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정이 따다 소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5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오른손 검지 흉터의 비밀

등록 2004.01.15 18:53수정 2004.01.16 10:0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쟁기로 갈아 둔 논 ⓒ 김규환


'소로골'은 응달진 좁은 골짜기로 방촌 올라가는 길이다. 두 마지기 정도 되는 우리 수렁논에서 300여 미터 떨어져 50평도 안 되는 밭가에 소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가을걷이할 때 오가며 봐뒀던 곳이라 한 짐은 넉넉해 보였다.

관련
기사
나무 세 다발 지고 산에서 굴렀습니다

"엄마, 나무하로 가요."
"혼자서?"
"예."
"적당히 해와라."

설 며칠 앞이었다. 집안엔 연기 피우기 싫기도 하거니와 한과 만들려면 비사리(싸리나무의 사투리)를 해와야 한다. 집안의 귀염둥이는 어른들이 무얼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 오늘은 혼자서 멀리 갈 수 없는지라 소로골 밭가로 혼자서 낫을 챙겨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갔다.

a

소나무 ⓒ 김규환


소나무를 보면 아랫부분이 잎이 떨어지고 썩어서 만들어진 삭정이가 있다. 그 삭정이는 나무에 달린 채로 말라서 불을 때면 송진 냄새가 그윽할 정도로 화력이 대단하다. 말릴 필요까지 없다.

'긍내기' 올라가다 언젠가 보았던 주막 터를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면 '소로골'이다. 긍내기가 '웃고 왔다 울며 밥한다'는 곳이었던 반면 소로골은 '울고 왔다 웃으며 밥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좁은 골짜기인데 산과 산이 닿아 있어 오후 3시 반만 넘으면 해가 떨어진다.

점심을 먹자마자 집을 나서 채 5리(10리는 4km)도 걷지 않았는데 길을 따라 비좁은 황량한 들판이 나온다. 군데군데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럽기 그지없다. 그나마 내가 나무하러 간 곳은 양달이라 작은 무 뿌랭이(뿌리의 사투리) 몇 개 파릇파릇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지게를 부려 놓고 나무 근처로 갔다. 활엽수 잡목(雜木)은 건드리지 않았다.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른 짝다리(삭정이의 사투리)를 따서 가기로 다짐한 바 낮은 나무에서 먼저 베고 차츰 높은 나무에 올라 나뭇가지를 쳐내야 한다.

a

명감나무-청미래 ⓒ 김규환


손바닥 엎어놓은 듯 소나무 가지가 일정하게 약간 구부러져 있는 벤 나무를 차곡차곡 포개나갔다. 나무에 오르지 않고도 딸 수 있는 양은 많지 않았다. 반 다발쯤 되자 흉고직경(胸高直徑: 1.5m 가슴 높이의 지름)이 20cm 되고 높이가 18m 정도 되는 아름드리 소나무에 기어올랐다.

아래쪽 5m 지점까지는 거북 등처럼 쫙쫙 갈라진 딱딱한 껍질만 보일 뿐 잔가지 하나 없어 오르는데 여간 힘겹지가 않다. 낫을 든 채 전봇대처럼 미끄러운 나무에 찰삭 달라붙어 발끝으로 의지하고 손을 조금씩 옮아가며 기어오른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이태 전 땄던 가지를 만나자 발을 올리니 조금은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이제 한 마디만 더 올라가면 된다. 발로 의지하고 손으로 붙들고 불안하게 매달린 채 가지에 아버지 무쇠낫을 힘껏 내리쳤다. 말이 낫이지 평소 내가 갖고 다니던 낫보다 무게는 세 배, 두께마저 두 배 이상이 되는 거대한 낫이었다.

