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보따리학교 아이들의 자기 드러내기

연작 소감문에서 나타나는 아이들의 생활과 관심들

등록 2004.01.21 06:13수정 2004.01.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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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학생들의 연작 소감문들


새해에 보따리학교를 열었는데 이번에 보게 되는 가장 새로운 점은 보따리학교 아이들이 쓰는 소감문이다. 이 소감문은 하나같이 다 연작형식을 갖추고서 짧게는 2편에서 길게는 5편까지 이어져 있다. 경쟁적으로 올라오던 연작 소감문이 다 올라왔는지 이제야 뜸해졌다.

소감문을 올리는 아이들의 글은 다른 아이들을 자극(?) 하여 연이어 연작 소감문이 올라왔다. ‘작은풀(초등 3)’은 권왕(초등 6)이나 몽애(초등 6) 등 언니 오빠들의 글쓰기가 그렇게 부러웠나보다.

고작 10줄도 안되는 글을 올리면서 거창하게 ‘1부’ 라고 적었다. 2부는 어떤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을까 싶었는데 2부는 고작 일곱 줄이 올라왔다. 소감문 쓰기가 보따리학교에 있어서만큼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길동무] 참석자 전체가 함께 찍은 사진
[길동무] 참석자 전체가 함께 찍은 사진전희식
보따리학교를 앞두고 지난 달에 나는 어른들을 향해서 ‘기록을 남기자’고 제안을 했는데 정작 보따리학교에 대한 ‘기록’은 아이들에 의해 완성되고 있었다. 그들의 글을 보면 영상물을 보듯이 보따리학교의 모습이 보인다. 한뫼(초등 6), 권왕, 몽애, 작은풀, 정효(중 1)가 쓴 글들은 한 피사체를 여러 각도에서 비쳐 주는 효과까지 준다.

강원도 삼척시 호산에 내린 이들이 목적지인 초미네(작은풀)집까지 가는 길이 무척 멀고 피곤했나 보다. 전주에서 4시간 반 걸려 강릉에 도착하고, 다시 2시간 걸려 호산에 왔는데 다시 30분을 걸어서 가다가 비로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10킬로미터가 넘는 산길이라는 걸 알고는 택시를 타기로 하는데 이 대목이 모든 아이들의 글에 등장한다.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서로 다른 감각으로 묘사되어 있는 걸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가 않다.


한뫼의 글에는 재미있는 비유가 나온다.

강릉까지 4시간 반. 다시 호산까지 두 시간. 부산스레 떨어대던 수다도 사그라들고 표정은 피곤에 지쳐 일그러지다가 나중엔 ‘표정에서 구린내가 났다’고 했다.


원기왕성하고 활달한 권왕은 오죽 배가 고팠으면 초미네 닭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전화통화를 하며 겨우겨우 초미네 집에 당도 했습니다. 초미 집 마당에는 닭 두 마리가 맛있게 서있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표현들은 그들의 글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다. 보따리학교가 무척 재미있었고 또 재미있게 추억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뫼가 처음 권왕을 만나는 순간은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사람의 망상에 한계가 없구나“라고.
서로 동갑나기인 몽애에게서 들은 권왕에 대한 인상이 실제 만나서 보니 전혀 딴판이었던 것을 이렇게 묘사 했는데 이는 보따리학교 3일 만에 동갑인 권왕과 가까워진 것의 이무로운 표현으로 보인다.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이 아이들이 각각 무엇을 더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가려 보는 재미다. 서로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자신들의 관심분야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호산에 도착한 권왕이는 크게 실망하는데 그 이유가 난데없다.

“호산도착. 앗, 그런데 이게 웬 낭패일까 호산에는 눈이 없었다. 난 눈싸움 할 줄 알고 여벌 옷 챙겨왔는데. 윽 하늘도 무심 하시지."

이들이 일곱 시간 내지는 여덟 시간이나 걸려 이 농가를 찾아 오면서 얼마나 피곤해 했으면 손님(!)을 맞는 작은풀은 이렇게 기억 해낸다.

"첫째 날은 모두 오느라고 힘들어서 뻗었다."

나는 작은풀의 이 글귀를 읽으면서 첫날 뻗어버린 그들의 모습이 이보다 더 생생할까 싶었다.

첫날 소개시간에 모든 사람들을 웃겼던 정효 글을 빼 놓을 수 없다.
“여기에 오면 서로 사상이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던 정효. 그 정효는 ‘여섯고개 이야기 마당’에서 동호회를 만든다고 하니까 크게 반긴다. 또 ‘하늘제사’를 모시러 당산나무 아래로 가는 날 한울생협 탑차 짐간에 타고 가면서 '한울생협 차량유괴'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즉석 촌극을 연출한다.

비록 권왕, 한뫼, 몽애들과 한 살 차이지만 톡톡히 형 노릇하는 차분하고 영리한 정효의 글은 아주 다른 맛을 보여준다.

전남 곡성군 두계면 섬진강 강변으로 함께 자전거 타러 가서 트럭에서 내리는 모습
전남 곡성군 두계면 섬진강 강변으로 함께 자전거 타러 가서 트럭에서 내리는 모습전희식
이들의 연작소감문을 보자면 초미네 집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생생하게 엿보인다. 아니,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라기보다도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함께 하는지가 잘 보인다.

