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에서 화음의 세계를 접하는 기쁨

<태안군합창단>의 제1회 정기연주회를 보고

등록 2004.02.06 08:43수정 2004.02.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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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성당에서 성가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아직 배우지 못한 성가들에 대한 호기심을 늘 지니고 있었고, 하나씩 성가를 배울 때마다 곡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감동받았다. 그러다가 많은 친구들을 성당으로 데리고 와서 이 아름다운 노래들을 듣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가 고교 시절 수십 명의 남녀 중·고생들을 성당에 오게 한 것도(그 중의 상당수가 후에 영세를 했고, 일부는 지금도 태안 성당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일정 부분은 이런 성가와 관련한 내 묘한 욕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대가 어긋난 경우들도 있었다. 친구가 성당에 한번 와서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면 감동을 한 나머지 그 날로 예비 신자가 될지 모른다는 내 기대와는 달리, 전혀 감동의 기색을 보이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다 똑같지 않다는 것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성가 하나에도 감동하고 매료되는 성품을 지녔으면서도, 학창 시절 음악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다른 반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최영 장군'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칭찬과 함께 '수'를 맞은 것 외에는 음악에 얽힌 별다른 기억이 없다.

그래도, 기초의 부실함 속에서도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마누라한테서 '부분 음치'라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벌써 9년째 태안 성당 성가대에서 베이스로 활동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애정 때문일 터이다. 언젠가 나는 아내에게 가장 부러운 것 세 가지를 말한 적이 있다. 작곡가, 오케스트라 지휘자, 성악가…. 결국 음악가들을 가장 부러워하고 존경한다는 얘기였다.

악기 한 가지도 다룰 줄 모르고 사는 것을 조금은 아쉽게 생각하며 때로는 묘한 '결핍증'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때문에 딸아이와 아들녀석을 한동안은 반강제적으로 학원에 보내어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녀석들이 장차 언젠가는 이 아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잠시 추억 속에 잠기기도 하고, 음악과 관련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지난달 15일 저녁 아내와 함께 성당에 들러 최 스텔라 수녀님과 청년 신자 한 명을 내 차에 태우고 문예회관으로 갔다. <태안군합창단>의 제1회 정기연주회 관람은 내가 도저히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원 중에 태안 성당 성가대에서 함께 활동하는 친구가 두 명 있지만(테너 파트의 강희대, 박재성), 그들이 없더라도 나는 십중팔구 그 자리에 갔을 것이다. 과거 <서산부부합창단>의 연주회를 비롯하여 이웃 동네의 음악 행사들도 많이 관람했던 사람이니 말이다.


태안군합창단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실체를 처음 접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였다. 내 가슴을 들뜨게 하는 이 설렘이 하늘의 축복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관중이 너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으나 그것은 곧 감사로 변했다. 의외로 많은 관중이 문예회관 대공연장의 1층과 2층 객석을 거의 메운 것을 보면서 흐뭇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고맙고 흐뭇한 것은 관중의 관람 태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동과 소음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힘찬 박수와 앵콜을 요청하는 환호뿐이었다. 이런 수준 높은 관람 태도는 서울에서 특별출연으로 오신 분들과 이웃 동네에서 오신 관람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관중의 이런 훌륭한 관람 태도는 태안군합창단의 수준 높은 연주와 맞물리는 것이 아닐 수 없을 터이다. 차정식 지휘자의 열정적이면서도 정교한 지휘, 백일선 피아니스트의 세련된 반주와 완벽하게 조응하며, 38명의 목소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화음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곡목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도 절로 들었고,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4부 합창의 진수를 오랜만에 만끽하는 기분이었다.

여성에 비해 남성 수가 적어서 화음에 문제가 없을까 싶었으나, 네 명의 테너와 다섯 명의 베이스음도 명확하고 충분히 조화롭게 몫을 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남녀 솔리스트들의 기량도 뚜렷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 30분 정도의 공연 시간을 위해 그들이 기울여온 노고의 질량, 바쁜 생활 속에서 쪼갠 많은 시간들을 생각하니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공연이 끝난 후 문예회관 대공연장을 나올 때 성당의 최 스텔라 수녀님이 말했다. "40명 정도의 사람들이 수고를 해서 열 배도 훨씬 더 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태안군합창단의 김명식(베이스) 단장, 차정식 지휘자와 단원 여러분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를 표하며 더욱 큰 발전을 기원한다. 서울에서 와서 특별출연으로 성악의 진수를 보여 주신 신영조(테너), 변병철(바리톤), 조용란(소프라노) 선생께도 감사하고 건강을 빌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월 6일치 <태안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2월 6일치 <태안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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