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출산율만 높이면 어쩌자는 건가

[대안칼럼-41] 고용과 실업, 사회적 합의가 필요

등록 2004.01.30 03:08수정 2004.02.02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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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0여 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중앙대 신광영(사회학) 교수가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고용없는 성장’과 일자리 문제에 대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사회의 예를 들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최근 한국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호들갑스럽게 보도하는 뉴스들이 범람하고 있다. 한국의 가임 여성 1인당 출산율이 1.17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인다는 뉴스와 65세 이상의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뉴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뉴스들이 신년 벽두부터 언론 매체를 장식하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뉴스들은 보도하는 매체들은 단순히 뉴스보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언론 매체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하면서 대책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나아가 이들 언론 매체들의 필자들은 마치 세상 걱정 혼자 다하듯이 이러 저런 대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사회변화는 새로운 것도 아니고 또한 일부 언론 매체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기사나 논설을 쓰는 사람들이 책상머리에서 생각해서 대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정도의 문제도 아니다.

혼란스러운 언론의 ‘낮은 출산과 고령화’ 보도

이러한 문제들은 산업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체제 수준의 문제들이다. 또한 상호 모순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 대책에 의해서 간단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저출산율이 노동력 부족을 가져와서 노동력 부족 사태를 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구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청소년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을 하는 인구는 줄어들고 노동을 하지 않는 노인인구가 늘어나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복지를 강화하여 탁아나 보육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나 가부장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성차별의 폐지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체제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단편적인 주장이다. 오늘날 서구 경제체제의 특징은 고용증가가 동반되지 않는 경제성장(jobless growth)이다.


전체적으로 경제가 성장하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이미 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인력을 줄이는 자동화, 정보화와 조직의 합리화가 제조업에서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일자리는 크게 축소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이미 노블(David Nobel), 고즈(Andre Gorz)나 리프킨(Geremy Rifkin)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다루어졌다. 기업 수준에서 지속적인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증가하고, 기업의 성장이 이루어지지만, 필요 인력은 계속 감소되어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서구경제체제의 특징, ‘고용없는 성장(Jobless Growth)'

경제성장이 불가피한 것은 인구증가에 상응하는 수의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과거의 논리는 이제는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전통적인 기술과 고용의 상관관계가 깨진 것이다. 물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혁신을 이루어 내는 산업의 발달로 기술혁신 자체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기술혁신은 일자리 파괴뿐만 아니라 창출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 파괴 효과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나타난 효과는 일자리 수의 감소 즉 고용감소였다.

1995년 프랑스 계획위원회 위원장 장 봐소나(Jean Boissonnat)는 <20년 후의 일>이라는 책에서 2015년 프랑스에서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예측하고 있다. 기술혁신이 가속화되어, 노동시간의 유연성이 높아질 것이고, 노동인구가 250만 증가하며, 일인당 평균 가처분 소득은 1995년 14만 프랑에서 2015년 21만 프랑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제도와 정책으로는 높은 실업율과 심각한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방경제, 기업간 네트워크 강화, 교육과 훈련 개혁, 노동시간 단축, 노동규제 관련 제도와 법규 정비와 새로운 사회협약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했다.

미국-유럽, 경제성장은 있지만 고용증대는 없다

2003년 6월 유럽경제연구컨소시움(ERECO)은 250개 유럽 지역과 45개 도시를 대상으로 2007년까지의 경제 전망을 담은 유럽지역전망(European Regional Prospects)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영국 도시들에서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만, 고용증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향후 영국 도시의 경제는 높은 생산성 증가와 낮은 고용 증가로 특징지어지며, 서비스업 일자리 증가가 제조업 일자리 감소를 겨우 대체할 정도에 달할 것이라고 보았다. 인구성장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실업의 증가를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도 생산성은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일자리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1995년 이전 미국의 생산성 증가가 1.4% 정도였지만, 현재는 매년 3% 정도에 달하고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어 실업이 늘고(현재 미국의 실업율은 6.0%이고 실업자수는 877만4000명), 새로이 생기는 일자리는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들이라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70년대와 큰 차이가 없는 심각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산성 증가로 미국의 기업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미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하고 빈곤층의 비율이 가장 높은 사회가 되었다.

고용문제, 사회적 논의와 합의부터

한국의 경우도 고용증가 없는 경제성장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보통신 산업의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제조업의 하락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 산업에서 이루어지는 고용은 전체적으로 비정규직, 계약직이 주류를 이루면서 고용의 질은 크게 나빠지고 있다.

현재 청년실업은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고, 조기정년으로 인하여 ‘사오정’, 혹은 ‘삼팔선’과 같은 30대 후반, 40대 중반 퇴직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고용증가 없는 경제성장은 현재 서구 산업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저출산율과 빠른 고령화 문제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문제와 함께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실업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신광영 교수
신광영 교수
현재와 같이 해고에 대한 규제가 없는 경우 출산율 증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기 정년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구증가, 교육, 고용, 복지 등은 모두 동시에 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사회와 정부가 한탕주의식 언론 보도에 휘둘려서 하루아침에 대책을 내놓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21세기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런 점에서 먼저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법과 제도의 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출산과 나이를 먹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자 곧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안칼럼의 필진은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정치), 한밭대 조복현 교수(금융), 켐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개발경제),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한국경제),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체제), 고려대 김균 교수(정책이념), 대안정책연대 정책위원 정승일 박사(재벌 및 기술경제), 인천대 이찬근 교수(국제금융),  계명대 김영철 교수(경제), 일본 교토소세대 이정희 교수(동북아경제), 여성개발원 정진주 박사(보건,여성), 전북대 정태석 교수(사회), 성공회대 차명제 교수(정치, 환경), 전북대 송기도 교수(중남미), 중앙대 신광영 교수(사회), 서울대 송태수 박사(한국정치연구소) 등 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대안칼럼의 필진은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정치), 한밭대 조복현 교수(금융), 켐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개발경제),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한국경제),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체제), 고려대 김균 교수(정책이념), 대안정책연대 정책위원 정승일 박사(재벌 및 기술경제), 인천대 이찬근 교수(국제금융),  계명대 김영철 교수(경제), 일본 교토소세대 이정희 교수(동북아경제), 여성개발원 정진주 박사(보건,여성), 전북대 정태석 교수(사회), 성공회대 차명제 교수(정치, 환경), 전북대 송기도 교수(중남미), 중앙대 신광영 교수(사회), 서울대 송태수 박사(한국정치연구소) 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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