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설 어떻게 지냈나

전통 문화 시장 먀오훼이

등록 2004.01.30 14:40수정 2004.01.3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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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디탄공원에서 콩주를 파는 사람들이 새해 인사를 건넨다

디탄공원에서 콩주를 파는 사람들이 새해 인사를 건넨다 ⓒ 김대오

중국인들은 일년 열두 달 중에서 한 달은 설을 위해 보내는 것 같다. 설날이 되기 전부터 연휴를 만들기 위해 토요일, 일요일 미리 앞당겨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맞는 설 연휴는 최소 일주일에서 길게는 20일이 넘는다.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연중 무휴로 일하는 중국의 노동자들에게 설날의 의미는 그래서 더욱 각별하며 삶의 커다란 쉼표이자 활력소가 된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프랑스, 영국, 필리핀에서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는데 중국의 언론들은 이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제고된 때문이라며 한껏 고무되어 떠들썩하게 보도하기도 하였다.

a 설 먀오훼이가 개최되는 디탄공원의 입구

설 먀오훼이가 개최되는 디탄공원의 입구 ⓒ 김대오

중국인들은 설 연휴를 어떻게 보냈을까? 중국 최대의 인터넷 사이트 '시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번 설에 고향을 찾아가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는 응답자는 64.9%, 혼자 타지에서 설을 보냈다는 응답자는 14.1%, 초과근무 등으로 설 연휴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는 응답자는 13.9%, 해외 및 국내 여행을 했다는 응답자는 7.1%로 나타났다.

또 가정에서 어떤 설날 풍습을 실제로 행하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세뱃돈 주고받기가 64.7%로 가장 많았으며 섣달 그믐밤과 새해 아침에 만두 먹기가 59.7%, 폭죽 터트리기가 50.1%, 대문에 대련 써 붙이기가 48.6%, 기타가 13.2%, 먀오훼이(廟會) 참관이 8.9%를 차지했다.

설 연휴 저녁 TV 특집프로그램인 설날 완훼이(晩會)는 10억 이상의 중국인이 시청했다는 예전의 절대적 영향력에 비해 최근에는 조금씩 선호도가 낮아지는 추세로 응답자의 56.7%가 보았다고 대답했다.

반면에 설 대할인 기간을 이용하여 쇼핑을 하거나 해외나 외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경제적 필요에 의해 설 연휴기간에도 계속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a 붉은 탕후루와 연등이 어우러진 모습

붉은 탕후루와 연등이 어우러진 모습 ⓒ 김대오

설날에 각 공원 등지에서 생겨나는 독특한 전통 문화 장터인 먀오훼이는 쇼핑을 하면서 전통 문화를 맛볼 수 있어 많은 중국인들이 설날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서 찾고 있다.

베이징의 디탄 공원에서는 음력 섣달 그믐에서 초이레까지 8일간 먀오훼이 장터가 열렸는데 하루에 10만 명 이상이 찾아 설 연휴 동안 베이징 시민 약 100만여 명이 이곳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크고 작은 먀오훼이가 베이징에서만 10여 곳에서 열리고 있다. 먀오훼이는 원래 불교와 도교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종교행사였으나 두 종교의 신도 경쟁 과정에서 오락성과 대중성이 가미되어 지금의 종합 문화 장터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a 유리 공예 기술을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

유리 공예 기술을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 ⓒ 김대오

작년 사스의 악몽을 기억하는 중국인들은 올해의 가장 큰 소망으로 ‘건강’을 꼽고 있다. 그래서 올해 먀오훼이에서는 팔씨름, 암벽 타기, 태극권 대회처럼 건강과 관련한 행사가 많았다. 이밖에도 전통적인 사자춤과 그림자 극, 각종 서커스, 사교댄스, 무술 시범 같은 풍성한 볼거리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붉은 등과 붉은 벽화 등 온통 붉은 색으로 장식된 디탄 공원은 공원 전체가 거대한 전통 문화 시연장으로 변모하였다. 유리를 녹여 공예작품을 만들고 풀잎으로 메뚜기, 사마귀 등 각종 곤충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붉은 종이를 가위로 잘라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 내는 지엔즈(剪紙)공예자, 전통 의상을 입고 얼후(二胡)를 연주하는 할아버지 등 그야말로 다양하고 풍성한 전통문화가 선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즉석 복권이나 상업적 성격의 도박놀이들도 많이 생겨나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a 원숭이 인형을 파는 아저씨의 드높은 함성이 울려퍼진다

원숭이 인형을 파는 아저씨의 드높은 함성이 울려퍼진다 ⓒ 김대오

장터에는 원숭이 해를 맞이하여 원숭이 인형을 파는 가게가 많았는데 하나에 10위엔(1천 원 정도)하는 인형을 몸에 감고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호객을 하고 있었다. 또 곧 다가올 새봄의 집안 장식에 쓸 조화나 장식용 물품을 사서 손에 든 사람들도 많았다.

a 다양하고 풍성한 먹거리

다양하고 풍성한 먹거리 ⓒ 김대오

장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인데 삭힌 두부, 전갈튀김에서부터 각종 열매에 물엿을 입힌 탕후루 등 각 지역의 다양한 음식들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날에 받은 세뱃돈으로 솜사탕을 사먹고 20위엔(우리 돈 3천원 정도) 하는 콩주(줄 위에 올려 돌리는 중국의 전통완구)를 사서 연습을 하고 있는 어린 아이는 너무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었다. 베이징이 고향이라는 마오씨는 해마다 설날이면 가족들과 함께 먀오훼이에 놀러 오는데 올해는 날씨가 추워서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소개해 주었다.

a 아이는 목마 태우고 먀오훼이를 빠져 나오고 있다

아이는 목마 태우고 먀오훼이를 빠져 나오고 있다 ⓒ 김대오

인산인해를 이룬 먀오훼이의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행사장 곳곳에 설치된 장식물들이 내년을 기약하며 제거되고 있었다. 중국의 긴 설 연휴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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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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