"착착" "탁탁" 손잡이 부분만 남기고 온 힘을 다해 대여섯 번 내리치면 "탁"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한 층에서 너덧 개밖에 벨 수 없다. 빙 둘러서 한 마디를 마치고 위로 올라 끝가지가 아직 살아 파릇파릇한 가지도 따기로 했다. 인근에 삭정이 딸만한 나무가 많지 않으니 솔잎 끝 부분만 잘라버리면 되는 것이다.

a

'짝다리'라 불렀던 삭정이 달린 소나무 ⓒ 김규환


한 나무 두 나무를 한 군데 모아 두고 세 번 째 나무에 올랐다. 외따로 떨어지고 물가여서 그런지 다른 나무보다 훨씬 굵고 실하게 자랐다. '그래! 저 나무만 하면 한 다발은 너끈히 나오겠구나.' 싶게 3층으로 마른나무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오지게 좋았다.

작은아이가 품어 한 아름 이상이나 되는 나무 줄기를 낫으로 툭툭 찍으며 올랐다. 한 번 미끄러져 내린 탓에 손바닥이 발갛게 패이고 떨어진 뒤 찔린 명감나무(청미래넝쿨의 사투리) 가시와 찬바람가시에 찔려 아려오고 피가 조금 씩 흘러 나왔다.

'오메 아푼거. 근다고 내가 포기할 것 같으냐.'
'쬐까만 지달려. 금세 올라가서 따 줄 텡께!'

나무를 다시 요모조모 살펴 약간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으로 오르기로 했다. 간신히 발 디딜 가지 끝에 다다랐다. 고개를 꼿꼿이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낫질을 해댔다. 나무 자체가 굵어 가지도 내 팔뚝만큼 컸다. 예닐곱 번이나 열 서너 번 쳐주니 "찌직" 소리와 바람을 일으키며 땅에 "툭!" 떨어진다.

네 개를 마치고 어정쩡한 불안한 자세로 반대편 하나를 마저 하면 다음 층으로 올라서 하면 되었다. 워낙 큰 나무라 오른 손에 잡은 상태에서는 더 이상 하기가 힘들다.

왼손에 낫을 잡고 두 번 째 "툭툭" 내리 찍던 찰나 "앗야!" 나무를 잡고 있던 오른손 검지 맨 위쪽-주먹을 쥐면 제일 오똑 솟은 부분 뼈에 낫이 박혔다. 도끼만큼 큰 낫이 서울 올라간 누나가 언젠가 주었던 미끈미끈하고 뾰족한 숙녀용 장갑을 여지없이 가격한 것이다.

a

오른손에 2센티나 자국이 나 있습니다. 내 몸은 꼴 베느라 나무 하느라 성한 데가 없답니다. ⓒ 김규환



"위메, 좆같은 거."

'어쩐다지?' 궁리를 해봐도 도리가 없었다. 나무와 한 몸이 되기로 했다. 낫을 살짝 내려 던져 놓고는 더 세게 나무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맨손이던 왼손을 오른손 검지부분에 갖다대고 그냥 나무에 매달린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차차 온 몸에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지릿지릿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염없이 피가 멎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5분이나 지났을까. 아니 50분이었는지 모른다. 뼈를 다쳤어도 아픔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 긴 고통을 감수하고 손을 약간 떼어보니 하얀 뼈가 "히히히" 웃고 있다.

"지미 씨벌"

침을 한번 내리 뱉고는 조심조심 내려왔다. 그 큰 나무가 미운 건지, 낫이 밉던지, 실수한 내가 야속한지 그 상황에서 욕이 나오지 않고 배기겠는가. 주섬주섬 나무를 챙겨보니 계획한 양의 절반밖에 안되었다. 그로부터 하던 일을 작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해가 떨어진 신작로를 따라 터덜터덜 걸었다.

그 삭정이로 한과 굽는 동안 불을 때드리며 사독(邪毒)하지 않게 쬐었다. 아직도 내 오른쪽 손엔 2cm나 되는 훈장, 흉터가 어릴 적 살았던 내 이력을 말하고 있다.

a

불 때는 걸 도우면서 손을 독이 안들게 소독하고 아까쟁끼 바르고 불에 몇일간 쬐었는지 모릅니다. ⓒ 김규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마을회관에 나타난 뱀, 그때 들어온 집배원이 한 의외의 대처
  3. 3 삼성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영상... 한국은 큰일 났다
  4. 4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5. 5 "청산가리 6200배 독극물""한화진 환경부장관은 확신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