들이 공부로 꺼꾸로 했나. 너거들 눈에는 옆에 아부지 계시는 기 안 보이나?"


그랬다. 방앗간에서 금방 가져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꾸껀지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말랑말랑한 그 꾸건지에 반드시 참기름을 조금씩 발라 주셨다. 고소한 참기름을 바른 그 꾸껀지는 입에 넣으면 몇 번 씹을 새도 없이 그대로 목구녕으로 넘어갔다.

a 잘 썰어놓은 가래떡

잘 썰어놓은 가래떡 ⓒ 이종찬

"뭘 또 쳐다보고 있노? 내일 아침이모 맛있는 떡국을 배가 터지도록 묵을 낀데."
"딱 한 토막만."
"꾸껀지로 써는 쪽쪽 그리 많이 줏어먹고도 더 묵고 싶나? 아나? 인자 이거만 구워 묵고 일찍 자거라.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른들께 세배도 해야 된께네. 알것제?"


꾸껀지. 그래. 나는 지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꾸껀지를 고소한 참기름에 찍어먹고 싶다. 그리고 어릴 때처럼 딱딱하게 굳은 그 꾸껀지를 벌건 장작불 위에 올려 구워서 먹어보고도 싶다. 하지만 지금은 멥쌀을 불리는 사람도, 방앗간에 가서 줄을 서서 꾸껀지를 뽑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저 시장에 가서 잘 썰어놓은 가래떡 몇 봉지를 사는 사람들 뿐이다.

아, 그때 그 꾸껀지.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나는 그때 그 말랑말랑한 꾸껀지를 볼이 미어 터지도록 씹어먹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꾸껀지는 구경조차 하기도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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