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털털이 오데 갔노?"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42> 쑥털털이

등록 2004.03.08 14:34수정 2004.03.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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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금 비음산 다랑이 논둑에는 쑥이 파랗게 올라와 있다

지금 비음산 다랑이 논둑에는 쑥이 파랗게 올라와 있다 ⓒ 이종찬


내가 태어나 자란 60여호 가량 되는 동산 부락은 서북쪽으로 이어져 있는 상남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랑이논과 500~800m 남짓한 큰 산들에 둘러쌓여 있었다. 동으로는 '무성티'라고 부르는 비음산과 대암산이 가로막고 있었고, 남으로는 '갈판이산'이라고 부르는 불모산이, 서로는 장복산과 팔룡산이, 북으로는 봉림산과 천주산이 마치 병풍처럼 우리 마을을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마을의 겨울은 몹시 짧았다. 특히 매화와 산수유 같은 꽃들은 설날이 다가올 무렵이면 이미 희고 노오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쑥과 냉이, 씀바귀 같은 봄나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봄나물들은 설이 지나기 무섭게 계단으로 이루어진 논두렁의 마른 풀섶을 헤집고 파아란 얼굴을 뾰족뾰족 내밀었다.

우리 마을은 양력 이월부터가 봄이었다. 가끔 꽃샘 추위가 한두차례 지나가기도 했지만 마을 어머니들과 누이들은 그때부터 바구니에 큼직한 부엌칼을 담고 삼삼오오 논두렁으로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또한 그때쯤이면 우리들은 마을 어머니들과 누이들이 봄나물을 캐는 그 보리밭에서 보리를 밟으면서 어서 어머니와 누이들의 바구니가 파아란 봄나물로 가득 차기를 기다렸다.

"올개는 벨시리(유난히) 쑥이 많다카이."
"눈비가 울매나(얼마나) 많이 왔노. 그라이 요놈들도 겨울 내내 잘 묵고 잘 살았은께 살이 요렇게 통통하게 안 올랐것나."
"퍼뜩 한소쿠리 캐가 가자. 아(아이)들 배 고푸것다."
"니 벌시로 쑥을 그리 많이 캐뿟나? 그 많은 쑥을 캐가꼬 다 뭐할끼고?"
"국도 끼리 묵고(끓여 먹고), 아(아이)들 털털이도 해 믹이야(먹여야) 안 되것나."
"하긴 돌아서모 배 고프다고 보채는 아(아이)들이 머슨 죄가 있것노. 다 부모 잘못 만나고 세월 잘못 만난 탓이 아이것나."


쑥털털이? 그래, 쑥털털이. 밥 숟가락을 놓고 돌아서기만 하면 이내 허기가 지던 우리들의 고픈 배를 든든하게 채워 주던 그 쑥털털이. 이른 봄에 갓 캐낸 봄쑥의 향긋한 맛보다는 달착지근한 사카린 맛이 더 좋았던 그 쑥털털이. 바람 든 무를 깎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맛도 좋고 트림도 나지 않던 그 쑥털털이.

그래. 내가 태어나 자란 동산 부락에서는 논두렁에서 금방 캐낸 쑥을 맑은 도랑물에 잘 씻은 뒤 밀가루를 버무려 가마솥에서 푹 쪄낸 쑥떡을 '쑥털털이'라고 불렀다. 근데 왜 그 개떡 같이 생긴 쑥떡을 쑥털털이라고 불렀던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명절 때 쑥과 멥쌀가루를 섞어 콩고물을 묻혀 만드는 그 맛난 쑥떡과 구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튼 해마다 이맘 때 오후가 되면 우리 마을 도랑가 곳곳에서는 마을 어머니들이 금방 캐낸 싱싱한 쑥을 씻느라 시끌벅적했다. 이어 도랑가가 조금 조용해졌다 싶으면 이내 마을의 초가지붕 사이에 비스듬히 서있는 길다란 굴뚝에서 파아란 연기가 아지랑이를 가물거리며 하늘로 피어올랐다.


