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자아를 찾는 여행입니다

몸과 마음을 비우는 건강한 삶의 회복

등록 2004.01.08 04:56수정 2004.01.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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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로 단식 9일째다. 원래 7일 동안만 단식을 하려고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성과가 좋아 며칠 더하고 있는 것이다. 입간판이나 대자보 한 장 없이 시작한 단식이기에 격려해 주는 사람도,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다. 당연히 만류하는 사람도 없다.

단식을 끝내는 것 역시 어떤 명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의 깊게 몸의 변화나 반응을 살펴보다가 됐다 싶을 때 중단하면 그 뿐이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전희식
단식 5일째 되던 날이었다. 새벽에 잠을 깨고 보니 목이 팍팍하고 가래가 가득 끼어 있었다. 어쩌다 담배를 피우고 잔 날과 같은 그런 상태였다. 최근 한 달 사이에는 담배 한 개비도 피운 적이 없는데 '왜 이럴까'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또 바로 전날 새벽에는 과음을 하고 취한 채 잠들었다가 깨어날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식이었다. 이번 단식은 내 몸에 남겨진 흔적들이 하나씩 되살아나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진행되었다.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처럼 나를 자꾸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끌고 갔다. 그 지점에는 내 몸의 아우성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떤 날은 현기증이 심하게 나서 한나절을 숙소에서 나오지 못하고 누워 있기도 했었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요동이 심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단식을 열 번도 더해 봤지만 이번처럼 역동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는 처음이다.

호전 반응이 격렬하게 나타났던 만큼 엿새째부터 몸이나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고 있다. 기운이 잘 조절되고 머리는 시릴 정도로 맑다. 몸은 새털처럼 가볍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번 단식이 이렇게 진행되는 연유가 뭘까' 생각해 보는데 아무래도 단식을 시작할 때 결연한 내 마음가짐이 첫째요, 둘째는 70여 명이 공동 단식을 하는 데 따른 상승 효과 때문으로 여겨진다.


매년 새해를 맞으면서 1주일씩 하는 '평화의 마을 영성공동단식'은 이번이 열두 번째라 한다. 나는 처음으로 이런 집단 단식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자못 숙연했다. 이왕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을 갖출진대 망년회 자리에서 술잔이나 부딪히며 큰소리 치는 그런 새해 다짐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계룡산을 종주할 때 갑사 요사채 처마에 달린 메주들
계룡산을 종주할 때 갑사 요사채 처마에 달린 메주들전희식
뿐만 아니라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작심 3일'용 다짐을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일년에 꼭 한번 맞이하는 새해 첫날을 맨송맨송하게 보내기도 아쉬웠다.


작년 마지막 날, 단식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대전의 '장수마을'로 가면서 나는 영원히 이별하고 싶은 내 습관과 내 행위와 내 속 살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이도 이쯤 되었으니 이제 그만 해야지 싶은 것들이 많이 떠올랐다. 절집에서 말하는 '탐(貪) 진(瞋) 치(癡)의 삼독(三毒)'과 내년에는 더 인연 맺지 않고 살아야지 다짐했다.

처음부터 나는 섬세하게 몸의 변화를 살피고 기록하였다. 몸과의 깊은 대화를 이번 단식의 화두로 삼았던 것이다. 영성 지도자이신 김완수 목사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진행하는 몸과 마음풀기 시간에는 팔과 다리를 내 마음으로 들어 올리고 비틀고 하였다.

근육을 가지고 팔다리를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근육은 놔두고 마음의 힘으로 팔다리를 움직였다. 효소를 마시면서는 효소액을 입으로가 아니라 배로 마셨다. 배로 마시다가 단전으로 마시기도 하였다. 어느 인디언 추장의 말처럼 생각도 '머리'가 아니라 '배'로 해 보았다.

전남 보성군 벌교 앞바다에 있는 '스토리하우스'를 방문하여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는 모습
전남 보성군 벌교 앞바다에 있는 '스토리하우스'를 방문하여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는 모습전희식
일출을 보면서 기 행공을 할 때는 햇살을 당겨 와 식도와 위는 물론 비장과 소장에도 골고루 비춰 주는 식으로 몸의 내부기관 하나 하나까지 살펴보고, 어루만지고 하였다.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르는데도 멀쩡하게 잘 놀던 아이가 엄마한테 와서 갑자기 울음보를 터뜨리듯, 내 호전 반응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살핌을 제대로 받자 몸의 곳곳에서 참았던 하소연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는 마음을 비우러 산에 간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치와 단결을 위해 엠티(MT)를 가고 포럼을 개최한다. 그러나 단식을 해 본 사람들은 마음 비우는데, 단식보다 좋은 게 없다는 걸 잘 안다. 단식을 통해 분별과 욕심을 없앰으로 해서 진정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는 걸 안다.

특히 이번 단식에는 시대의 큰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분들이 와서 귀한 말씀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함석헌 선생의 제자인 김복관옹과 목영주 선생도 오셨고 풀무학교 오영환 이사장도 다녀가셨다. '풍경소리'를 발행하는 김민해 목사는 이틀 동안 영적 나눔을 지도했다.

김민해 목사는 뭐든지 항상 '그분'께 물어 보고 하라고 했다. '그분'의 답변은 내가 참으로 편안한 쪽으로 들려주신다고 했다. 내 맘대로 하려고만 하면, 불화와 다툼이 생기며 이것은 필히 몸을 상하게 한다고 했다.

대전 안영동의 장수마을 전경
대전 안영동의 장수마을 전경전희식
명상 춤도 이틀 동안 추었다. 단식이 효과적으로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하는 묘약들이었다.

날이 가면서 자연스레 단식 참가자들의 면면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성격의 모임에 사회 활동가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싶었는데, 이번 모임은 대부분 각 분야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었다. 대개가 삶을 생태적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는 분들이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십여 년 전에는 이른바 운동권 사람들의 참여가 가뭄에 콩 나듯 했는데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다들 자아를 찾아 떠나온 여행객들이라 생각된다. 우리 운동의 방향과 목표가 어디로 선회하고 있는지 암시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동학에서 말하는 '인(人)의 혁명'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검소하고 느리고 게으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 공동체와 생태와 귀농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소유보다 존재를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먹는 재미와 쾌락을 선뜻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텅 빈 충만이 뭔지 단단히 맛 들린 사람들. 내가 단식을 연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준 사람들이다.

덧붙이는 글 | 단식에 대한 참고 될만한 자료는 제 홈페이지에 몇 편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단식에 대한 참고 될만한 자료는 제 홈페이지에 몇 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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