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 두계면 섬진강 강변으로 함께 자전거 타러 가서 트럭에서 내리는 모습전희식
이들의 연작소감문을 보자면 초미네 집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생생하게 엿보인다. 아니,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라기보다도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함께 하는지가 잘 보인다.
보따리학교에서 가장 고약한 것을 이르는 ‘핵폐기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풀빵이 있었다. 초미네가 주로 생산하는 효소를 걸러내고서 팥 대신 호박효소를 넣고 만들었나보다. 권왕은 대뜸 ‘핵폐기장 냄새’라고 했다. 머루님(초미 엄마)는 자연음식을 아주 실험적으로 시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 눈에는.
수제비도 우리들이 어릴 때 누구나 먹었을 썩은 감자가루로 만들어 줬나보다. 윳놀이에서 진 농부(18세 홈스쿨)네 팀이 만들었는데 한뫼의 표현에 의하면 수제비에서 닭똥냄새가 풍겼다고 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딱 맞는 말이다.
감자 썩은 것으로 만든 수제비에서는 쿰쿰한 닭똥 냄새가 난다. 이런 진귀한 음식을 처음 대하는 촌놈(!)들이라 아마 다들 코를 벌렁거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했는가 보다.
얼씨구나 하고 밥 당번이었던 농부네 팀들은 히죽히죽 능글맞게 웃어대고 있었다고 한다. 역시 한뫼 표현에는 "냄새는 닭똥 냄새요 맛은 개똥 맛“이 났다고 한다. 좀 더 들어보자.
"환상적이였다. 사형수한테 사약대신 주면 딱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애가 이튿날 아침 당번이어서 제 시간에 못 일어 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처럼 식사 당번을 정해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하게 한 것도 참 보기 좋은 초미네 가풍이지만 그보다 밥상에서의 기본기도 잘 보여 준 것 같다.
체격도 좋고 원기왕성한 권왕의 기록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다.
"앗.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황새아저씨(초미아빠)께서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으셔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잘 차려진 밥상 반찬은 콩 자반,김치, 멸치, 짠지,밥, 김, 먹을 준비는 다되어있는데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문 같았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며 발작증세를 일으 킬 것 같았지만....”
이들은 머루네 집까지 가는 버스 속에서는 만화책 이름대기, 만화영화 이름대기, 끝말잇기 등을 하면서 갔고 도착해서는 회의, 고스톱, 만화보기, 경운기타기, 노래방, 바닷가 외식, 유과만들기, 땔감 나무 옮기기, 돼지고기 구워먹기 등을 한 것으로 나온다.
이들 글에서는 주로 어떻게 놀았고 어떻게 장난쳤고 무슨 일들을 했는지가 나오지만 정효 글에서는 ‘이야기 여섯마당’ 얘기도 잘 나오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폭력성을 다룬 영화 ‘볼링 포 콜롬바인’ 감상 이야기도 나오는 걸 봐서는 글 쓰는 아이들의 마음과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 뭔가에서 차이가 잘 드러나고 있다.
몽애가 쓴 두 번째 글 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참! 왜 어른들은 안 올리세요? 어른들도 올리셔야죠! "
그렇다. 적어도 어른들은 ‘여섯고개 이야기 마당’에서 운영위원회을 구성 한 이야기, 강화 마리학교에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기로 하고 100만원이라는 길동무 현재의 전 재산을 내 놓기로 한 결정 등을 얘기하고 사이트 개편에 대한 이야기와 막걸리리장님이 풀어 놓으신 “생태운동에 나타나는 반 생명성”이라는 이야기도 소개해야 하는데 아무도 글을 올리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은 남의 주장이나 기분을 절대 침해하지 않는다.
상대의 글에 등장하는 자기의 모습에 대해 해명하거나 항의하는 따위의 헛된 짓은 아무도 않는다. 그냥 가볍게 넘어간다. 오로지 자기의 글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단 한 가지.
혹시나 혹시나 기다리던 대목이 있었다. 사실에 대한 내용은 충실한데 비해 소감과 느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저러 해서 어땠는지? 자신의 느낌을 깊이 감지 해 내고 드러내는 글이 연작의 마지막에 올라오길 기대 했다. 어른들의 글이 ‘사실’은 적고 해석과 주장이 많아서 탈이라면 이 아이들은 그 반대인 셈이다. 전자보다는 백번 낫다.
그토록 재미있고 추억어린 보따리학교를 마치고 1주일 쯤 지난 지금 어떤 뜻을 새기로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무슨 의미로 그들에게 남겨지는 지가.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여러 날 지난 그때의 흥겨움과 들뜸이 넘쳐서 글의 분위기마저 압도하고 있는 모습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연작 기록문도 어쩌면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주까지 내 트럭을 타고 온 정효, 권왕, 한뫼를 나는 전주교대 앞으로 데리고 가서 중국집에 들어갔다. 단식 열 이틀째인 나는 맹물만 한 컵 마시고 그들은 군만두에 짜장을 한 그릇씩 먹었다.
내가 진지하게 당부를 했다. 후기를 쓰라고. 내가 밥값 다 낼테니 꼭 후기를 쓰라고. 그것도 오늘 바로 쓰라고 했다. 졸려서 다 못 쓰면 다음 얘기는 다음날 써도 좋으니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오늘 꼭 쓰라고 했더니 다들 떼를 지어 다짐을 했다.
혼자 하는 다짐보다 떼를 지어 하는 다짐은 이렇게 힘이 있다.
실행의 힘이.
덧붙이는 글 | 1월 5일 부터 11일까지 [길동무] 보따리학교와 전체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 모임 중 강원도 삼척의 한 농가에 참석한 아이들의 소감문에 대한 소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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