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노빠당'이라고 조롱하더니...

[取중眞담] 한 언론인의 석연찮은 우리당 입당

등록 2004.02.18 17:27수정 2004.02.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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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을 앞두고 언론인 출신들의 정계진출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최규식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최씨는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대구 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서울 강북을 공천이 유력하다.

그러나 최씨의 입당을 두고 우리당 안팎에서는 그의 입당이 의외라는 반응도 없지 않다. 특히 그가 작년 말 한국일보 논설위원 시절에 쓴 칼럼을 떠올리면 그의 갑작스런 변신은 석연치 않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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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03년 12월26일자 30면에 실린 최규식씨의 기명칼럼.

최씨가 작년 12월 26일자 한국일보에 쓴 칼럼 <지평선>의 제목은 '닫힌 그들당'. 우선 도발적인 제목에서부터 열린우리당을 조롱하기 위한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고 잇다. 내용 역시 그같은 논조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최씨는 칼럼에서 대선1주년 기념 MBC 정당 지지도조사 결과(민주당 19.6%, 한나라당 16.2%, 우리당 16.1%)를 소개하며 "2등으로 내려앉은 한나라당보다 꼴찌나 다름없는 열린우리당이 더 입맛이 썼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칼럼은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된 그날 밤, '리멤버1219' 행사에서 노 대통령이 시민혁명을 외치는 것을 우리당 지도부는 연단 아래서 추위에 떨며 지켜보고 있었다"며 이를 '영낙없는 노빠당 모습'이라고 규정했다.

최씨는 또한 노 대통령의 '시민혁명' 발언에 대해 "누가 시민의 선거혁명을 나쁘다고 했는가. 그 혁명을 대통령의 사조직을 내세워 하겠다니 수상하다는 것이지. 대통령이 편가른 대로 '우리'는 선거혁명 주체이고 '그들'은 대상이다? 우리당은 정녕 노 대통령의 깊은 뜻을 이때는 몰랐나"고 반문한다.

나아가 최씨는 "한나라당을 찍으면 민주당을 돕는 것"이라는 노 대통령 발언에 우리당도 "정국을 제대로 꿰뚫었다"고 맞장구 쳤다며 "우리당이 '대통령의 말이 옳다'고 외치려면 개혁을 전유물처럼 내세우는 태도만은 버려야 한다"고 일갈한다. 우리당이 '대통령당'의 구태를 보였으니 개혁을 외칠 자격이 없다는 논리다.

최씨는 "강준만 교수가 '우리당이 실패할 10가지 이유'(오버하는 사회)의 하나로 '<개혁 대 반개혁>, <지역주의 타파 대 지역주의 기생>이라는 이분법으로 다른 정치세력을 매도하며 개혁을 입으로 때우려 드는 것'을 지적한 의미를 우리당은 전혀 모르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칼럼을 마무리하고 있다.

우리당을 이렇게 호되게 몰아 세운 최씨가 만약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당은 피해야 하는 게 상식이 아닐까? "공천심사를 해보니 싹수가 노랗다. 차라리 장렬하게 자폭하라"고 한나라당에 독설을 퍼부었던 소설가 이문열씨가 어느 날 덜컥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미 홍위병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던 이씨가 '자기모순에 빠진 지식인'에게 쏟아질 세상의 손가락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 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의 글을 쓴 지 두 달도 못돼 우리당에서 입당한 최씨의 포부를 들어보자.

"지난 대선에서 불기 시작한 개혁 바람이 4월 총선에서 폭풍이 되어 옛 정치판을 완전히 밀어낼 수 있도록 온 힘을 바치겠다."

'대선때 불었던 개혁의 바람'이 더 이상 '대통령당의 전유물'이 아닌데, 최씨는 총선에서 어떤 논리로 자신이 개혁후보이고 우리당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보다 더 개혁적이라고 호소할 수 있겠는가?

최씨는 "한국일보 재직시절 노무현 정권과 우리당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왔고 국회에 등원해도 비판정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지만, 최씨의 칼럼이 통상적인 비판 수준에 불과한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민심을 살피지는 않고 의원 영입 등 세 불리기에 급급하다가 결국 참패를 면치 못했다. 대세론에 안주하다가 뒤늦게 비싼 대가를 치르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는 우리당에게도 보다 신중하게 외부인사를 영입해야 한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얼마전까지 자신들을 '매도'하는 칼럼을 쓴 언론인을 '포용'하는 우리당을 가리켜 국민들은 과연 '우리당은 역시 통이 크다'고 호평할까?

다음은 최씨가 쓴 <한국> 칼럼의 전문.

[지평선] '닫힌 그들당'

대선 1주년을 맞아 MBC가 실시한 정당지지도 조사결과 민주당(19,6%)이 1등 한 것에 2등으로 내려앉은 한나라당(16.2%)보다 꼴찌나 다름없는 열린우리당(16.1%)이 더 입맛이 썼을 것이다.

민주당이 ‘미스터 쓴소리 효과’에다 대선자금 문제에서 이점을 누린다고는 하나 우리당이 느낄 위기감이 짐작이 간다. 총선에서 1등은 커녕? “‘대통령당 만들기’라는 비난이 없던 게 아니지만 그래도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싸운 상대인 ‘반개혁 세력’이 1등이라니…” 이런 생각일지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앞뒤 가리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잘 계산된 최근의 발언들이 왜 나오는지 알 만하다.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된 그날 밤, 노사모가 여의도에서 주최한 ‘리멤버1219’ 행사에서 노 대통령이 시민혁명을 외치는 것을 연단 아래서 우리당 지도부가 추위에 떨며 지켜보고 있었다. 영낙없는 ‘노빠당’ 모습이고,그러니 연설이 논란을 부르자 “그게 왜 사전선거운동이냐”고 옹호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시민의 선거혁명을 나쁘다고 했는가. 그 혁명을 대통령의 사조직을 내세워 하겠다니 수상하다는 것이지. 대통령이 편 가른 대로 ‘우리’는 선거혁명 주체고 ‘그들’은 대상이다? 우리당은 정녕 노 대통령의 깊은 뜻을 이때는 몰랐나.

■우리당은 노 대통령이 엊그제는 한 발 더 나아가 “한나라당을 찍으면 민주당을 돕는 것”이라고 지원을 노골화하자 “정국을 제대로 꿰뚫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제서야 노 대통령이 불법논란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나섰음을 안 모양이다. 우리당이 “대통령의 말이 옳다”고 외치려면 개혁을 전유물처럼 내세우는 태도만은 버려야 한다. 그것이 떳떳하다. “개혁 성공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호소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는가. 과거 ‘대통령당’의 구태조차 벗지 못하면서 무슨 개혁인가.

■우리당이 “신당이 망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정동영 의원)면 겸허해져야 한다. 발은 정치현실에 푹 담고 있으면서 말로는 개혁을 독점한 것처럼 하면 국민 눈에 ‘닫힌그들당’으로 보일 뿐이다. 강준만 교수가 ‘우리당이 실패할 10가지 이유’(오버하는 사회)의 하나로 “‘개혁 대 반개혁’, ‘지역주의 타파 대 지역주의 기생’이라는 이분법으로 다른 정치세력을 매도하며 개혁을 입으로 때우려 드는 것”을 지적한 의미를 우리당은 전혀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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