a 쑥이 파랗게 돋아나는 과수원 울타리에는 명자꽃이 발간 입술을 뾰쫌히 내밀었다

쑥이 파랗게 돋아나는 과수원 울타리에는 명자꽃이 발간 입술을 뾰쫌히 내밀었다 ⓒ 이종찬


"옴마!"
"와? 털털이 맛이 이상하나?"
"그기 아이고, 털털이 이거 내가 쪼매 가져가도 되것나?"
"와? 또 그 가시나 그거한테 갖다줄라꼬?"
"아...아이다. 나중에 공부 함시로(하면서) 묵을라꼬."
"니, 그 가시나 그기 옴마보다 더 좋나?"
"그기 아이라카이."


그랬다. 그때 나는 색다른 먹거리만 생기면 이상하게 얼굴에 마른 버짐이 송송 핀 그 가시나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 가시나도 그랬다. 그 가시나도 나처럼 집에 색다른 먹거리가 생기면 몇 개만 집어 먹고 나중에 먹는다며 아껴두었다가 은근슬쩍 내게 갖다주곤 했다. 아마도 소꿉장난하던 시절부터 서로 그랬던 것 같다.


그날도 나는 그 맛있는 쑥털털이를 조금 먹다가 어머니에게 한 접시 받아들고 작은 방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아직 글씨를 쓰지 않은 공책 뒷장을 뜯어 쑥털털이를 정성껏 싼 다음 책과 함께 책보자기에 꼭꼭 숨겨두었다. 내일 학교를 파한 뒤 아무도 몰래 그 가시나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나는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만난 그 가시나는 매화꽃 아래 서서 내가 건네준 쑥털털이를 볼이 미어 터져라 먹으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내 손을 잡더니 하얗게 피어난 매화꽃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잠시 뒤 그 가시나와 나는 한쌍의 매화꽃으로 피어나 하얗게 웃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몹시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학교 수업을 파한 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책보따리를 새롭게 싸기 시작했다. 근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쑥털털이를 예쁘게 싼 그 종이 봉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내 짝을 한없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 털털이. 내 털털이 오데 갔노?"
"털털이? 머슨 털털이?"
"쑥털털이 말이다. 니,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고마 불어뿌라. 니가 묵었제?"
"아, 아이다. 내는 원래부터 털털이로 좋아 안 한다카이."
"씨! 그라모 누가 내 털털이로 묵었노? 선생님한테 일러 바쳐야 바른 말로 하것나."
"야야~ 니도 인자 고마 해라. 우리 반 아(아이) 중에 오죽 배가 고팠으모 니 몰래 털털이로 훔쳐 묵었것나."


그랬다. 그 쑥털털이를 학교에 가지고 간 게 문제였다. 그 당시에는 다들 시커먼 꽁보리밥과 김치 한조각이 달랑 담긴 그런 도시락조차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또한 그런 아이들은 점심 시간이 돌아오면 슬며시 운동장으로 나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끼니를 때울 그런 때였다.

실수였다. 그냥 집에 있는 앉은뱅이 책상 서랍 속에 꼭꼭 숨겨두었다가 학교를 파하고 보리 밟으러 나갈 때 그 가시나를 살짝 불러내 건네주었으면 아무런 탈이 없었을 것을. 그날 나는 보리를 밟으러 나갈 때 그 가시나가 살고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난 그 길을 피해 마을을 빙 둘러 보리밭으로 향했다. 괜히 그 가시나한테 죄를 지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지금도 나는 비음산 근처로 산책을 가다가 논두렁 곳곳에 쑥이 파랗게 돋아나는 걸 바라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때 마을 어머니와 누이들처럼 바구니 가득 쑥을 캐고 싶다. 그리하여 한솥 가득 쑥털털이를 찐 뒤 이웃집 사람들을 불러모아 양볼이 미어 터지게 나눠먹고 싶다. 서로의 흉도 조금씩 보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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