보따리학교에서 가장 고약한 것을 이르는 ‘핵폐기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풀빵이 있었다. 초미네가 주로 생산하는 효소를 걸러내고서 팥 대신 호박효소를 넣고 만들었나보다. 권왕은 대뜸 ‘핵폐기장 냄새’라고 했다. 머루님(초미 엄마)는 자연음식을 아주 실험적으로 시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 눈에는.

수제비도 우리들이 어릴 때 누구나 먹었을 썩은 감자가루로 만들어 줬나보다. 윳놀이에서 진 농부(18세 홈스쿨)네 팀이 만들었는데 한뫼의 표현에 의하면 수제비에서 닭똥냄새가 풍겼다고 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딱 맞는 말이다.

감자 썩은 것으로 만든 수제비에서는 쿰쿰한 닭똥 냄새가 난다. 이런 진귀한 음식을 처음 대하는 촌놈(!)들이라 아마 다들 코를 벌렁거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했는가 보다.

얼씨구나 하고 밥 당번이었던 농부네 팀들은 히죽히죽 능글맞게 웃어대고 있었다고 한다. 역시 한뫼 표현에는 "냄새는 닭똥 냄새요 맛은 개똥 맛“이 났다고 한다. 좀 더 들어보자.

"환상적이였다. 사형수한테 사약대신 주면 딱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애가 이튿날 아침 당번이어서 제 시간에 못 일어 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처럼 식사 당번을 정해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하게 한 것도 참 보기 좋은 초미네 가풍이지만 그보다 밥상에서의 기본기도 잘 보여 준 것 같다.

체격도 좋고 원기왕성한 권왕의 기록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다.

"앗.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황새아저씨(초미아빠)께서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으셔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잘 차려진 밥상 반찬은 콩 자반,김치, 멸치, 짠지,밥, 김, 먹을 준비는 다되어있는데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문 같았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며 발작증세를 일으 킬 것 같았지만....”

이들은 머루네 집까지 가는 버스 속에서는 만화책 이름대기, 만화영화 이름대기, 끝말잇기 등을 하면서 갔고 도착해서는 회의, 고스톱, 만화보기, 경운기타기, 노래방, 바닷가 외식, 유과만들기, 땔감 나무 옮기기, 돼지고기 구워먹기 등을 한 것으로 나온다.

이들 글에서는 주로 어떻게 놀았고 어떻게 장난쳤고 무슨 일들을 했는지가 나오지만 정효 글에서는 ‘이야기 여섯마당’ 얘기도 잘 나오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폭력성을 다룬 영화 ‘볼링 포 콜롬바인’ 감상 이야기도 나오는 걸 봐서는 글 쓰는 아이들의 마음과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 뭔가에서 차이가 잘 드러나고 있다.

몽애가 쓴 두 번째 글 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참! 왜 어른들은 안 올리세요? 어른들도 올리셔야죠! "

그렇다. 적어도 어른들은 ‘여섯고개 이야기 마당’에서 운영위원회을 구성 한 이야기, 강화 마리학교에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기로 하고 100만원이라는 길동무 현재의 전 재산을 내 놓기로 한 결정 등을 얘기하고 사이트 개편에 대한 이야기와 막걸리리장님이 풀어 놓으신 “생태운동에 나타나는 반 생명성”이라는 이야기도 소개해야 하는데 아무도 글을 올리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은 남의 주장이나 기분을 절대 침해하지 않는다.
상대의 글에 등장하는 자기의 모습에 대해 해명하거나 항의하는 따위의 헛된 짓은 아무도 않는다. 그냥 가볍게 넘어간다. 오로지 자기의 글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단 한 가지.

혹시나 혹시나 기다리던 대목이 있었다. 사실에 대한 내용은 충실한데 비해 소감과 느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저러 해서 어땠는지? 자신의 느낌을 깊이 감지 해 내고 드러내는 글이 연작의 마지막에 올라오길 기대 했다. 어른들의 글이 ‘사실’은 적고 해석과 주장이 많아서 탈이라면 이 아이들은 그 반대인 셈이다. 전자보다는 백번 낫다.

그토록 재미있고 추억어린 보따리학교를 마치고 1주일 쯤 지난 지금 어떤 뜻을 새기로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무슨 의미로 그들에게 남겨지는 지가.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여러 날 지난 그때의 흥겨움과 들뜸이 넘쳐서 글의 분위기마저 압도하고 있는 모습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연작 기록문도 어쩌면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주까지 내 트럭을 타고 온 정효, 권왕, 한뫼를 나는 전주교대 앞으로 데리고 가서 중국집에 들어갔다. 단식 열 이틀째인 나는 맹물만 한 컵 마시고 그들은 군만두에 짜장을 한 그릇씩 먹었다.

내가 진지하게 당부를 했다. 후기를 쓰라고. 내가 밥값 다 낼테니 꼭 후기를 쓰라고. 그것도 오늘 바로 쓰라고 했다. 졸려서 다 못 쓰면 다음 얘기는 다음날 써도 좋으니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오늘 꼭 쓰라고 했더니 다들 떼를 지어 다짐을 했다.

혼자 하는 다짐보다 떼를 지어 하는 다짐은 이렇게 힘이 있다.
실행의 힘이.

덧붙이는 글 | 1월 5일 부터 11일까지 [길동무] 보따리학교와 전체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 모임 중 강원도 삼척의 한 농가에 참석한 아이들의 소감문에 대한 소개 입니다.

덧붙이는 글 1월 5일 부터 11일까지 [길동무] 보따리학교와 전체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 모임 중 강원도 삼척의 한 농가에 참석한 아이들의 소감문에 대한 소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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