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하나 되는 '광장'에서 놀자

<신유목민의 떠돌이 단상> 바르샤바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등록 2004.02.25 13:18수정 2004.02.27 09:27
0
원고료로 응원
놀이공원에 가서 퍼레이드를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각종 동화속 주인공들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지요. 일부러 때를 맞추어 기다리기도 하지만, 우연히 시간이 맞아 보게 되면 더 좋습니다.

가끔은 기념일 문화행사시에도 거리 퍼레이드를 합니다. 하지만, 늘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바쁜 날 길이라도 막히면 화가 납니다. 더욱이 행사 관계자의 입장이 되면 더 싫어집니다.


관계기관에 협조공문을 보내고 시간과 거리를 논의할 때면 으레 나오는 말이 "빨리 끝내고, 주요 도로는 되도록 피하며 거리는 짧을수록 좋다"는 당부가 이어집니다. 엄청난 민원에 대한 뒷감당은 덤으로 맡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불편과 원망을 받으면서도 자꾸만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차도를 점령하지 않는 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도시 중심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집회나 행사를 할 때면 민폐인줄 알면서도 도로를 점령합니다.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에 모여든 사람들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에 모여든 사람들조미영
폴란드 바르샤바의 구 시가지 광장은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철저하게 파괴된 것을 바닥의 벽돌까지 세심하게 복원하는 노력으로 옛 모습을 찾았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코프는 전쟁의 와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고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크라코프 구 시가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 없다고 할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특히 구 시가 광장은 13세기 유럽의 가장 큰 시장터로 유럽에 남아있는 광장 중 가장 넓습니다. 광장 둘레를 레스토랑의 야외테이블과 노점들이 차지하고 중앙에는 커다란 직물회관 건물이 가로 놓여있지만, 양쪽으로 분할된 광장은 대형공연이 가능할 만큼 넉넉합니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바르샤바 구시가 광장은 대표적 관광지이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바르샤바 구시가 광장은 대표적 관광지이다.조미영
크라코프 광장, 직물회관 건너편으로 이런 광장이 또 펼쳐진다.
크라코프 광장, 직물회관 건너편으로 이런 광장이 또 펼쳐진다.조미영
체코의 프라하에는 의미 있는 광장들이 있습니다. 11세기에 형성된 구 시가 광장은 주변의 구 시청사와 틴 성당, 종교 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이 있는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프라하 관광의 대표명소입니다.

구 시가의 옛 건물들을 지나 노천시장에서 싱싱한 과일을 사 들고 골목을 빠져 나오면 넓은 대로와 같은 바츨라프 광장이 나옵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갈구하며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 갔던 장소이자 1989년 '벨벳혁명'을 이뤄낸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지금은 은행과 상점 등이 줄지어선 화려한 20세기 신시가지로 변신하여 조금은 의외였지만, 아직도 활력이 가득한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의 얀 후스 동상 앞
프라하 구시가 광장의 얀 후스 동상 앞조미영
"프라하의 봄"으로 대표되는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의 봄"으로 대표되는 바츨라프 광장조미영
광장은 단순한 장소 이상입니다. 도시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낱알로 분리된 힘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과거 우리도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많은 분들이 장터와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난 2002년 역시 하나됨으로 일궈낸 엄청난 힘을 경험했습니다. 광화문에서 시청을 잇는 거리는 물론 전국 어느 곳이든 넒은 공간만 허락된다면 붉은 옷을 입고 모여든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이는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추모 촛불시위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분열된 힘을 하나로 끌어 모아 슬기롭게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간이역 앞의 작은 광장은 휴식과 약속을 위한 공간이 되어줍니다.
간이역 앞의 작은 광장은 휴식과 약속을 위한 공간이 되어줍니다.조미영
광장은 때때로 야외 공연장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광장은 때때로 야외 공연장으로 변하기도 합니다.조미영
유독 더웠던 지난 여름, 광장의 노면 분수는 아이들의 물놀이 장으로 변했습니다.
유독 더웠던 지난 여름, 광장의 노면 분수는 아이들의 물놀이 장으로 변했습니다.조미영
번화가 중심광장에서의 즉석 공연은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번화가 중심광장에서의 즉석 공연은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는다.조미영
최근 서울시가 '시민광장 조성' 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광화문·시청 앞·숭례문에 각각 시민광장을 조성하고 그 주변을 도보로 연결하여 광화문-시청 앞-덕수궁-서울역을 걸어서 오갈 수 있는 역사·문화 관광지구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시행만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공사나 문화재단 설립과정 등의 문화행정 처리방법을 볼 때 영 불안하기만 합니다. 밀어붙이기식 공사에, 낙하산 인사로 독단적인 밀실행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왕 좋은 취지로 시민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문화관광지구라면 이를 사용할 시민들과 주변의 좋은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조성계획안을 작성해서 정말 쓸모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간이 다소 길어지면 어떻습니까? 잘 만들어서 오래 사용하면 그게 좋은 것이지요. 이제 제대로 된 의견수렴과 철저한 정책기획은 선택이 아닌 필수 항목입니다. 더 이상의 도로점령 없이도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길 바랍니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시청사를 중심으로 광장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았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시청사를 중심으로 광장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았다.조미영

덧붙이는 글 | 지난 여름 100일간의 여행중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여름 100일간의 여행중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2. 2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3. 3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4. 4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5. 5 고3 엄마가 수능 날까지 '입단속' 하는 이유 고3 엄마가 수능 날까지 '입단속' 하는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