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공들의 춘지에(春節) 귀성전쟁

춘지에 기간에도 심화되는 빈부 격차

등록 2004.01.25 14:29수정 2004.01.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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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지에를 앞두고 하루 평균 3000만 명씩, 총 5억여 명이 귀성 전쟁을 치른다.

매표소마다 길게 늘어선 장사진과 그 사이를 오가는 암표 상들, 춘지에 기간 동안 기차표 값은 보통 15-20% 오른다.

a 베이징역,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베이징역,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 김대오

암표의 경우 가는 거리에 따라서 최소 50위엔(8천원 정도)에서 보통 100위엔 정도의 웃돈을 주어야만 한다. 귀성객의 절반이상이 농민인데 이렇게 값이 오른 교통비는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는 그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으며 실제로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춘지에 기간 동안 평균 교통비가 2000위엔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민공(民工)들의 두 세달 임금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암표 상들의 기차표 암거래를 근절시키기 위해 선전시에서는 기차표 예매시 신분증번호를 등록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실명제 매표에 대해 83.6%의 네티즌이 찬성하여 암표 단속이 강화되어 예년에 비해 암표상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암표에 고통 받고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a 짐을 가득 들고 가는 한 민공의 모습

짐을 가득 들고 가는 한 민공의 모습 ⓒ 김대오

영하 12도의 혹한에 바람까지 매섭게 부는 베이징역에는 막바지 귀성을 서두르는 발길이 이어졌다. 대합실을 가득 메운 귀성객들 중에는 이불보따리까지 둘러 맨 민공(民工)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고향이 쓰촨(四川)인 한 민공은 숙소를 제공받던 작업장의 일이 춘지에 전에 끝나 고향으로 가야 하는데, 제날에 맞는 기차표를 끊지 못해 할 수 없이 3일 후의 기차표를 샀다고 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 여관이나 다른 숙소를 잡지 않고 베이징역에서 이틀째 노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산(唐山)으로 간다는 한 직장여성은 "기차로 6시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고향인데도 늘 일 때문에 바빠 1년 넘도록 집에 가보지 못했다"며 몸이 불편한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하였다.


귀성전쟁이 치열해지면서 트럭이나 심지어는 냉장차에 수십 명이 함께 숨어서 귀성하는 사례도 있으며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춘지에 특별운송 기간 동안 보통 5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번 설은 유난히 날씨가 추워서 노천에서 자다가 동사한 사례도 수 건에 달하고 있다.

a 사스 예방을 위해 기차역에 설치된 체온 측정기

사스 예방을 위해 기차역에 설치된 체온 측정기 ⓒ 김대오

그러나 이번 춘지에에 중국 당국을 가장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사스의 확산에 대한 우려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춘지에 기간의 사스 확산 가능성을 누차 경고했고, 중국 당국도 검역과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린(吉林)에서는 귀향하는 모든 민공에 대해서 체온측정과 신체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과연 작년의 전철을 밟지 않고 올해는 효과적으로 사스를 잠재울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대다수가 귀성하여 고향에서 가족들과 설을 보내고 있지만 10%의 민공들은 여전히 귀성하지 못하고 각자의 근무처에서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톈진(天津) 한 공장에서 일하는 궤이저우(貴州) 출신의 위(余)씨는 춘지에 기간은 기차표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공장에서 초과근무를 하고 춘지에가 끝나고 고향에 가는 것이 낫다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춘지에는 3억 민공들에게 1년 중의 유일한 휴가이며 그 의미 또한 각별하다. 그러나 민공들의 체불 임금이 3000억 위엔에 달하고 있어 실제로 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민공들도 많고 춘지에에도 귀향하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늘어났다. 춘지에 기간에 일어나는 강력사건들의 대부분은 이런 민공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라고 한다.

춘지에 전후한 1달 여간 유통과 여행 등의 수요가 급증하여 무려 5조7000억위안(826조원)대의 소비가 이뤄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13조위안의 44%에 달하는 것으로 춘지에의 경제적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8억에 달하는 농민들은 그 춘지에의 거대한 축제에서 여전히 소외되고 있으며 그 문화적 차이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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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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